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큐레이션] 2030년 '5조엔씨' 약속이 기대되는 이유

최진홍 기자 2026. 3. 25. 10:21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리니지 회사’의 탈출 선언…증권가 기대만발

엔씨소프트는 한국 게임 산업에서 가장 믿음직한 존재 가운데 하나였다. 무엇보다 '리니지'로 대표되는 핵심 지식재산권(IP)은 단순한 흥행작이 아니라 국내 게임사의 수익 모델 자체를 바꿔놓은 상징에 가까웠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시장은 점차 엔씨를 "강한 회사"가 아니라 "한 장르에 지나치게 강하게 묶인 회사"로 보기 시작했다. 모바일 대전환 이후에도 엔씨의 성과는 여전히 MMORPG 중심으로 읽혔고 그 말은 곧 장르 편중, 이용자층 편중, 수익원 편중이라는 감옥에 스스로를 가뒀다.

이제 다른 언어를 쓰기 시작했다. 지난 12일 경영전략 간담회에서 박병무 공동대표가 2030년 연매출 5조원을 제시하는 한편 이 목표를 뒷받침할 3대 성장 전략으로 레거시 IP 고도화, 신규 IP 확보, 모바일 캐주얼 사업 확대를 내걸었기 때문이다. 2025년 기준 1조5000억원 수준의 매출을 5년 안에 3배 이상으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시장의 반응은 어떨까? 증권가는 "불가능한 목표는 아니다"라는 평가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물론 예단할 수 없지만, 봄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박명무 공동대표. 사진=엔씨

엔씨의 변신
얼마 전까지도 엔씨를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엔 피로감이 짙었다. '리니지'의 관성은 여전히 컸지만 그 관성만으로 미래를 설명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새로운 성장서사가 부족했고 신작의 흥행 가능성은 늘 기대와 의심 사이에서 흔들렸다. 

최근 분위기는 달라졌다. 아이온2의 견조한 흐름, 리니지 클래식의 기대 이상 성과, 그리고 모바일 캐주얼 시장 진출을 위한 인수·합병(M&A) 전략이 맞물리면서 엔씨를 둘러싼 투자서사가 "정체된 대형 게임사"에서 "포트폴리오 전환 중인 대형 게임사"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의 핵심은 목표 숫자보다 구조 변화에 있다. 사실 5조원이라는 숫자는 상징이며 본질은 엔씨가 어떤 방식으로 돈을 버는 회사가 되려 하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의 엔씨가 대형 MMORPG 한두 작품의 흥행 강도에 실적이 크게 좌우되는 구조였다면 앞으로의 엔씨는 여러 장르, 여러 지역, 여러 수익 모델이 동시에 돌아가는 체제를 지향한다. 쉽게 말해 "한 방의 회사"에서 "누적의 회사"로 이동하겠다는 것이다.

증권가가 긍정적으로 보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당장 삼성증권은 레거시 IP의 안정적 매출과 M&A를 통한 비유기적 성장을 감안하면 2030년 매출 5조원이 달성 불가능한 목표는 아니라고 평가했다. 키움증권도 엔씨를 게임업계 최선호주로 꼽으며 모바일 캐주얼 전략의 직관성과 신작 성과가 목표주가의 현실감을 높였다고 분석했다. 

유안타증권 역시 분기별 신작 모멘텀이 이어질 가능성과 함께 아이온2, 리니지 클래식, 인수 효과가 체질 개선 서사를 강화하고 있다고 봤다.
사진=엔씨

세 개의 기둥
엔씨도 만반의 준비를 했다. 먼저 레거시 IP 고도화다. 말 그대로 리니지, 아이온, 길드워, 블레이드 & 소울 같은 기존 강점 자산을 다시 세공하는 작업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옛 게임을 그냥 오래 서비스한다"는 수준이 아니라 지역 확장, 스핀오프 개발, 플랫폼 전환 등을 통해 기존 IP의 생명주기를 다시 늘리고 수익성을 다층화하겠다는 점이다. 그 결과 최근 출시된 '리니지 클래식'은 출시 3주 만에 누적 매출 400억원, 최대 동시접속자 32만명을 기록하며 시장의 시선을 붙잡았다. 

의미가 있다. 신사업과 신작 확대는 언제나 불확실성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 불확실성을 견디려면 밑단에 안정적인 현금창출원이 있어야 하며 엔씨의 레거시 IP는 바로 그 역할을 한다는 분석이다. 

다시 말해 엔씨가 모바일 캐주얼이든 신규 장르든 과감한 실험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뒷배가 되는 IP 자산이 여전히 강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IP 고도화는 기존 것을 버리는 혁신이 아니라 기존 것을 현금흐름 기둥으로 삼아 새 사업을 얹는 방식에 가깝다.

여기에 신규 IP 확보가 겹친다. 엔씨 변화의 더 본질적인 부분이다. 

