[책] 자몽살구클럽- 죽고 싶던 학생들, 살구 싶은 이야기

장유진 2026. 3. 25.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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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출신 싱어송라이터 한로로 첫 소설 살아야 하는 이유 찾는 동아리 활동 그려 불안·좌절 견디는 청소년들 떠올리게 해

“기우는 새벽에 매달린 채 밝아온 천국/ 나와 상관없죠/ 가면 쓴 천사의 속삭임 내게는 한 번도/ 닿은 적 없으니.” - 한로로, ‘도망’ 중.

드는 볕에서도 포근한 내음이 나는 듯한 봄이다. 하지만 계절의 눈부심이 누군가에겐 아프게 다가온다. 봄철 자살률이 치솟는 현상을 일컫는 말 ‘스프링 피크’. 주위를 둘러보면 온 사방이 꽃 천지인데, 내 머리 위로만 그늘이 짙은 괴리가 마음을 힘들게 한다. 그런 철이기에 이번 달 소개할 책으로 가수 한로로의 소설 ‘자몽살구클럽’을 내민다. 모두가 아침을 맞이할 때, 홀로 밤을 벗어나지 못했던 아이들의 새벽이 여기 담겨 있다.

‘자몽살구클럽’은 창원 출신 싱어송라이터 한로로가 펴낸 첫 소설이다. 한로로는 몽환적인 음악색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새로운 음원 강자로 떠올랐다. 그가 쓴 소설 ‘자몽살구클럽’이 세상에 공개된 건 동명의 앨범을 발매했던 지난해 여름이었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던 한로로는 불안과 희망이 한데서 소용돌이치는 청소년들의 마음을 이야기 책과 음악으로 풀었다.

소설은 ‘소하’와 ‘태수’, ‘유민’, ‘보현’ 네 명의 중학생이 서로의 ‘죽고 싶다’는 생각을 지워주고, ‘살고 싶다’는 의지를 채워주기 위해 만든 동아리 ‘자몽살구클럽’에서의 활동을 그려낸다. 함께 나온 앨범 속 ‘0+0’, ‘도망’ 등 수록곡들도 같은 스토리와 세계관을 공유한다. 그중 노래 ‘0+0’이 최근 음원 차트에서 역주행하게 된 뒤 덩달아 책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출간 당시에는 크게 화제 되지 않았던 소설이 지난 2월 갑작스레 서점가의 인기 도서 목록 1위를 석권하더니, 한 달째 베스트셀러 자리를 굳건히 지켜내고 있다.

‘“우리 자몽살구클럽은 서로를 죽음으로부터 지켜 주고, 생존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주기 위해 결성된 비밀 모임이야. 한 사람당 이십 일의 자살 유예 기간이 주어질 거야. 그 시간 동안 그 사람이 이 세상에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도록 남은 부원들이 도와줘야 해.” (…) 죽은 줄 알았던 희망들이 햇빛 아래서 무럭무럭 자라나 울타리 안을 빠르게 채운다. 피어난 희망들이 마침내 힘차게 합창한다. 살구 싶네. 살구 싶어라. 살구 싶어.’ - 40쪽.

소설의 흥행 이유가 단순히 가수와 노래의 인기 때문일까. 확인해 보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표지를 열었다. 한 뼘 남짓 조그만 소설책을 삽시간에 멈춤 없이 다 읽었다. 얽힌 뜻을 고민할 필요 없이 직관적으로 전달받을 수 있는 이야기의 메시지. “살구 싶다”고 큰 소리로 세 번 외치는 게 전부인 자몽살구클럽의 입단 절차처럼, 죽음을 떠올리면서도 매 순간 간절히 살아남고 싶다 말하는 인물들의 목소리가 내내 귓가에 울렸다.

‘그치만 내가 태수 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지금 이 순간을 함께 즐겨 주는 것뿐이었다. 그거면 된다는 언니의 부탁을 새겨듣는 것뿐이었다. 어설프게 언니의 춤을 따라 하고, 가사를 몰라도 언니의 입 모양 맞춰 입을 뻐끔대고, 활짝 웃을 때 똑같이 활짝 웃어 주는 것.(…)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따라 불렀다. 이런 제길 이런 게 또 어디 있어어어. 이런 제길 이런 게 또 어디 있어어어.’ - 116쪽.

사람들의 손길이 향하는 원인이 지은이의 인지도 때문만은 아님이 확실하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소하’와 어른들의 기대에 억압된 ‘태수’, 꿈이 없는 아이 ‘유민’과 가난에 꿈을 망설이는 ‘보현’까지. 어린 나이에 갖은 좌절을 경험한 아이들의 삶이 실제 10대 청소년들이 쓸 법한 단순하고 솔직한 말투로 읊어진다. 현실 어디선가 열다섯 소녀들이 겪고 있을 것만 같은 모진 절망에 누가 눈을 뗄 수 있을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긴 밤을 견디는 아이들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만으로도 한로로의 소설은 역할을 다한다. 책 바깥에도 분명 존재할 소하, 태수, 유민, 보현의 자몽살구클럽. 기댈 만한 어른이 있었더라면, 수십 번 안타까움을 곱씹게 되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현실 속 우리의 눈도 조금 더 살가워질 수 있길 바라게 된다.

저자 한로로, 출판 어센틱, 199쪽, 가격 1만2000원

장유진 기자 ureal@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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