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부산의 문제는 역시 일자리였네

부산일보 2026. 3. 25.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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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도 동의과학대학교 총장

지난 1월 미국 애리조나를 방문했다. LG에너지솔루션 공장 건설 현장을 보고, 애리조나주립대학(ASU)에서 반도체·배터리 분야 교육 현장도 살펴보았다. 그곳을 둘러보며 내내 떠오른 도시는 뜻밖에도 부산이었다.

애리조나는 따뜻한 기후와 넓은 정주 공간, 빠르게 확장되는 도시 인프라를 갖추고 있었다. 은퇴 이후 머물기 좋은 환경이라는 점에서 부산과 닮은 점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현장에서 본 애리조나는 부산과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그곳에는 사람이 모여드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의 중심에는 일자리가 있었다.

LG에너지솔루션 공장 건설 현장은 그 자체로 하나의 메시지였다. 공장 하나가 들어서는 것이 아니었다. 장비, 물류, 유지보수, 품질관리, 협력업체, 교육훈련 체계까지 함께 형성되며 산업 생태계와 정주 기반이 동시에 만들어지고 있었다. 결국 사람은 미래가 보이는 곳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미래는 대개 일자리의 형태로 가장 먼저 나타난다.

ASU 방문에서는 더욱 인상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대학 관계자는 “우리는 엔지니어를 양성할 수는 있지만, 테크니션 교육은 하기 어렵다. 대한민국 전문대학과 협력 방안을 모색해보자”고 말했다. 짧은 말이었지만 의미는 컸다. 첨단산업은 연구개발 인력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반도체 공정을 운용하고, 배터리 생산설비를 다루며, 장비를 유지보수하고,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숙련된 테크니션이 있어야 산업이 움직인다.

우리나라 전문대학에는 이미 5년 전부터 전문기술석사과정이 운영되고 있다. 이번 회의를 통해 나는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이제 우리가 길러야 할 인재는 단순한 실무자가 아니다. 첨단산업 현장을 이해하고 설비를 운용하며 공정을 개선할 수 있는 고숙련 인재, 곧 ‘슈퍼 테크니션’이다. ASU의 제안은 한국 전문대학 직업교육의 가치가 국제적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 순간 부산을 다시 떠올렸다. 부산은 흔히 자조적으로 “노인과 바다의 도시”라고 불린다. 바다는 아름답고, 기후는 온화하며, 정주 여건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청년의 눈으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기술을 익히고 미래를 설계하며 성장할 수 있는 도시인가를 묻는다면 선뜻 답하기 어렵다.

부산의 인구 문제를 말할 때 우리는 낮은 출산율, 고령화, 수도권 집중을 이야기한다. 모두 맞는 진단이다. 그러나 조금 더 근본으로 들어가면 부산의 문제는 결국 일자리였다. 정확히는 청년이 남고, 외부 인재가 들어오고, 기업이 미래를 걸 수 있을 만큼 지속가능한 일자리의 부족이었다. 사람은 바다가 싫어서 떠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설계할 기회가 부족하기 때문에 떠나는 것이다.

부산은 전력도 있고 물도 있다. 항만과 물류의 강점도 갖고 있다. 그러나 기업은 전기와 물만 보고 오지 않는다. 숙련된 기술인력이 있고, 협력업체가 연결돼 있으며, 대학이 산업과 함께 움직이는 구조가 있어야 한다. 산업 입지의 경쟁력은 결국 사람과 교육의 수준에서 완성된다.

이제 직업교육은 단순히 취업을 돕는 교육이 아니다. 지역의 산업을 만들고 지탱하는 핵심 인프라다. 부산이 다시 살아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그 일자리를 뒷받침할 기술인재를 길러내는 일이다. 지역 기업과 대학이 함께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학생이 학습 단계에서부터 산업현장을 경험하며, 졸업과 동시에 지역의 좋은 일자리로 이어지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애리조나에서 내가 본 것은 사막 위의 공장만이 아니었다. 나는 그곳에서 산업이 도시를 바꾸고, 교육이 산업을 지탱하며, 일자리가 결국 인구를 움직인다는 현실을 보았다. 부산의 문제는 결국 일자리였다. 그리고 그 해법은 기술인재 양성과 직업교육에 있다. 부산이 더 이상 “노인과 바다의 도시”라는 자조에 머물지 않고, “기술과 청년이 모이는 도시”로 나아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