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임금·부동산 줄줄이 상승… “日 디플레 시대 끝났다”

“일본의 디플레이션 시대는 완전히 끝났다.”
구로다 하루히코 전 일본은행(BOJ) 총재가 24일 닛케이신문과 인터뷰에서 일본 경제가 대전환점에 돌입했다고 분석했다. 구로다 전 총재는 “일본 경제성장률은 1%대 초반까지 올랐고, 실업률(2.5%)은 매우 낮아 완전고용을 넘어 인력부족 상태이며, 임금은 2년 연속 5%대 인상됐다”며 “임금과 물가의 선순환이 회복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은 1990년 버블 붕괴를 시작으로 0%대 성장과 물가·임금 정체가 동반된 디플레이션을 겪어왔다. 1990년대 후반 ‘잃어버린 10년’이란 말이 등장한 후, 큰 변화가 없어 ‘잃어버린 20년, 30년’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최근엔 일본 경제가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중앙은행 최장수 수장이었던 구로다 전 총재가 이 같은 변화가 일시적인 게 아닌 ‘구조적 변화’라고 평가한 것이다. 구로다는 아베 내각 때인 2013년 임명돼 ‘아베노믹스’의 핵심인 금융완화를 주도했고, 스가·기시다 내각까지 10년간 연임했다.

◇30년만의 물가·집값 상승에 아우성
“어떻게든 해라, 고물가! 지금 당장 임금 올려라!”
지난 15일 오사카 호리에공원에서는 이런 구호를 내건 시위가 열렸다. 비정규직 중심으로 물가 상승을 규탄하는 시위였다. 이들은 “슈퍼마켓 식료품, 매달 나가는 공공요금, 집세까지 모든 물가가 계속 오르고 있다”며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임금을 달라”고 외쳤다.
지금 일본 국민들은 고물가에 대한 불만과 불안이 상당하다. 실제 소비자물가는 지난 4년 연속 연 2~3%씩 올랐다. 과거 30년간 겪어보지 못했던 일이다. 고물가 대책은 최근 일본 정치인들의 최대 중점 공약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지난달 선거 때 “소비세를 식료품(8%)에 한해 2년간 면제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압승했다.
부동산 가격도 심상치 않다. 그동안 일본 부동산은 도쿄 같은 대도시 중에서도 핵심지만 가격이 올랐다. 하지만 코로나가 끝난 2022년부터 본격적인 상승이 시작되면서 월세도 덩달아 오르는 상황이다. 도쿄 신주쿠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도쿄 23구의 맨션 가격은 코로나 이후 연 20%씩 올랐다”며 “월세는 최근 2년 단위 계약을 갱신할 때마다 10%대로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도쿄 신주쿠 한 맨션의 방 2개(전용면적 60㎡)짜리 집 월세는 26만엔(약 245만원)이다. 2년 전 22만엔에서 18% 상승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자 기업들도 임금 상승 요구에 최대한 반응하고 있다. 2024년 일본노총의 춘투 당시, 일본 기업들은 평균 5.1%의 임금 인상에 합의했다. 1991년 이후 33년만의 5%대 인상이었다. 이어 지난해 춘투 때에도 5.25%를 인상했다. 올해도 일본노총은 5% 이상 인상을 목표로 내걸고 있으며, 기업들도 이를 수용할 분위기다.
◇주요 기업들 역대 최대 이익
일본 기업들이 임금 인상 요구를 적극 수용하는 것은, 심각한 인력 부족 상황에서 인재 확보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30년간 저렴한 인건비를 누려온 일본 주요 기업들은 대규모 흑자를 내왔고, 최근 경기 회복과 맞물려 실적이 사상 최대를 경신하고 있어 임금 인상 여력이 충분하다.
닛케이에 따르면, 도쿄증권거래소 프라임 시장에 상장된 3월결산 법인 1000개사는 2025년도 순이익이 1%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5년 연속 사상 최고를 경신하는 것이다.
인공지능(AI) 붐에 따라 호황을 맞은 반도체 관련 기업들뿐 아니라, 유통·서비스·금융 분야가 골고루 성장하고 있다. 일본에는 ‘피지컬 AI’를 구현할 센서·전력반도체 등에서 앞서 있는 소니·키엔스·르네사스 같은 기업이 있고, 도쿄일렉트릭·캐논 같은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 기업들이 있다. 관광객 증가로 유통 산업도 견조하다. 백화점 기업인 미쓰코시이세탄홀딩스는 지난해 6000억원대 최고 순이익을 기록할 전망이다. 이들 1000개 기업의 현금 보유액은 작년 9월 말 기준 110조엔을 넘어, 직원과 주주에게 환원을 확대할 여지가 크다.
이때문에 다카이치 정부가 공식적으로 ‘디플레이션 탈출’을 선언하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관측이 나온다. 구로다 전 총재는 “경제가 순조로운 상황에서 정부가 지출을 늘리는 것은 인플레이션이란 부작용을 낳는다”며 “정부는 중립을 지키는 것이 좋으며, 금리는 1년에 0.25%포인트씩 2~3회 인상해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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