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기 기억하기[유희경의 시:선(詩: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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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깜빡한다.
어떤 대화에서든 반드시 한 번쯤 "이거 뭐였지?" "그거 있잖아" "저기 그거 있잖아" 하고 말하게 되기 때문이다.
허구한 날 깜빡하는 바람에 사과하기는 일상이었으며, 어떤 길목에선 아는 얼굴을 만났는데 이름이 기억나질 않아서 모른 척 지나쳐 버리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내 시 쓰기가 기억의 한 방법은 아니려나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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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는다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잊는다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지 않는다면 잊을 수 있을 것이다/ 말한다면 잊을 수 있을 것이다/ 말하지 않는다면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말한다면 잊을 수 없을 것이다
- 김선오 ‘무제’(시집 ‘말 꿈 몸’)
자꾸 깜빡한다. 약속을, 사람 이름을, 사물의 명칭을 잊고 만다. 깜빡해서 말을 더듬는다. 나는 이를 ‘이그저의 시기’라고 생각한다. 어떤 대화에서든 반드시 한 번쯤 “이거 뭐였지?” “그거 있잖아” “저기 그거 있잖아” 하고 말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나이 탓을 한다. 솔직히, 지금보다 ‘싱싱한’ 나이였을 때도 상황이 크게 다르진 않았다. 허구한 날 깜빡하는 바람에 사과하기는 일상이었으며, 어떤 길목에선 아는 얼굴을 만났는데 이름이 기억나질 않아서 모른 척 지나쳐 버리기도 했다. 그래도 그땐 뭐든 생생했다. 깜빡이 반짝으로 돌아오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금은 머릿속에 안개가 있는 기분이다. 자욱하고 흐릿하다. 막막해서, 더러 참담해지기까지 하다. 선배들은 웃으며 말한다. “지금은 흐릿하겠지. 조금만 지나 봐. 한밤중이 되더라. 가로등 하나 없이 깜깜해.” 농담 삼을 일이 아니다. 이대로 가다간 일상에 지장이 생기겠어. 그래서 생긴 습관이 ‘기록’이다. 약속이 생기면 곧장 다이어리에 입력한다. 해야 할 일을 투 두 리스트에 담는다. 어떤 대화를 하든 수첩을 꺼낸다. 그토록 습관 삼으려 노력했던 일들이 자연히 이루어지고 있다. 덕분에 사과할 일이 줄었고. 하여간 어떤 일이든 나쁜 면만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나는, 내 시 쓰기가 기억의 한 방법은 아니려나 생각하는 것이다. 시란 예술이고 작품이지만, 사사롭게는 경험이며 느낌과 인상이므로, 기록은 잊지 않게 만든다. 결국, 아름다움이란 잊을 수 없는 것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시인·서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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