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소설 속 그녀는 왜 블러디 메리를 마셨을까 [정인성의 예술 한잔]

정인성 2026. 3. 25.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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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 댄스 댄스>의 붉은 위로
숙취와 허기를 달래는 완벽한 해장술


얼마 전, 우연히 뉴욕타임즈 기사를 읽고 놀라서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작년에 심각한 병에 걸려 약 18kg이나 감량하고 한 달 동안 입원했다는 기사였다.

그는 내 인생의 영웅 중 한 명이자,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달리기를 하고 글을 쓰는 루틴으로도 널리 알려진 작가다. 그조차 그 기간 동안에는 달리지 못했던 것은 물론이고, 글을 쓰고 싶은 욕구도 전혀 생기지 않았다고 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는 모든 것이 허망하다. 어느덧 그의 나이는 77세가 됐다.

나 역시 작년 연말에 3박 4일 동안 입원할 일이 있었다. 하필이면 그동안 읽을 목적으로 꺼내든 책이 바로 그의 장편소설 <댄스 댄스 댄스>였다. <댄스 댄스 댄스>는 1988년에 출간된 장편소설로, 그의 다른 소설처럼 고독한 환경에 놓여진 주인공 앞에 일련의 수수께끼 같은 사건들이 펼쳐진다. 

이야기는 주인공 ‘나’의 꿈과 함께 시작된다. 그는 삿포로에 위치한 돌핀 호텔 꿈을 자주 꾼다. 그는 그곳을 자신과 동일시하며, 과거에 만났던 여자와 함께 방문했던 일을 떠올린다. 당시 그녀는 그와 돌핀 호텔로 간 뒤, 그를 남겨둔 채 홀연히 사라져버린다. 사실 그는 그녀와 몇 달 동안 함께 살면서도 아는 점이 거의 없었다. 몇 살이었는지, 어디서 태어났는지, 심지어 이름은 무엇이었는지. 알고보니 그녀는 몇 개의 이름으로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후 그는 몇 차례의 상실과 방황을 겪은 뒤 다시 호텔에 가보기로 결심한다.    

돌핀 호텔은 그대로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위치와 이름만 그대로이고 모든 것이 바뀌어 있었다. 낡고 작은 호텔이 26층짜리 거대한 빌딩으로 바뀐 것이다. 그는 원래의 돌핀 호텔과 관련된 비밀을 아는듯한 직원 유미요시를 만난다. 이들은 호텔에서 꽤 떨어진 동네의 어느 바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그가 블렌디드 위스키인 J&B에 물을 타서 마시는 동안, 그녀는 블러디 메리를 주문한다.

그녀는 블러디 메리를 주문했다. 마실 것이 나오자 그녀는 우선 한 모금 목을 축였다. 식사는 했느냐고 나는 물어보았다. “아직 안 했지만 그다지 배는 고프지 않아요. 4시에 가볍게 먹어서요”라고 그녀는 대답했다. 나는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시고, 그녀는 블러디 메리를 한 모금 더 마셨다. (댄스댄스댄스 상권, 문학사상, p.88)  

이들은 대화를 나누며 제법 술을 마신다. 그녀가 호텔의 비밀을 터놓는 동안 여러 잔의 J&B와 블러디 메리가 오고 간다. 사적으로 가까워진 이후에도 그녀가 마셨던 칵테일은 여전히 블러디 메리였다.
나는 한 번 더 룸서비스에 전화를 걸어, 아이스펠 한 잔 분의 얼음을 주문했다. 그녀는 또 욕실에 숨었다. 얼음이 오자, 나는 낮에 거리에서 사가지고 온 보드카와 토마토 주스를 꺼내어 블러디 메리 두 잔을 만들었다. 우리는 그것으로 가벼이 건배했다. (중략) “당신하고는 뭔가 통하는군요”라고 유미요시가 감탄하며 말했다. “실은 블러디 메리를 마셨으면 좋겠다고 줄곧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알았죠?” (하, p.345)

유미요시의 사랑을 끊임없이 받았던 블러디 메리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사실 블러디 메리는 꽤나 재밌는 칵테일이다. 탄생하게 된 계기, 레시피 그리고 마시는 문화까지 흥미로운 점이 많다. 일단 유래부터 이야기해 보겠다.

칵테일 블러디 메리(Bloody Mary)의 창시자는 1920년대 파리의 해리스 뉴욕바에서 일하던 바텐더 페르낭 페티오이며, 이름이 지어진 모티브는 영국 튜더 왕조의 메리 여왕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메리는 가톨릭을 국교로 세운 뒤 개신교도들을 이단으로 몰아 화형시키곤 했고, 그로 인해 피의 메리(Bloody Mary)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블러디 메리의 필수적인 재료가 토마토 주스이기에 지어진 이름인 것이다.

<댄스댄스댄스> 속 '블러디 메리' 칵테일. ⓒ정인성


그동안 나 역시 이렇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자료를 찾다가 새롭게 알게된 내용이 있었다. 뉴욕의 유명 바인 데드 래빗(The Dead Rabbit)의 잭 맥개리가 2012년 3월 디포드 가이드(Diffordsguide.com)에 정리한 이 내용은 현재까지도 가장 권위있는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블러디 메리를 널리 알린 이는 페르낭 페티오였지만, 실제 창시자는 조지 제셀이란 배우다. 1927년 플로리다의 팜비치에서 살고 있었던 그는 어느날 라 메이즈라는 바에서 숙취를 달래려 했고, 그때 바텐더 찰리가 바 뒤 쪽으로 손을 뻗더니 먼지 쌓인 병 하나를 내민다.