시장이 그동안 엔씨에 가졌던 가장 큰 우려는 "결국 또 리니지 아닌가"라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박병무 공동대표가 간담회에서 자체 개발 10종 이상, 퍼블리싱 타이틀 6종 이상을 이미 확보했다고 밝히는 순간 판이 흔들렸다. 아무리 기술이 좋고 운영 역량이 뛰어나도 새 시대의 대중성은 새로운 서사와 새로운 장르 감각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엔씨가 더 이상 자체 대작 몇 개만으로 미래를 설계하지 않겠다는 신호로도 읽힌다. 당연히 이러한 내부 개발과 외부 퍼블리싱을 병행하는 '투 트랙'은 리스크 분산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자체 개발은 성공 시 수익률이 높지만 실패 비용도 크고 퍼블리싱은 상대적으로 위험을 분산하면서 라인업을 빠르게 확장할 수 있다는 평가다.

현재 대형 게임사의 경쟁력은 대작 하나를 만드는 능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어떤 회사가 더 많은 장르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는지, 어떤 지역에서 어떤 이용자층을 확보하고 있는지, 그리고 흥행 실패가 발생했을 때 손익 구조를 얼마나 빨리 복원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 점에서 엔씨가 신규 IP와 퍼블리싱 확대를 함께 이야기한 것은 단순한 콘텐츠 확대가 아니라 경영구조 개편에 가깝다는 분석도 있다.

한편 마지막으로 모바일 캐주얼 사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번 발표에서 가장 눈길을 끈 대목이며 시장이 엔씨를 새롭게 보기 시작한 결정적 이유라는 평가다. 

MMORPG에 강한 회사가 캐주얼 게임을 한다는 말은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장르 확장처럼 들린다. 그러나 비즈니스 모델의 근본적 이동을 의미한다. MMORPG는 높은 몰입도와 강한 과금 구조를 기반으로 한 소수 핵심 이용자 중심 사업에 가깝다면, 모바일 캐주얼은 가볍고 넓은 이용자층, 짧은 플레이 사이클, 광고 및 리워드 기반 수익모델이 결합된 대중형 사업이기 때문이다. 

두 시장의 감각은 다르다. 그래서 많은 국내 대형 게임사들이 캐주얼 시장의 규모를 알면서도, 본격적으로 들어가 성과를 낸 사례는 많지 않았다.

엔씨는 이 간극을 내부 역량만으로 메우지 않겠다는 선택을 했다. 독일의 저스트플레이를 코어로 삼고 슬로베니아의 무빙아이, 베트남의 리후후, 한국의 스프링컴즈 등 여러 스튜디오를 묶어 모바일 캐주얼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그림이다. 

영악한 판단이다. 캐주얼 시장은 게임 하나를 잘 만드는 것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용자 획득, 광고 최적화, 리워드 플랫폼 운영, 라이브 데이터 분석, 지역별 취향 대응이 촘촘하게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엔씨는 자신들의 강점인 데이터 분석과 라이브 운영 역량 위에, 실제 캐주얼 시장 실행 경험을 가진 스튜디오와 플랫폼을 얹어 '에코시스템'을 만든다는 큰 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아이온2 업데이트. 사진=엔씨

5조원으로 가는 길
엔씨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리니지 외의 게임도 만들겠다"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장르가 다른 게임을 여럿 내겠다"도 아닌, 그것보다 더 큰 변화는 "수익이 발생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겠다"는 선언이다. 

과거 엔씨의 성패는 신작 한두 개의 초기 흥행 강도에 좌우되기 쉬웠다. 하지만 모바일 캐주얼과 광고 리워드 기반 사업이 안착하면, 상대적으로 잔잔하지만 넓고 반복적인 수익 흐름을 확보할 수 있다. 당연히 기업가치 측면에서 매우 큰 차이를 만든다. 시장은 대박 가능성만큼이나 예측 가능성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이번 전략을 두고 "엔씨가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는 식의 단순한 평가는 그래서 절반만 맞다. 사실 엔씨는 예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의 라이브 운영 역량과 과금 설계 능력, 장기 서비스 경험을 가진 회사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능력이 한 장르와 한 문법에 너무 오래 갇혀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이번 변화는 능력이 없던 회사가 갑자기 바뀌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던 능력을 다른 시장 언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물론 넘어야 할 산은 분명하다. 캐주얼 시장은 MMORPG와 달리 훨씬 빠르고 냉정하며 M&A를 통해 확보한 스튜디오와 플랫폼이 실제로 엔씨 내부 역량과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을지는 검증이 필요하다. 또 신규 IP 확대 역시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럼에도 증권가에서 엔씨를 보는 시각이 달라진 이유는 '적어도' 가장 어려운 첫 단추는 끼웠다고 보기 때문이다. 심지어 방향을 바꿨다는 선언만 한 것이 아니라 일부 성과를 이미 숫자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당장 아이온2는 출시 초반의 트래픽을 상당 부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고 리니지 클래식은 기대 이상 흥행을 통해 레거시 IP 재활용이 아니라 재확장 가능성을 증명했다. 여기에 저스트플레이와 리후후 같은 인수 자산이 실적에 반영되기 시작하면 엔씨의 재무구조는 과거보다 한층 다층적으로 바뀔 수 있다.

2030년 매출 5조원의 성패는 숫자 자체보다 엔씨가 앞으로 2~3년 안에 어떤 종류의 회사로 재정의되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게임 산업은 늘 새로움의 산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기업가치를 가르는 것은 오히려 새로움보다 지속가능성이다. "엔씨는 대형 MMORPG 회사에서, 다각화된 글로벌 게임 기업으로 변신할 수 있는가" 일단 그 질문에 대한 첫 답안지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