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대한민국] 조선업의 봄은 허상… 중소 조선소·기자재 산업 등 ‘허리’가 무너진다
조선 3사 매출 53兆 봄볕 들지만
중국에 밀려 생태계 하부는 붕괴
첨단 ‘스마트 야드’도 中이 앞선다
조선·해운·금융 연결한 전략 시급

봄은 남쪽 해안에 먼저 찾아온다. 거제·울산·영암의 조선소에서 거대한 크레인이 철판을 들어 올리는 소리는 다시 뛰는 대한민국 조선업의 박동처럼 들린다. 조선업이 다시 봄을 맞은 것 같다. 조선 3사(HD현대중공업·한화오션·삼성중공업)의 2025년 합산 매출은 53조원을 넘어섰고,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170%라는 놀라운 성장을 기록했다. 3년 치 일감이 쌓여 있다. 우리 조선업이 세계 최강의 지위를 되찾은 것일까.
◇한국 조선업 생태계가 무너진다
하지만 대형 조선소의 좋은 실적에도 불구하고 현장 관계자들의 속마음은 어둡다. 호황처럼 보이지만 위기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LNG 운반선에 집중한 대형 조선소가 샴페인을 터뜨리는 사이, 우리 조선업의 허리인 중소 조선소와 기자재 산업은 고사 직전에 몰려 있다. 지난 20년 사이에 동남권 전체에 고르게 자리 잡고 있던 조선업 생태계 전체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
주요 선박 기자재는 이제 중국제로 채워지고 있다. 대표적인 선박 기자재 60종의 대중 무역 적자는 2019년 8억1700만달러에서 2024년 26억3400만달러로 5년간 3배 이상으로 폭증했다. 국내 조선소가 12곳으로 줄어드는 동안 중국은 200곳을 넘어섰다. 기술 격차는 이미 신기루가 됐다. 2023년 산업연구원 분석대로라면, 종합 경쟁력에서 중국은 우리를 추월해 세계 1위 조선업의 왕좌를 차지했다. 지난해 세계 선박 수주 점유율(환산톤수 기준)로 한국은 21%에 그쳐 중국(63%)의 3분의1이었다.

◇중국은 불황기에도 과감한 투자
더 큰 문제는 미래 투자에서도 중국에 밀리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중국 조선소들은 대형 조선소 2~3곳에 맞먹는 30만톤 규모 증설을 여러 곳에서 진행하고 있다. 가격과 물량에 더해 5G, 사물인터넷(IoT), 로봇 용접을 결합한 ‘스마트 야드’가 여기저기서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가 현재의 수주 잔고에 안도하는 사이, 중국은 2028년 이후 찾아올 공급 과잉 시대에 대비해 체력을 기르고 있다. 과거 우리 조선업이 불황기에도 과감한 투자를 통해 경쟁자를 압도했던 그 승부사 기질을 이젠 중국이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이대로라면 짧은 호황 뒤 우리에게는 텅 빈 도크와 기술·인력 상실이라는 적막한 현실만 남을지도 모른다.
이 위기의 뿌리는 조선업을 단순히 ‘배를 만드는 제조 공장’으로만 바라본 데 있다. 우리가 97척의 선박으로 60개 항로를 커버하던 세계 7위 한진해운을 파산하도록 방치했을 때, 국내 조선소가 잃은 것은 고객사 하나가 아니었다. 안정적인 수요처, 다양한 선종을 건조할 기술 유지의 기회, 기자재 업체들의 생존 기반이 함께 사라졌다. 반면 중국은 중국원양해운집단(COSCO) 같은 초대형 해운사들을 국가 전략으로 육성했고, 이들이 자국 조선소에 꾸준히 다양한 선박을 발주하면서 조선업과 기자재 산업을 유기적으로 키웠다.
◇종합적 해양 전략으로 전환을
조선업을 미래 산업으로 발전시키려면 단일 산업 관점에서 벗어나 해운·선박 금융·국방을 포괄하는 종합적 해양 전략을 세워야 한다. 미국의 행보가 이를 잘 보여준다. 지난 2월 미국이 발표한 해양 행동 계획(AMAP)은 자국 화물의 일정 비율을 반드시 미국 선박으로 운송하도록 강제해 조선소 수요를 창출하고, 이를 토대로 인력을 양성하고 산업을 재건하겠다는 전략이다. 세계 최강의 자유무역 옹호국조차 이제 국가 주도로 산업을 살리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국가가 목표를 수립하고 자원을 배분하며 각 분야를 통합하는 것이 뉴노멀이 되고 있다. 조선·해양·선박 금융·안보를 연결된 톱니바퀴로 만들어 돌아가는 국가적 전략이 시급하다.
현대 정주영 회장은 “건물이나 배나 짓는 것”이라는 본질을 꿰뚫는 통찰로 아무것도 없는 땅에 조선소를 세웠다. 2026년의 우리는 훨씬 나은 조건에서 출발할 수 있다. 능력과 경험, 자본과 인력이 모두 있다. 부족한 것은 하나, 다시 달리겠다는 의지다. 호황의 봄볕에 취해 있을 시간이 없다. 겨울은 생각보다 빨리 닥친다.
-----
격차 벌리는 중국 조선업
종합적 해양전략의 결과물
중국 조선업이 2025년 세계 시장에서 압도적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중국 공업정보화부 통계에 따르면, 중국 조선업은 건조량(세계 시장 점유율 56.1%), 신규 수주(69%), 수주 잔량(66.8%) 등 핵심 3대 지표에서 모두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올해 2월까지 세계 신규 주문의 80%가 중국으로 집중되며 사실상 독주 체제가 굳어지고 있다.
세계 최대 조선 기업은 산하에 자회사 104개와 직원 22만명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선박집단(CSSC)이다. 중국선박공업그룹과 중국선박중공업집단의 합병으로 탄생한 CSSC는 초대형 조선소뿐만 아니라 설계 회사, 선박 기자재, 금융사 및 상사까지 포괄한 통합 체계를 구축해 우리 기업들을 경쟁력으로 압도하고 있다.
1990년대 세계 시장 점유율이 5% 내외에 머무르던 중국 조선업은 2002년 ‘조선 산업 중장기 발전 계획’ 발표 이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중국 정부는 조선업 발전을 위해 해운업과 선박 금융을 동시에 강화하는 전략을 펼쳤다. 배를 건조하려면 선박 주문자(선주)가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선주가 조선사에 선수금을 납부한 후 조선사 부도로 선박을 인도받지 못할 경우 은행이 대신 반환하는 선수금 환급 보증(RG)이 필수적이다. 중국은 국책 및 민간 금융기관을 동원해 거의 무제한적으로 RG를 발급하면서 자국 조선소에 대한 글로벌 수요를 창출했다.
최근 동향을 보면, 중국 해운사들은 새로운 선종 건조 경험이 필요하거나 불황이 도래하면 자국 조선소에 대규모로 선박을 발주하면서 지원에 나선다. 지난 12월 중국 최대 해운사인 중국원양해운집단(COSCO)은 CSSC에 87척(약 71억달러)에 달하는 대형 유조선, 컨테이너선, 크레인선, 자동차 운반선 등을 주문했다. 중국 조선소들은 LNG 선박 건조 경험을 세계적으로 확대하며 카타르 등 해외 수주 시장에도 본격 진출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기업에 모든 것을 맡겨놓고 있던 사이에 중국은 연관 산업 강화를 통한 종합적 지원으로 우리를 추월했고 이제 그 격차를 벌리고 있다.
-----
‘스마트 야드’ 전환 반갑지만
숙련공 등 조선 생태계 상생을
조선업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가운데 최근 국회에는 조선업 발전을 위한 법률안 4건이 발의돼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국가가 주요 제조업을 지원할 수 있도록 국회가 움직이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4건 법률안은 대체로 기존 조선소를 ‘스마트 야드’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지원을 골자로 하고 있다.

