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시간 모두 선물이자 축복”…이해인 수녀 [전원생활 I 무늬가 있는 삶]

모든 것에 감사하고 모든 것을 사랑하다
이 기사는 전원의 꿈 일구는 생활정보지 월간 ‘전원생활’ 기사입니다.
광안리 바다와 멀지 않은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정문을 지나 오르막길을 조금 걷다 보면 단정하게 정리된 정원과 새하얀 성당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한편에는 ‘해인글방’이 자리하고 있다.
1997년 문을 연 해인글방은 이해인 수녀(80)가 문서선교를 시작하기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그는 주로 이곳에서 독자들의 편지에 답장하거나 집필에 몰두한다. 저마다의 사연으로 찾아오는 이들에겐 따듯한 위로를 건넨다.

해인글방은 이해인 수녀가 지나온 세월이 켜켜이 쌓인 앨범 같은 공간이기도 하다. 추억이 담긴 사진과 손때 묻은 책들, 수북이 쌓인 편지에서 그의 삶이 읽힌다. 그런데 그와 마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예상치 못한 말을 들었다.
몇 달 후면 해인글방이 사라지고 수녀원에 필요한 다른 공간으로 활용된다는 얘기였다. 아쉽진 않은지 조심스레 물었다.
“꼭 필요한 몇 가지만 수녀원에 두고, 일부는 모교인 경북 김천 성의여고와 고향인 강원 양구에 보낼까 고민 중이에요. 마음을 비워야죠. 공동체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요. 다만 이곳을 찾던 독자들은 서운할 수 있겠네요.”
담담한 그의 어조에서 내려놓음에 익숙한 수도자와, 인연에 감사하는 시인의 모습이 겹쳤다.
시를 사랑하던 소녀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어머니와 먼저 수녀가 된 언니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수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1964년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에 입회해 1976년 종신서원을 했고, 이를 기념해 같은 해에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출간했다.

시집에는 그동안 틈틈이 써온 짧은 시 34편과 단상 10편이 담겼다. 원래는 수도원 가족, 지인들과 돌려보기 위해 소량만 인쇄한 시집이 일부 신문에 소개되면서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특히 ‘기도는 나의 음악/가슴 한복판에 꽂아 놓은/사랑은 단 하나의/성스러운 깃발’로 시작하는 표제작 ‘민들레의 영토’는 수도자의 고독과 기쁨을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시인으로서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뜻하지 않은 유명세로 곤란한 상황도 벌어졌다. 수녀원으로 러브레터를 보낸 이도 있고, 수녀 지원자로 위장해 찾아온 기자도 있었다. 공동체에 피해를 주는 것 같아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시집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반세기 동안 50쇄를 넘게 찍었다. 대중은 왜 이토록 그의 시에 열광했을까.
“어두웠던 시대에 지친 영혼을 달래주고 맑게 해주는 시가 필요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시련도 있었지만 돌아보니 <민들레의 영토>는 제게 참 고마운 책이에요. 오늘날의 시인 수녀를 있게 한 첫 시집이자 초심자의 갈망과 순수함이 담긴 애틋한 첫사랑과 같은 책이죠.”

이후에도 이해인 수녀는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작은 기쁨> <희망은 깨어 있네> 등 다수의 시집과 <두레박> <풀꽃단상> <소중한 보물들> 등 산문집을 펴냈다. 총 33권 중 최신작은 지난해 11월에 출간한 산문집 <민들레 솜털처럼>이다. 그동안의 인터뷰와 미공개 대담 중 꼭 전하고 싶은 말들을 담았다. ‘내가 아니면 누가, 지금 아니면 언제’ ‘넓어져라 깊어져라 순해져라’ 같은 각 장의 제목에서 그의 삶의 태도가 엿보인다.
“유언 같기도 하고, 인생의 과제 같기도 하네요. 제가 떠나도 여기에 담긴 말들이 민들레 솜털처럼 오래 날아다녔으면 해요.”
“수녀원에는 하루 일정표인 날질서라는 것이 있어요. 정해진 시간에 맞춰 다 같이 모여 기도하고, 식사하고, 각자의 일터에서 소임을 다해야 해요. 마음대로 빠질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나름 ‘극기(克己)’를 요구해요. 익숙해지면 규칙 안에서 자유를 느끼는 경지가 되지만 그땨까진 많은 시간이 걸리죠.”

각자 살아온 환경도, 성향도 다른 사람들이 공동체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데도 엄청난 내적 투쟁이 따른다.
“이기심에서 벗어나야 하고, 누구를 원망해서도 안 돼요. 신앙 안에서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죠. 저는 힘들 때 주로 기도와 침묵을 택했어요. 흰 구름과 광안리 바다를 바라보거나 위로의 시를 쓰기도 했죠.”
수도생활로 단련된 내면은 그의 투병생활에도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이해인 수녀는 2008년 대장암 진단을 받았다. 힘든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고통을 내색하지 않고, ‘명랑투병’ 중이라고 말하며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 모습은 많은 사람에게 위로가 됐고, 투병 과정은 그가 아픈 이들의 고통을 이해하는 기회가 됐다. 이제 그는 아픔도 축복이었다고 웃으며 말한다.
어떤 경우에도
남의 탓을 안 하기로 했다
고요히 나 자신만
들여다보기로 했다
내게 주어진 하루만이
전 생애라고 생각하니
저만치서 행복이
웃으며 걸어왔다
(<희망은 깨어 있네> ‘어떤 결심’ 중)
수도자가 된 것을 후회해본 적은 없을까. 선택 자체를 후회하진 않지만, 그에겐 떠올리면 마음 한편이 무거워지는 젊은 수도자 시절의 기억이 있다.
“그땐 성스러운 것에 대한 개념이 경직돼 있었어요. 내 수도생활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까칠하게 굴었죠. 그때 섭섭했을 이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어요. 지금은 낯선 사람이 하나 없고, 세상 모든 사람이 친척 같아요. 이런 마음을 갖게 된 것도 수도생활 60년이 안겨준 선물이죠.”
“지난해에만 이곳 수녀님들 다섯 분이 돌아가셨어요.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죠. 저도 80이 됐으니 세상 여정을 마무리하는 연습을 해야 하는 시기예요. 모든 애착과 욕심을 내려놓는 연습을요.”평생 사랑과 희망을 노래해온 수녀 시인에게도 죽음은 두려운 존재일까.“
꼭 어둡고 슬프게만 생각할 건 아니에요. 삶에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정리하고, 선하게 살게 해주는 조력자가 될 수도 있어요. 언젠가 그런 날이 오리라 여기면서 마음을 비우고, 지금밖에 없는 것처럼 살고, 최대한 기쁘게 사는 거죠.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요. ‘모든 것에 감사했습니다. 모든 것을 사랑했습니다.’”

다가올 봄, 그는 <민들레의 영토> 출간 50주년을 맞아 특별한 책 한 권을 펴낼 예정이다. <해인의 바다, 영혼의 일기(가제)>다. 종신서원을 했던 1976년도 일 년 치 일기와 최근에 쓴 산문 몇 편이 담긴 책이다. “독자들이 꽁꽁 닫혀 있던 비밀 서랍을 열어보듯 기뻐했으면 좋겠어요.”그의 얼굴에 소녀처럼 환한 미소가 번진다.
어쩌면 죽음을 묵상하는 것이 그가 매일을 기쁘게, 새롭게 살게 하는 힘인지도 모른다.
그는 오늘도 기도하고 글을 쓴다.
글 김난 기자 I 사진 임승수(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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