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 중증질환서 ‘지급 거절·소송’ 집중...환자 생존권 위협

이재원 기자 2026. 3. 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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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관 자의 해석·의료자문 논란·소송 남발...사적 안전망 신뢰 흔들
의협 “입원 기준 시대착오”…보험 해석이 의료 판단 대체하는 구조 비판
보험업계 “지급률 98%에도 2조 손실”...과잉 비급여·보험사기 지속가능성 위협

[의학신문·일간보사=이재원 기자] 4천만명 이상이 가입하며, 실손의료보험이 대표적 사적 안전망으로 자리 잡았지만, 암 등 중증 질환 영역에서는 보험금 지급 거절과 소송이 집중되며 환자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약관 해석의 자의성, 불투명한 의료자문, 소송 남발 등 구조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환자·의료계와 보험업계 간 갈등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반면, 보험업계는 과잉 비급여와 보험사기로 인한 재정 악화를 이유로 제도 지속가능성 위기를 경고하고 있어, 실손보험을 둘러싼 정부의 구조 개편 논의도 본격화되고 있다.

24일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와 신장식 의원,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 주최로 열린 실손보험 제도 개선 관련 국회 토론회에서는 중증질환 환자 실손보험 부지급 등 피해 사례와 제도적 한계를 중심으로 다양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최태영 변호사(연세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발제에 나선 최태영 변호사(연세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는 "현장에서 벌어지는 보험금 지급 거절은 단순한 분쟁을 넘어 환자의 생존권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며 "실손보험이 공보험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설계됐지만, 실제로는 중증질환 영역에서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변호사가 2004년부터 최근까지 상담·소송 사례 74건을 분석한 결과, 약관과 다른 안내 또는 축소 해석에 따른 지급 거절이 약 30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전이·재발 소견 요구 16건, 보험사 지정 제3의료기관 자문 강제 15건, 판례 오인용 9건, 특약 강요 등 기타 사례 4건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특정 병원 치료를 일괄 제외하거나, 약관에 없는 '암 진단 후 2년 제한'을 임의 적용하는 사례, 특정 치료 포기를 요구하는 합의서 작성 요구 등도 확인됐다.

주요 문제점으로는 ▲약관 해석 충돌 ▲지급 기준의 모호성 ▲견제 장치 부족 ▲제3의료자문 신뢰성 문제 등이 꼽혔다. 최 변호사는 "단순한 구조의 약관에도 불구하고 보험사가 '치료 필요성'이나 '입원의 상당성' 같은 추가 요건을 자의적으로 적용해 지급을 거절하는 사례가 많다"며 "약관은 소비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원칙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급 기준의 불명확성 역시 환자 불안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동일 질환·동일 치료임에도 담당자나 손해사정인에 따라 지급 여부가 달라지는 '로또식 심사'가 발생하고, 사전 예고 없이 지급이 중단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환자들은 치료 지속 여부조차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

분쟁 해결 체계의 한계도 도마에 올랐다. 금융당국의 분쟁조정이 강제력이 부족해 환자들이 결국 소송으로 내몰리고, 최근에는 보험사가 기존 지급 보험금에 대해 부당이득 반환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까지 증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수억 원대 반환 소송으로 환자가 경제적 파탄 위기에 놓이는 사례도 소개됐다.

제3의료기관 자문 역시 공정성 논란의 중심에 섰다. 보험사 지정 기관 중심으로 자문이 이뤄지고 환자 의견 반영은 제한적인 데다, 결과 역시 '치료 적정성 불인정' 등 획일적 판단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자문 결과 왜곡 의혹까지 제기되며 신뢰성 문제가 확대되고 있다.

