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만리) 금호댁 / 이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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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댁 나의 어머니는 총알 숲을 빠져나와 아픈 배를 움켜쥐고 박쥐 잠든 동굴로 들어갔다.
금호댁에서 가장 아름답고 슬픈 시구는, "빈 젖을 아이에게 물"린 그 밤, "어머니는 달빛으로 입가심했다."가 아닐까.
하여, "밤마다 어머니의 마른 몸에서 패랭이꽃"이 피었나 보다.
그 아들 "장가 가는 날, 혼주석에 앉아 손수건을 적"시던 그 어머니는, 얼마나 흐뭇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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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댁 나의 어머니는 총알 숲을 빠져나와 아픈 배를 움켜쥐고 박쥐 잠든 동굴로 들어갔다. 겨우 숨을 말리고 있는데 다시 피난길 어둑하다. 안개꽃 입에 물고 시퍼런 어둠 따라간다. 새똥 맞으며 이름 모를 헛간에 몸을 풀었다. 차디찬 울음, 풀 한 포기 눕는다. 허리까지 적시는 물빛. 숨죽여 피는 남루한 소리들. 얼굴에 돋아나는 어슴푸레한 놀. 빈 껍데기 달빛이여.// 어머니 날 낳으시고 목마름 견디지 못해 힘줄을 마셨다. 촘촘한 냉기가 산모의 뼈를 핥는다. 미역국은 하늘의 별이 되고, 어머니는 달빛으로 입가심했다. 빈 젖을 아이에게 물렸다. 아이는 맨몸으로 울고, 밤마다 어머니의 마른 몸에서 패랭이꽃 핀다. 어머니의 가슴 콩닥거린다. 아린 손. 까마귀가 물어다 준 사카린을 물에 타서 아이에게 먹이시고 눈물 소(沼) 이루었다.// 장가가는 날, 혼주석에 앉아 손수건을 적셨다. "잘 살아라 내 아들아" 목화꽃 뜨겁게 떨어진다. 비탈에 선 단칸방에 진눈깨비 싱싱하게 파닥이는 날, 고등어 한 손 들고 오셨다. 옷고름 풀기 전에 새벽닭이 울고 어머니 속 눈썹 내려놓으시고 몰래 가셨다. 동네 골목 전깃줄에 앉은 새들이 햇살을 풀어 놓는다. 몸살 심하게 앓으시고, 저 머나먼 요단강 혼자 건너가셨다. 폭우에 붉은 길 씻기어간다. 깔깔깔 웃음, 봉분 위에 망초꽃으로 폈다. 창을 열고 창을 바라본다.
『대구의 시(詩)』 (2025. 통권 제35호, 대구시인협회)
택호(宅號)의 문학에서 여성의 슬픈 발자취가 남는 이유는, 그녀의 시선이 단순히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근대라는 시대가 여성에게 남긴 상처와 운명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총알 숲"은 동족상잔의 비극과 젊은 어머니가 겪은 산고(産苦)의 아픔을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이유환 (1951~, 대구 출생)의 「금호댁」은, 가부장적 질서하에 고달픈 삶을 살다간 '여자의 일생'을 보는 듯하다. "아들"과 어머니와의 고통스런 현실을 행간에 새기는 일은 아프다. 시공을 초월하여 사모곡은 언제나 감동과 울림을 준다. 전쟁통에 태어난 이유환은 어머니만 떠올리면 울컥한다. 이 시는 생의 한복판을 관통한다. "촘촘한 냉기가 산모의 뼈를 핥는" 피난길은, 모자(母子)에겐 모진 세월이었다. 「금호댁」에서 가장 아름답고 슬픈 시구는, "빈 젖을 아이에게 물"린 그 밤, "어머니는 달빛으로 입가심했다."가 아닐까. 어미의 피 묻은 손바닥에 싸인 어린 아기의 모습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 어떤 성령의 숭고함이 내린 것처럼 감동적인 장면이다. 하여, "밤마다 어머니의 마른 몸에서 패랭이꽃"이 피었나 보다. 그 아들 "장가 가는 날, 혼주석에 앉아 손수건을 적"시던 그 어머니는, 얼마나 흐뭇하셨을까. 모자(母子)의 정리(情理)가 천륜으로 이어져 곡진하다. 평생 가난 속에서 자식을 위해 밤낮으로 고생하신 당신의 삶은, 또 얼마나 무거웠을까. 이유환의 산문시는 유장한 내재율도 좋거니와, 사모곡의 애틋한 애조를 띤다.
김동원(시인·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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