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삼성] ‘돼지고기’까지 끊게 만든 인연, ‘구탕과 칸터’ 사이엔 어떤 이야기가 있었을까 ①

[점프볼=용인/정다윤 기자] 어느덧 한국 생활 5년 차에 접어든 구탕(29, 191cm)이다.
싫어할래야 싫어할 수 없는 선수가 있다. KBL에도 그런 몇몇이 있는데 구탕 역시 그중 하나다. 삼성에서 어느덧 2년째를 보내고 있는 구탕은 이제 팀의 한 식구처럼 스며들었다. 늘 친절하고 밝게 웃는 얼굴로 주변 사람들까지 따라 웃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렇게 K-예절까지 갖춘, 사람 좋은 구탕은 한국에서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알찬 농구 시즌을 보내기 위한 구탕이의 하루 일과표’다.
일과표를 적는 순간에도 영어 사이사이에 한국말을 섞어 썼다. 고향에 있을 때도 젓가락이 더 편하다고 말할 정도니 제법 한국 사람 다 됐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그렇게 한국에 스며든 구탕의 하루를 들여다봤다. 참고로 ‘구탕이’라는 표기는 통역사가 직접 적었다.
옆에 있던 최성모는 구탕의 빼곡한 일과표를 보더니 “왜 이렇게 계획적이냐”고 웃었다. 그러자 통역사는 손사래를 치며 극극극‘P’라고 부인했다.
구탕은 여기에 한 가지 부탁도 덧붙였다. 케렘 칸터의 사진을 꼭 넣어달라는 것이었다. 몸은 빼고 얼굴만 딱 넣어달라고 했다. 이유도 구탕답게 분명했다. 칸터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워낙 길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과를 소개할게요. 일어나서 샤워 후 아침 연습 준비를 해요. 그러면 코치님이 슛 어라운드를 할지 아니면 개인 훈련을 할지 선택할 수 있게 해주세요. 그걸 마치고 나면 팀원들이랑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가는 편이에요.”
“그다음에는 집에 가거나 아니면 숙소, 시설에서 잠깐 자기도 해요. 여기 STC(삼성 트레이닝 센터)에 쉬는 공간이 있어서 더 자기도 하거든요. more Jalsigan(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연습 전에 치료를 받아요. 주로 다리나 발목 쪽 치료를 받는데, 삼성의 최고 트레이너 중 한 명인 ‘크레이지 조’에게 맡기곤 해요.”

에피소드를 하나 더하자면 일과표를 적던 구탕은 마사지 시간 옆에 직접 손 그림까지 그려 넣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손가락이 네 개뿐이었다. 취재진이 “손가락 하나 어디 갔냐”고 묻자 구탕은 곧바로 하나를 슬쩍 덧붙였다. 덕분에 완성된 그림은 제법 부자연스러웠지만 오히려 그 어설픈 한 획이 구탕다운 웃음을 남겼다.
본론으로 돌아와 구탕은 오후 훈련에서도 땀을 진하게 쏟은 뒤 웨이트 트레이닝까지 마치고서야 하루를 접는다. 모든 훈련이 끝나면 코치들에게 “Gamsagamnida(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건넨 뒤 집으로 향한다.
훈련과 회복으로 채운 하루는 결국 코트 위에서 증명된다. 삼성에서의 구탕은 출전 시간이 늘었고 경기력도 이전보다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팀 성적은 아쉬움이 남지만 그 시간들이 헛되지는 않았다.
“정신적으로도 확실히 더 강해진 것 같아요. 지난 몇 시즌 동안 저희가 늘 좋은 시즌을 보낸 건 아니었으니까요. 그런 시간을 지나오면서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고 느껴요. 패배도 있었고 뜻대로 되지 않은 순간도 많았는데, 그런 경험들이 저를 더 강하게 만들었어요. 멘탈적으로 훨씬 단단해졌고 버티는 힘도 커졌다고 생각해요.”