이에 최 변호사는 환자 보호를 위한 개선 방안으로 ▲약관 해석 가이드라인 마련 ▲제3의료기관 자문 독립성·투명성 강화 ▲소송 전 분쟁조정 의무화 등 소송 억제 장치 도입 ▲보험사 지급 거절 비율·소송 건수 공시 및 감독 강화 등을 제시했다. 이어 "입원 및 치료 필요성 판단은 보험사 기준이 아닌 주치의의 의학적 판단을 우선하도록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의료계 "입원 기준 지급·보험사 해석 우선 구조…환자·현장 모두 왜곡"

의료계 역시 현장의 혼란을 호소했다. 이태연 대한의사협회 부회장은 "진료 현장이 보험사와 환자 사이에서 서류 요구와 분쟁에 시달리고 있다"며 "원무과 인력이 하루 종일 보험 관련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일상화될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암 환자 등 중증 질환자들은 치료 자체의 부담에 더해 보험금 지급 거절까지 겹치며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태연 의협 부회장

특히 '입원 여부'를 기준으로 보험금 지급을 판단하는 관행에 대해 강한 비판이 제기됐다. 이 부회장은 "의료기술 발전으로 당일 수술과 외래 치료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입원 여부를 기준으로 삼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며 "보험사의 해석이 의료적 판단을 대체하는 구조는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원 치료 시 보장 한도가 낮아 불필요한 입원을 유도하는 왜곡이 발생하고, 이를 다시 부지급 사유로 활용하는 모순적 구조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 부회장은 "보험금 지급 기준은 입원 여부가 아니라 치료의 적정성 여부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보험자의 해석이 의료적 판단을 대체하는 구조는 더 이상 지속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중증·경증 질환 분류 체계의 문제도 짚었다. 이 부회장은 "환자 입장에서는 중증과 경증을 구분하기 어렵지만, 현행 체계에서는 일부 골절이나 고관절 손상 등도 경증으로 분류돼 치료 접근에 제한이 발생하기도 한다"며 "향후 5세대 실손보험에서 중증 여부에 따라 자기부담률과 보장 한도가 달라지는 구조가 도입될 경우 환자 부담이 크게 증가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이 부회장은 제3의료자문 문제와 관련해 대한의사협회의 대응 방안을 소개했다. 이 부회장은 "그동안 의협은 보험 관련 자문 기능을 수행하지 않았으나, 실손보험 분쟁이 확대되면서 올해 2월 금융감독원과 제3의료자문 체계 도입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며 "보험사 중심의 자문 구조를 소비자 중심으로 전환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해당 협약은 우선 실손보험을 제외한 정액형 보험에서 뇌·심혈관 질환 및 후유장애 등에 대한 자문부터 시작된다.

유창훈 서울의료원 공공보건정책실장은 보다 근본적인 구조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실손보험은 단기적이고 명확한 치료 행위 보전에 적합한 구조인데, 중증질환은 장기·반복 치료와 부작용 관리까지 포함되는 복합적 영역"이라며 "설계 자체가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암 치료는 수술·항암·방사선 치료가 복합적으로 진행되고 환자별 편차도 크기 때문에 치료 필요성을 비전문가가 판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유창훈 서울의료원 공공보건정책실장

또한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 기준으로 삼는 '직접 치료' 개념의 모호성도 문제로 언급됐다. 유 실장은 "의학적으로는 보조치료나 고식적 치료 등으로 구분할 뿐 직접·간접 치료 구분은 명확하지 않다"며 "재활, 통증 관리 등도 치료의 중요한 일부"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보장 기준을 보다 명확히 하고 분쟁 유형을 체계화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의료 이용 형태와 관련해서도 중증질환 치료는 제한된 의료기관에서 이뤄지는 만큼 입원과 통원 여부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봤다. 그는 "입원이 필요한 환자를 통원으로 치료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치료 방식은 전적으로 주치의의 의학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유 실장은 정부와 보험감독 당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그는 "보험은 계약 관계이지만 전문성의 비대칭성이 큰 영역인 만큼 감독 당국의 개입이 필수적"이라며 "분쟁 유형을 체계화하고, 보장 범위와 지급 기준을 보다 명확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보험금 지급 거절 시에도 환자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충분한 설명이 제공돼야 한다"며 "현재처럼 정보 제공 없이 지급을 거절하는 것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공보험과 실손보험 간 연계 및 협력 필요성도 제기했다. 

보험업계 "실손, 중증질환 '최후 안전망'…과잉진료·보험사기 대응 위한 장치 불가피"

반면 보험업계는 실손보험이 여전히 중증질환 환자의 핵심 안전망으로 기능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도, 과잉 진료와 보험사기로 인한 재정 악화를 위해 보험사들이 여러 장치를 마련한 것이라고 전달했다. 

