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공공기관들, 하청교섭 피하려 ‘사용자성 지우기’ 작업했다

박태우 기자 2026. 3. 25.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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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곳 ‘노란봉투법 회피 전략’ 문건
개정 노동조합법(노란봉투법) 시행 첫날인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서 열린 ‘민주노총 투쟁 선포대회’에 참가한 간접고용·하청·플랫폼 노동자 등이 실질적인 사용자인 ‘진짜 사장’ 원청과 단체교섭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공공기관들이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시행에 앞서 하청 노동조합과의 단체교섭 의무를 회피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긴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공공기관의 ‘모범 사용자’ 역할을 강조하지만, 공공기관들은 하청 노동자들의 ‘사용자’가 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다.

한겨레가 24일 이용우·정준호·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입수한 기후에너지환경부·국토교통부·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 산하 주요 공공기관 17곳의 노란봉투법 대응 계획 문서와 외부 연구용역 제안요청서·보고서 등을 확인해보니, 노란봉투법에 따른 사용자성 인정을 ‘리스크’(위험요인) 등으로 규정하며 사용자성 ‘완화’ 계획을 수립한 곳이 9곳에 달했다.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원청 사업주를 사용자로 봐 하청 노조와 단체교섭 할 의무를 지게 하는데, 공공기관들은 사용자성을 없애 교섭 부담을 줄이려 한 것이다.

계약서 고쳐 사용자성 지우기

국토부 산하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는 지난달 20일 작성한 ‘노조법 개정안 시행에 따른 법률리스크 관리방안’에서 “제이디시를 상대로 단체교섭 요구가 제기될 수 있어, 교섭 대응 미흡 때 법적·경영상 부담 확대가 우려된다”며 “사용자성 인정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제이디시는 이미 지난해 11월 서울행정법원에서 자신들이 운영하는 면세점 입주 업체 노조와 단체교섭을 할 의무가 있다는 판결을 받은 상태다. 하지만 입주 업체 노동자들에게 직접 지시를 하지 않는 등 “업무 지시 방식, 관리·감독 범위 등에 대한 관리 강화”를 해 사용자로 인정되지 않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다른 기관들도 자회사·하청업체와의 계약서·과업지시서 등의 문구를 고치겠다는 내용이 자주 언급된다. 사용자성에 대한 1차적 판단이 계약서 등을 바탕으로 이뤄지니 ‘문서 작업’을 통해 사전 대비하겠다는 취지다. 이를테면, 원청이 하청업체에 “작업을 중지시킬 수 있다”고 돼 있는 것을 “작업중지를 요청할 수 있다”고 고치거나, 하청 노동자의 초과근무에 대해 원청이 하던 승인을 폐지하겠다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자회사의 자율성·독립성을 강화하겠다는 내용도 자주 발견된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자체 문건에서 “용역 계약상 실질적 지배력 인정 요소를 제거”하라고 썼다. 인천국제공항공사도 “사업부서는 소관 계약이 사용자로 인정되지 않도록 계약 체결·관리에 있어서 법률 검토를 강화”해야 한다고 적었다. 한국지역난방공사는 자문 법무법인으로부터 “법 시행 직전 계약서 문구의 일부 변경만으로는 실질적 지배력(사용자성) 판단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의견을 받고도, 도급·용역 계약서에 대한 ‘사용자성 체크리스트’를 작성해 계약 내용 변경을 추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공항공사·한국도로공사·여수광양항만공사도 대응 문건에 비슷한 내용이 담겨 있다.

“하청 노조 단결력 약화시켜라”

자회사와 하청 노조가 여러 개인 경우 ‘갈라치기’를 시도하는 컨설팅 내용과 대응 계획도 있었다. 한 컨설팅 업체는 한국도로공사에 “자회사 노조 간 이해관계 차이를 교섭 과정에서 드러내면서, (중략) 특정 자회사와 먼저 부분 합의를 도출해 통합된 노조의 단결력을 약화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한국공항공사 대응 문건에는 “(자회사) 위탁업무별로 (하청 노조의) 이해관계가 상이해 운영 방식에 차이가 존재하므로 업무 특성별 차별화된 대응 및 교섭 전략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노란봉투법 시행을 앞두고 노동계 안팎에서는 정부의 ‘모범 사용자’ 정책 기조에 따라 공공기관이 원·하청 교섭을 선도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하지만 법 시행 2주가 된 이날까지 한화오션·씨제이(CJ)대한통운 등 주요 민간기업들이 단체교섭 의사를 밝힌 데 반해, 하청 노조와 교섭하겠다고 나선 공공기관은 지방공기업인 부산교통공사가 유일하다. 여수광양항만공사는 자체 문건에 “자회사의 사용자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면서도 “(노동위원회의) 사용자성 인정 전 교섭 절차 진행 지양”이라고 적었다.

공공기관이 이러한 계획을 세우기 위해 쓴 예산은 적게는 수백만원, 많게는 2억2천만원(한국공항공사)에 이른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는 “공공기관이 ‘사용자 되기’를 회피한다면, 어느 민간기업이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겠다고 나서겠나”라며 “정부는 공공기관이 성실히 교섭에 임할 수 있도록 조처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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