그 술은 바로 보드카였다. (당시에는 보드카가 미국에서 인기를 얻기 전이었다) 하지만 그는 보드카에서 나는 감자 냄새에 충격받아 이를 없애기 위해 토마토 주스와 레몬 주스 그리고 우스터 소스를 요청한다. 이 조합은 의외로 맛이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기분이 나아졌다. 그 순간 들어온 친구 메리 브라운 워버튼에게도 권하지만 그녀는 마시려다가 하얀 드레스에 흘려 버린다. “이제 나를 블러디 메리라고 불러도 돼!” 블러디 메리는 우연에 우연이 더해져 탄생한 칵테일이었다. 

그 이후로 꾸준히 사랑받던 블러디 메리는 1950년대에 전환점을 맞는다. 바로 블러디 메리의 유명세에 큰 역할을 끼친 샐러리 스틱 가니쉬가 이때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카고의 레스토랑 펌프 룸(The Pump Room)에서 스위즐 스틱(음료를 저을 때 사용하는 작은 막대)이 소진되자, 한 유명인사가 블러디 메리에 샐러리 스틱을 대신 얹어달라고 요청한 것이 가장 유력한 설이다.

그 때부터 현재까지 블러디 메리에는 샐러리 스틱을 시작으로 각종 특이한 재료들이 가니쉬로 올려지기 시작했다. 올리브와 오이 등의 재료는 아주 준수한 편이고, 컨셉을 제대로 잡으면 피자나 햄버거 등을 올리기도 한다. 책바에서는 올리브와 오이를 함께 얹어서 낸다.

블러디메리는 가장 완벽한 '해장술'이다. ⓒ정인성


블러디 메리를 만들 때 사용하는 재료는 일반적으로 보드카와 토마토 주스, 레몬 주스, 우스터 소스 그리고 타바스코 소스이다. 여기서 핵심 재료는 보드카가 아닌, 두 가지 소스와 토마토 주스다. 슬램덩크의 명대사 ‘왼손은 거들 뿐’에서, 보드카는 왼손의 역할을 한다.

먼저 우스터 소스와 타바스코 소스로 인해 블러디 메리는 호불호가 크게 나뉘는 칵테일이 됐다. 우스터 소스는 각종 향신료와 식초를 발효시켜서 만든 새콤하고도 짭짤한 맛의 소스인데 수많은 브랜드 중에서 <댄스 댄스 댄스>에는 리 앤 페린(Lea and Perrins)으로 등장했다. 여기에 타바스코는 익히 알려진 핫소스 브랜드이니, 이 두 소스가 더해진 칵테일은 난이도가 높을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책바에서도 블러디 메리를 주문하면 미리 주의사항을 안내하곤 한다.

다음으로, 블러디 메리는 토마토 주스 덕분에 세계적인 해장술이자 비행기에서도 사랑받는 칵테일이 됐다. 토마토에 들어있는 라이코펜(Lycopene)은 알코올 분해 과정에서 발생하는 독성 물질을 억제하고 간의 염증을 가라 앉히는 효과가 있다.

이정도면 애주가들이 해장술이라고 합리화하며 마실만 하다. 건조한 기내에서는 토마토의 높은 산도가 침 분비를 촉진시켜 상대적으로 수분을 유지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재료를 극단적으로 단순하게 하면 보드카와 토마토 주스만 있으면 되므로, 기내에서도 간편하게 만들어 마실 수 있는 점도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다. 

이렇게 블러디 메리는 토마토 주스의 묵직하고도 새콤달콤한 맛에, 우스터 소스와 타바스코 소스의 짭짤하고 매콤한 맛이 더해져 풍미가 강렬한 칵테일이다. 가급적 해장술 겸, 마지막 잔으로 마시는 것을 추천한다. 

그렇다면, 유미요시는 왜 블러디 메리를 마셨을까? 늦은 점심을 먹고 왔기에, 식사를 하는 것도 깔끔한 칵테일 만을 마시는 것도 애매했을 것이다. 물론 잘 모르는 남자와의 첫 만남에 높은 도수를 선택하기도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도수가 낮으면서 적당히 허기도 채워주는 블러디 메리는 좋은 선택이라 볼 수 있다. 그 이후에도 블러디 메리를 찾는 이유는 개인적인 취향일 수도, 아니면 주인공과의 좋은 기억을 이어나가려는 의도일 수도 있으리라.

무라카미 하루키는 병에서 회복한 뒤에 최근 새 소설을 마쳤다고 한다. 올 여름 일본에서 출간될 예정이고, 머지않아 한국에서도 출간될 것이다. 그가 건강히 글을 쓸 수 있기를, 그만의 춤을 오랫동안 출 수 있기를 바란다.

블러디 메리 레시피 

[재료] 

20ml of Vodka
100ml of Tomato Juice
5ml of Lemon Juice
5ml of Simple Syrup
6 dash of Worcester Sauce
3 dash of Tabasco Sauce
가니쉬 : 샐러리, 올리브, 오이, 치킨, 피자 그 무엇이든
(optional) 소금, 후추

[만드는 법]
글라스를 차갑게 냉각한다.
모든 재료를 셰이커에 넣고 스로잉을 하여 질감을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얼음 하나를 넣고 칠링 목적으로 짧게 셰이킹을 한다.
잔에 따르고, 가니쉬로 올리며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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