이형걸 손해보험협회 장기보험부 부장은 2025년 기준 손해보험사 7개사의 추정 데이터를 인용하며 "암 환자 실손보험 지급 건수는 약 263만 건, 지급 보험금은 약 1조3000억 원 수준"이라며 "특히 암 입원 치료의 경우 지급률이 96.2%에 달하고, 전체 실손 청구 대비 지급률도 98.7%, 24시간 내 지급 비율이 약 97%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제금액과 약관상 면책 사항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의료비가 보장되고 있는 구조"라며 "실손보험이 암 환자의 치료 과정에서 사실상 마지막 재정적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일부 의료기관에서 비급여 과잉 진료와 조직적 보험사기가 발생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손실이 연간 약 2조 원에 달한다"며 "이 같은 구조가 지속될 경우 상품 유지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불필요한 입원 유도나 치료와 무관한 고가 주사를 암 치료로 둔갑시켜 청구하는 사례도 적발됐다는 설명이다.

이 부장은 제3의료자문에 대해 "지급 축소가 아니라 의학적 타당성 확인을 위한 절차"라고 해명했다. 이어 제도 개선 방향으로는 ▲비급여 진료 가이드라인 표준화 ▲독립적 의료자문기구 신설 ▲보험사기 연루 의료기관에 대한 처벌 강화 등을 제시했다. 그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공신력 있는 기관 주도로 암 등 중증 질환 비급여 진료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며 "기준이 명확해지면 환자와 보험사의 예측 가능성도 함께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정부 또는 공공기관 산하에 독립적인 의료자문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안에도 적극 찬성한다"며 "해당 체계가 구축되면 보험사들도 그 결과를 적극적으로 따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감원 "의료자문 공정성·소송 통제 강화…부지급 논란 해소 제도개선 추진"

금융당국은 그간의 제도 개선 노력을 밝히며, 비급여 과잉 이용에 따른 보험료 급등 구조에 대해서는 "제도 지속가능성을 위한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현욱 금융감독원 보험상품분쟁2국 팀장은 의료자문 제도와 관련해서는 "그간 공정성과 투명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개선을 추진해왔다"며 "의료자문 관리위원회를 통해 자문 대상 선정과 위원 구성 기준을 마련하고, 자문 실시율·부지급률·소요 기간 등을 공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현욱 금융감독원 보험상품분쟁2국 팀장

이어 "현재 의료자문은 전체 청구의 0.1% 이하 수준에서 제한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자문 사례 중 전부 지급 비율도 약 40% 수준"이라며 "일부 지급 사례까지 포함하면 상당 부분이 보험금 지급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의료자문은 부지급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판단이 어려운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활용돼야 한다"며 "담당 의사 소견과 진료기록을 우선 검토한 뒤에도 결론이 어려울 때 활용하도록 지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소송 남발 논란과 관련해서는 "보험사 소송관리위원회 설치, 외부 전문가 참여 의무화, 소송 건수 및 결과 공시 등 내부통제를 강화해 왔다"며 "금융소비자보호법 개정으로 2000만원 이하 소액 분쟁은 분쟁조정 절차가 개시되면 보험사가 소송을 제기할 수 없도록 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어 "국회에서 분쟁조정 기능 강화를 위한 추가 입법이 논의되고 있어 제도 개선이 이어질 경우 소송 관련 우려도 완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약관 해석과 관련해서는 "담당 의사 소견이 중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치료 필요성 등에 대해 대법원 판례가 존재하는 만큼 감독당국도 이를 벗어나기 어렵다"며 "분쟁조정은 법적 강제력이 없는 중재 성격이기 때문에 사법체계 내에서 판단을 따를 수밖에 있다"고 설명했다.

전 팀장은 실손보험의 구조적 개선을 위해서는 제도적 개편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밝혔다. 그는 "실손보험은 보험금 지급액이 증가하면 보험료가 상승하는 구조로, 실제로 1세대 상품의 경우 보험료가 매년 15%씩 인상되는 등 소비자 부담이 크게 늘었다"며 "연평균 보험금 증가율이 약 10%에 달하는 상황에서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과잉 비급여 이용이 지속될 경우 보험료 폭등으로 고령층 등 취약계층이 보험을 유지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결국 선량한 가입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