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고 시간 멈춘 4885가구… 조합 내홍ㆍ소송에 사업 표류
[르포] 성남 상대원2구역 현장
DLㆍGS, 공사비ㆍ착공 조건‘충돌’
조합장 금품 의혹ㆍ해임 총회까지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 리스크 증폭
1㎞ 펜스 속 공사 중단… 피해 가중

[대한경제=한형용ㆍ설효 기자]“우리도 조합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죠.” 경기도 성남시 상대원2구역에서 수년째 터를 지켜온 S부동산 공인중개사 대표의 목소리엔 기다림의 피로감이 짙게 스며있었다. 허물기만 하고 짓지 못한 채, 이 땅의 시간은 최초 시공사를 선정한 2015년에 멈춰 있다.
지난 18일 오전 10시 경기도 성남시 단대오거리역 4번 출구. 다섯 갈래 도로 사이로 새롭게 들어선 아파트 두 동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희망로’라는 이름처럼 이 일대가 새로 태어나고 있다는 인상은 컸다. 하지만 그 희망은 200m 만에 끊겼다.
아파트 단지 사이길을 빠져나오자 흰색 가림막이 시작됐다. 약 3m 높이의 가림막은 도로를 따라 끝없이 이어졌다. 도로에 맞닿은 부분만 약 1㎞. 내부 면적 24만㎡ 규모의 땅이 통째로 갇혀 있었다.
“여기가 상대원2구역 인가요?”라는 짧은 질문에 인근 편의점 주인은 펜스 쪽을 힐끗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2년 전엔 여기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지금은 저것만 남았어…”라며 말끝을 흐렸다.
출입구 틈새로 내부가 살짝 엿보였다. 넓게 평탄화된 부지. 몇몇 임시 가건물. 아무도 없는 공터. 타워크레인도, 레미콘도, 인부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쯤이면 철근을 세우고 콘크리트를 타설하며 분주해야 할 현장. 들리는 건 바람 소리뿐이었다.
펜스에는 대형 현수막과 같은 문구 하나가 붙어 있었다. ‘적법한 시공사인 DL이앤씨의 승인 없는 외부인 출입을 금지합니다.’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의 전모를 모두 담기엔 짧은 문장이었지만, 이 사업지가 처한 현실을 압축하고 있었다.
상대원2구역의 시간이 멈춘 건 지난해 12월부터다. 조합은 2015년 DL이앤씨를 시공사로 선정했다. 하지만 DL이앤씨는 조합이 요구한 프리미엄 브랜드 ‘아크로’ 시공을 거부했고, 갈등골은 깊어졌다. 이후 지난해 12월29일, 조합은 새 시공사 선정 입찰공고를 냈다. DL이앤씨와의 결별 선언이었다.
이후 조합은 지난 1월부터 두 차례 시공사 입찰 공고를 냈고, GS건설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그러나 지난 13일 조합장 금품수수 의혹이 불거졌고, 급기야 26일에는 조합장 해임 총회까지 예정된 상태다. 그렇게 공사 재개는 또다시 미궁에 빠졌다.
현장이 멈춰선 사이 시공사들의 수 싸움은 치열해지고 있다. DL이앤씨는 지난 21일 조합에 ‘사업 조건 변경 통지 및 조합원 안내 요청’ 공문을 발송했다. GS건설을 최종 시공사로 선정하기 위한 총회를 겨냥한 대응 카드다.
DL이앤씨가 제시한 조건은 확정공사비 △3.3㎡당 682만원 △6월 착공 확약 △조합원 가구당 3000만원 지급 △조합원 분담금 입주 시 100% 납부 유예 △사업촉진비 2000억원 조달 등이다.
앞서 GS건설은 단지명으로 ‘마스티어 자이’를 제안하면서 △8월 내 착공 확정 △확정공사비 3.3㎡당 729만원 △손해배상금 200억원, 공사비 감액 △조합 제시 일반분양가(4500만원) 수용 등을 확약했다.
동시에 DL이앤씨는 조합 대의원회 결의에 대해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하고,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해놓은 상태다. 조합이 지난 7일 대의원회에서 결의한 ‘시공사 입찰 결과에 따른 후속절차(우선협상대상자 지정 등)의결의 건’에 관한 효력을 본안 판결 확정까지 정지해달라는 요청이다.
재개발은 낡은 것을 허물고 새것을 짓는 과정이다. 하지만 상대원2구역에서는 허물기만 하고 짓지를 못하고 있다. 브랜드 갈등, 조합 내부 분열, 조합장 금품수수 의혹, 법적 분쟁까지 끊이지 않고 있다.
상대원2구역의 사업 향방은 시공사들이 새롭게 제시한 조건에 대한 조합원들의 평가, 그리고 조합 총회까지 다양한 변수 앞에 놓였다. 흰색 가림막 너머, 4885가구의 미래가 어떻게 그려질 지 주목된다.
한형용ㆍ설효기자 je8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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