한편, 신혼생활을 보내고 있는 구탕에게 집은 또 다른 휴식처다. 집에 돌아가면 아내와 함께 저녁을 먹는다. 그중에서도 K-치킨의 매력에 제대로 빠졌다. 한국의 밤은 그렇게 훈련의 피로를 털어내는 식탁이 되고, 둘만의 영화관이 되기도 한다.
“집에 가면 보통 아내와 저녁을 먹으러 나가요. 집 근처일 때도 있고, 아내가 먹고 싶어 하는 게 있으면 차를 타고 식당까지 가기도 해요. 저희는 치킨을 정말 좋아해요. 한국이 치킨은 최고인 것 같아요. 저녁을 먹고 나면 집에 돌아와서 둘만의 영화 시간을 보내요. 거의 하루 종일 떨어져 있었으니까 그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정을 나누는 거죠. 공포영화를 볼 때도 있고 로맨틱 코미디를 볼 때도 있어요. 넷플릭스로요.”
달콤한 휴식을 잠시 누린 뒤 아내가 잠들면 구탕은 다시 농구로 돌아간다. 다소 늦게 자는 편인 그의 밤은 PBA와 함께 이어진다. 필리핀 리그를 챙겨보는 시간은 단순한 시청이 아니라 공부에 가깝다. 코트를 떠난 뒤에도 농구를 놓지 않는다는 점에서, 구탕의 애정은 참 꾸준하다.
“언젠가는 제 나라 리그에서 뛰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한국에서의 선수 생활이 끝난 뒤가 될 수도 있고, 농구 커리어의 마지막 무렵이 될 수도 있겠죠. 그래서 지금도 PBA 리그를 꾸준히 챙겨봐요. 그 리그의 시스템이 어떤지도 계속 보고 있고요. 지켜보면서 여전히 배울 점이 많다고 느껴요. 또 거기서 얻는 부분들을 한국에서도 접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경기를 라이브로 자주 보는 편이에요.”
“물론 지금 PBA에서 뛰고 있는 친구들이나 예전에 함께했던 코치들을 응원하는 마음도 있어요. 그쪽은 저희보다 경기 시간이 늦어요. 저희는 주말에도 경기를 하고 평일에도 늦어도 저녁 7시면 시작하잖아요. 그런데 그쪽은 한 시간 시차가 있어서 한국 시간으로 밤 9시쯤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늦은 시간까지도 경기가 진행돼요. 저는 보통 PBA를 보다가 잠들곤 해요”

사견을 조금 보태자면 구탕은 인터뷰할 때 참 재미있는 선수다. 하나를 물으면 열을 들려준다(유머도 곁들인다). 말을 아끼기보다 기꺼이 풀어놓는 타입이라, 이야기를 따라가는 쪽도 덩달아 흥이 난다.
그렇게 또 하나 알게 된 사실도 있었다. 구탕이 칸터를 따라 돼지고기를 먹지 않게 됐다는 점이다. 무슬림인 칸터는 원래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절친의 식습관이 자연스럽게 구탕의 식탁에도 스며든 셈이다. 같이 밥을 먹는 시간이 쌓이면서 식단도 조금씩 닮아갔다.
“그리고 올해는 케렘(칸터) 때문에 식습관도 조금 바뀌었어요. 케렘이 영향을 줘서 저는 이제 돼지고기를 안 먹어요(웃음). 지금은 닭고기, 소고기, 양고기, 생선만 먹고 있어요. 케렘 덕분에 식단이 바뀐 셈이죠.”
취재진의 “그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라는 질문에 구탕은 “저희는 크리스마스나 새해가 되면 늘 새해 목표 같은 걸 세우는 편이에요. 이번에는 제가 처음으로 제 자신을 바꾸기 위해 제대로 실천한 일이 있었어요. 식단을 바꾸는 거였죠.
그래서 돼지고기를 끊었어요. 그렇게 하면 케렘와 같이 어울리기도 더 편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케렘이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다 보니 밖에서 함께 식사할 때 메뉴를 고르는 게 쉽지 않거든요. 한국에는 돼지고기 메뉴를 파는 식당이 워낙 많으니까요”라고 말했다.
동료를 향한 배려가 구탕의 식탁을 바꿨다면, 휴일의 시간은 또 다른 소중한 사람에게 향한다. 훈련이 없는 달콤한 날이면 구탕은 아내와 데이트에 나선다. 사랑꾼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쉬는 날의 구탕은 농구선수라기보다 서울을 부지런히 누비는 한 사람의 남편에 가깝다.
“아내와 함께 서울을 돌아다니는 것도 좋아해요. 사진도 찍고, 서울에 있는 시간을 최대한 누리려고 하죠. 예전에는 창원에 있었는데 거기서는 등산하거나 자연을 즐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비교적 많지 않았어요. 서울은 다르죠. 할 것도 많고 특히 밤에도 늘 생기가 있어요. 맛있는 식당도 많아서 저희는 여러 곳을 다녀보면서 새로운 것들을 하나씩 경험하는 걸 좋아해요.”
구탕은 서울의 풍경도 놓치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사진에 관심이 많았다고 했다. 하루를 바쁘게 살아낸 뒤에도, 마음에 남는 장면 하나쯤은 꼭 붙잡아두고 싶었던 모양이다.
“예전부터 사진에 관심이 많았어요. 어떤 순간을 남겨두고 나중에 추억으로 꺼내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거든요. 그래서 그때부터 사진을 많이 찍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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