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이 있는 지리산 둘레길] 제19구간 방광 ~ 산동
천은사, 구렁이 죽였더니 감로천 샘 메말라
일주문 수체 글씨 현판 걸자 밤마다 물소리
방광마을 ‘소가 된 동승’ 등 전설로 전해져
감로동천 불국 이루고 빼어난 형승 가진 곳
◇방광마을 유래

지리산 둘레길 제19구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천은사’. 지리산 깊은 골 산중 고찰이지만, 막힌 공간의 갑갑함이나 엄숙함이 아닌 평지 가람에서 느낄 수 있는 편안함과 경쾌함을 느낄 수 있다. 여러 산내 암자를 거느리고 있으며, 감로의 불국을 이루고 빼어난 형승을 가진 감로동천이다./사진작가 각로 박혜란/
현재 행정구역상 방광리는 아랫마을 용전마을에서부터 시암재, 종석대에 이르기까지의 천은사골 전부가 그 관할구역이다. 마을 이름에 대해 옛날에 판관이 살았다고 해 판관마을이라 부르다가, 판관이 변형되어 판괭이로, 판괭이가 다시 방광으로 됐다는 유래가 전한다.
그리고 방광과 관련한 또 다른 유래가 전설로 전해지기도 한다.
옛날 종석대 아래 토굴에서 수행하던 노승과 동승이 방광마을을 지나던 중 길가의 밭두렁에서 잠시 쉬었다. 동승은 탐스럽게 익은 조를 어루만지다가 조 알 세 개를 떨어뜨리게 됐다. 동승은 그의 손에 떨어진 세 개의 조 알을 어찌할지 망설이다가 자신의 입에 털어 넣었다. 이를 본 노승은 동승에게 “너는 주인이 애써 가꾼 조를 허락 없이 먹었으니 그 업을 닦아야 할 것이다. 세 개의 조 알을 먹었으니, 조의 주인집 소가 되어 3년간 일해서 갚아라”라고 하면서 동승을 소로 만들어 버렸다.

방광마을 소원바위.

천은사 상생의 길.
◇천은사(泉隱寺)
지난 제17구간에서 화엄사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었듯이 제19구간 역시 천은사를 경유하지 않지만 천은사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천은사는 지리산 깊은 골에 자리한 산중 고찰이지만, 산중 가람의 특유한 긴장감이라든지 막힌 공간의 갑갑함이나 엄숙함 등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평지 가람에서 느낄 수 있는 편안함과 시야가 열려있다는 경쾌함이 어우러져, 고찰이지만 고찰의 둔중함보다는 안온함의 가분함이 앞선다. 아마도 시암재, 성삼재로 연결되는 지리산 관통 도로와 절 앞의 정원처럼 펼쳐진 저수지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가람을 둘러싸고 있는 골의 위용을 보면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는 불국토의 영역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천은사는 신라 중기 828년에 인도의 승려 덕운이 중국을 통해 신라에 들어왔다가 창건했는데, 당시의 절 이름은 경내에 있던 샘물이 감로와 같다고 해 감로사(甘露寺)라고 했다. 고려 충렬왕 때에는 남방제일선원으로 지정될 정도로 번성했으나 아쉽게도 그 이후의 기록은 흐릿하다. 그나마 조선시대에 임진왜란 등의 병화를 겪으면서 가람 대부분이 소실됐다. 1610년에 혜정선사가 소실된 가람을 중창해 선찰로서의 명맥을 이었다. 뒤이어 1679년에도 단유선사가 절을 크게 중수했는데, 이때부터 절 이름이 감로사에서 천은사로 바뀌었다. 1773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혜암선사가 전각을 중수하면서 가람을 새롭게 중창했다. 지금의 가람은 대부분 이때 조성된 것이다.
절 이름이 감로사에서 천은사로 바뀐 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천은사 일주문.
절 이름을 바꾸고 가람을 크게 중창했지만, 절에는 계속 화재가 발생하는 등 불상사가 끊임없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절의 수기(水氣)를 지켜 주던 구렁이가 죽은 탓이라 했다. 이 소식을 들은 당대의 명필, 원교 이광사가 ‘지리산 천은사’라는 물이 흐르는 듯한 수체(水體)의 글씨를 써 주면서 이를 일주문 현판으로 걸면 다시는 화재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 했다. 스님들은 반신반의하면서 이광사의 글씨를 일주문에 걸었더니 신기하게도 불이 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천은사 일주문에 걸려 있는 이 현판은 천은사의 내력을 이야기하는 듯, 지금도 밤이면 숨어버렸던 감로천의 물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감로동천(甘露洞天)
‘감로동천’이란 천은사의 옛 이름인 감로사에서 유래된 것으로 천은사골을 이르는 말이다. 화엄사의 강주를 역임한 백운 대강백은 화엄사골의 화엄동천, 문수골의 문수동천과 피아골의 연곡동천, 그리고 쌍계사의 화개동천과 함께 이곳 천은사골의 감로동천을 지리산 남단의 오대동천(五大洞天) 중 하나로 꼽았다. 동천(洞天)이란 원래 도가에서 신선이 사는 세계를 이르는 말인데, 이에 비견될 정도로 산과 계곡으로 둘러싸여 선경을 이루고 있는 곳을 이르는 말이다. 그만큼 천은사가 자리한 골의 경치가 빼어나다는 말이 된다.
감로동천의 주봉은 종석대다. 종석대는 지리산괴의 봉우리 중 그 어디에 견주어도 빠질 수 없는 중요 봉우리임이 틀림없으나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아마도 인근 노고단의 명성에 가려진 점도 없지 않지만, 그것보다는 비법정 탐방로로 지정돼 오랫동안 일반인 출입이 금지됐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아무튼 종석대는 그런저런 이유로 지리산 주능선은 물론 지리산 서북능선에도 끼지 못한 어정쩡한 봉우리가 됐다. 비록 일부의 주장이지만 지리산 주능선을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로 할 것이 아니라 종석대까지 연장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종석대는 남향으로 가지 친 두 개의 지릉을 거느리고 있다. 동남으로 분지(分枝)한 차일봉 능선과 서남으로 분지한 감미봉 능선이 그것이다.
차일봉 능선은 종석대에서 남향의 차일봉·원사봉으로 이어지는데, 이 능선을 중심으로 천은사골과 화엄사골로 나누고 행정구역상으론 광의면과 마산면의 면계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간미봉 능선은 종석대에서 서남향의 시암재·간미봉·지초봉으로 이어지며 이 능선을 중심으로 천은사골과 산동골을 나누고 행정구역상으로는 광의면과 산동면의 면계가 된다.
아무튼 주산인 종석대를 중심으로 차일봉 능선이 청룡이 되고 간미봉 능선이 백호가 되어 그 속에 은혜롭게 들어앉아 불국토를 이룬 곳이 천은사골이다. 현재 천은사는 골 안에 산재한 삼일암·도계암·수도암·상선암 등을 산내 암자로 거느리고 있으며, 절 일원이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5호로 지정돼 있다. 감로의 불국을 이루고 빼어난 형승을 가진 곳, 그래서 감로동천이다.
글·사진= 황부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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