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나는 쇠기둥을 쪼는 골퍼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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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드 중에 야간 조명등 쇠기둥을 쪼는 딱따구리를 본 적이 있다.
나무 속 벌레를 잡으려고 구멍을 뚫기 위해 나무를 쫀다는 상식을 벗어난 딱따구리의 이런 모습에 모두 의아해했다.
쇠기둥, 가로등, 표지판 같은 금속 구조물은 나무보다 훨씬 큰 공명음을 내 딱따구리 종들이 나무 대신 이런 구조물을 드러밍 도구로 고른다고 한다.
쇠기둥을 두드리면 요란한 금속음이 나지만 그 속엔 먹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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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한국] 라운드 중에 야간 조명등 쇠기둥을 쪼는 딱따구리를 본 적이 있다. 나무 속 벌레를 잡으려고 구멍을 뚫기 위해 나무를 쫀다는 상식을 벗어난 딱따구리의 이런 모습에 모두 의아해했다.
쇠기둥을 나무로 착각한 것은 아닌지, 부리를 단단하게 단련하기 위해 쇠를 쪼는 게 아닌지, 의견이 분분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딱따구리의 그런 행동은 벌레 사냥이 아니라 울림이란 것을 알았다. 자신의 영역을 선언하고 존재를 알리는 '드러밍(drumming)'의 하나다.
딱따구리는 벌레를 찾기 위해 나무를 쫀다(pecking). 봄철이 되면 수컷은 영역을 선언하고 짝을 부르기 위해 드러밍을 한다고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이 소리의 크기와 울림이다.
쇠기둥, 가로등, 표지판 같은 금속 구조물은 나무보다 훨씬 큰 공명음을 내 딱따구리 종들이 나무 대신 이런 구조물을 드러밍 도구로 고른다고 한다. 조명등 쇠기둥은 딱따구리에겐 훌륭한 금속 공명통인 셈이다.
울림이 길고 선명하다. 경쟁자에겐 위험이 되고 짝 후보에겐 매력적인 신호를 보낼 수 있는 도구인 것이다. 마치 작은 북보다 커다란 스피커를 고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딱따구리로선 대단한 진화다.
문득 골퍼들도 혹시 쇠기둥을 두드리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연습장이나 코스에서 우리는 종종 '소리'를 좇는다. 임팩트 순간의 날카로운 파열음, 동반자의 감탄, 그린에 떨어지는 볼의 부드러운 착지음. 그래서 헤드 스피드를 더 올리고, 드라이버를 더 강하게 휘두르며 존재를 증명하려 한다.
하지만 큰 소리가 항상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아니다. 쇠기둥을 두드리면 요란한 금속음이 나지만 그 속엔 먹이가 없다. 벌레는 나무 속에 숨어 있다. 골프에서도 진짜 성장은 요란한 소리보다 조용한 반복 속에 숨어 있다.
딱따구리의 드러밍이 영역 선언이나 구애 선언이듯 골퍼의 드라이버 샷도 때로는 자존심의 선언이 된다. '나는 아직 멀리 칠 수 있다.'는. 그러나 골프는 누군가를 향한 외침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질문이어야 하지 않을까.
쇠기둥에서 나는 소리는 멀리 퍼진다. 그러나 그 울림은 밖으로만 퍼진다. 나무를 두드릴 때의 진동은 자기 몸 안으로 되돌아온다. 딱따구리는 그 미세한 반향을 통해 나무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안다.
골프도 그렇다. 스윙의 결과보다 몸 안으로 되돌아오는 감각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내 중심은 어디에 있는가. 어깨는 들리지 않았는가. 리듬은 끊기지 않았는가. 밖으로 울리는 소리보다 안으로 되돌아오는 진동이 나를 성장시킨다.
가끔 우리는 스코어, 체면, 거리, 경쟁심이라는 쇠기둥을 요란하게 두드린다. 그러나 골퍼가 필요로 하는 자양분은 고요 속에 있다. 짧은 퍼트의 집중, 실패를 받아들이는 태도, 동반자를 향한 배려. 요란하지 않지만 깊은 울림을 남기는 것들 속에.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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