스마트 야드 전환에서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 도입은 필수적이지만, 진짜 핵심은 고령 숙련공들의 노하우를 AI와 로봇이 학습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데이터를 확보하고 지속적인 오류를 개선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숙련공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충분한 보상과 근무 여건을 보장해 줘야 한다. 또한 이렇게 구축된 데이터는 원청과 하청이 공유해 조선업 생태계 전반의 상생과 협력을 도모할 수 있어야 한다.
국내 조선업계의 또 다른 어려움은 신기술을 개발해도 해상에서 시험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기업이 자기 부담으로 실험을 시도해도 불법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기업들은 해외 기업 요청에 따라 먼 공해까지 나가 실험을 진행하고, 그 성과는 해외 기업의 실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문제가 생기면 내가 책임지라는 이야기냐?’라는 고질적 병폐가 이번 법률 제정을 통해 극복돼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조선업을 담당하는 산업부와 해운업을 관장하는 해양수산부가 제도적으로 협업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하는 것이다. 서로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주도권을 놓치기 싫어 대립한다면 결국 모든 것을 중국에 넘겨주게 된다. 종합적 해양전략 수립을 위해 부처가 협력하도록 정치권의 노력과 관심이 절실한 상황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삼성·LG도 ‘차량 10부제→5부제’ 확대 실시... 4대 그룹 모두 동참
- 현대차그룹, 산은·수은 등과 ‘새만금 투자’ 금융지원 협력키로
- “美·이란 막판 물밑 접촉 …1단계 45일 휴전 추진"
- 중동 전쟁 장기화에 정부 “유가 보조금 부정 수급 신고 받겠다”
- [단독] 정청래 “공천 심사에 가처분 신청, 공천 불복 행위로 간주”
- 폭스콘, AI 수요에 1분기 매출 30% ↑... ‘땡큐 애플’에서 ‘땡큐 엔비디아’로
- 배우 이유영, 두 아이 엄마 된다… “살찐 임신부 됐어요”
- 독일 “성인남성 장기 해외체류시 승인받아야”…비상 시 징집 대비
- 권익위 “앞으로 정부 공무직 채용 시 공무원 친인척인지 확인”
-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용적률 법적 상한의 1.4배까지 허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