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일감 끊기고 적자는 쌓이고…공장 멈추니 한숨만 나와요”
산단 오가는 차량 없어 도로 한산…공장 언제 가동될지 몰라 불안
저렴한 주유소 찾아 원정 주유…운행 횟수 줄이며 ‘허리띠 조이기’

더욱이 플라스틱, 합성섬유 등 원재료인 ‘에틸렌’의 핵심 소재 ‘나프타’에 대한 수급 차질도 겹치면서 여수 국가산단 일부 공장이 가동을 멈추는 등 지역 주요 산업 현장까지 피해가 번지고 있는 실정이다.
전남 곳곳의 업계 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일감은 끊기고, 적자만 쌓인다”며 자포자기 상태에 놓여 있는 실정이었다.
◇공장부터 셔터 내려=24일 오전에 찾은 여수국가산단은 전날부터 백연을 쉼 없이 뿜어내던 NCC(나프타분해시설) 공장 굴뚝 6개가 일제히 멈춘 채였다.
굴뚝 위로는 연기 대신 옅은 바람만 흘렀고, 공장 내부를 가득 채우던 기계음도 크게 줄어든 채 적막감이 감돌았다.
산단을 오가던 차량 흐름도 뜸했다. 평소라면 원료를 실은 화물차들이 끊임없이 드나들었을 도로는 오가는 차량 없이 한산했다.
여수산단 LG화학 NCC 공장은 지난 23일부터 연간 80만t 규모의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120만t 규모의 공장만 제한적으로 운영한다고 공시했다.
여수산단 관계자는 “굴뚝에서 연기가 안 나는 건 공장이 사실상 멈췄다는 의미”라며 “나프타가 들어와야 설비를 돌릴 수 있는데 4월부터는 공급 자체가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원료인 나프타 공급이 불안정해지면서 설비 효율이 떨어져 전면 가동이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중동발 공급 차질이 단순한 유가 상승을 넘어, 지역 산업의 ‘가동 중단’으로까지 번진 모습이다.
같은 날 여천NCC도 에틸렌 등 올레핀 생산 공정 가동을 멈추는 등 다수의 공장이 생산을 중단하고 나서고 있다.
산단 내부 분위기도 급격히 가라 앉았다. 공장 가동 축소로 안한 적자는 직원들 사기 저하로도 이어졌다. 일부 사업장에서는 희망퇴직까지 거론되고 있다. 일용직 근로자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공장이 멈추면서 일감이 끊기자 여수를 떠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여수산단 관계자는 “중동 전쟁이 끝나야 원료 공급이 정상화될 텐데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라며 “지금은 공장이 언제 다시 정상 가동될지 알 수 없어 불안감이 크다”고 호소했다.
◇화물·운송 일감은 반토막=여수시 평어동의 한 화물차 정비센터는 화물차 1~2대정도만 오갈 뿐 한산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여수산단 내 공장 가동이 멈추면서 원료를 실어 나르던 화물차도 함께 줄어 엔진 점검이나 타이어 교체를 하러 오는 손님이 뚝 끊겼기 때문이다.
30년째 여수산단에서 원료를 받아 운반하는 김형국(72)씨는 “여수 NCC공장의 나프타 연료가 10일도 못간다고 한다. 원료가 없으니 일도 50% 줄었다”며 “기름값도 폭등하면서 이제는 자포자기 상태다. 화물차는 하루라도 일을 못 하면 수입이 없는데, 일을 기다리는 동안 차량 수리 등 고정비용은 계속 들어 부담이 크다”고 토로했다.
여수 NCC와 계약을 맺고 원료를 운반하는 박정진(58)씨도 “어제부터 공장들이 멈췄다고 하는데 지금도 일이 많이 줄었지만, 앞으로가 더 걱정된다”며 “중동 정세 불안 이후 일감이 절반 이상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여수에서 화물차를 운전하는 황모씨도 “하루에 화물 운송을 4회 뛰었는데 지금은 2회로 줄었다”며 “업체에서도 공장 기계를 한번 멈추면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끌 수는 없고 제품을 최대한 줄여서 빼고 있다고들 한다”고 귀띔했다.
화물차 운전자들은 운행 횟수를 줄여 가며 ‘허리띠 조이기’에 나서는 형편이다.
같은 날 광주시 서구 치평동의 한 주유소를 찾은 화물운송업자 김권철(50)씨는 “기름값이 너무 올라 서울 등 수도권 운송은 피하고 가까운 거리 위주로 가면서 하루 평균 5건 하던 일을 2건 정도로 줄였다”며 “면세유도 모든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것이 아니고, 주유소마다 가격 차이도 있어 저렴한 곳을 찾아 ‘원정 주유’를 하고 있다”고 했다.
하루 700㎞ 이상 거리를 오가기 위해 주유비로 22여만원을 지출해야 한다는 것인데, 운임은 그대로라 하루 유류비 부담이 평소보다 5만원 이상 늘었다는 게 김씨 설명이다. 일을 할수록 수익이 남지 않자 주행거리를 줄이기 위해 일감도 함께 줄일 수밖에 없어 실제 타격은 더욱 크다는 것이다.
지역 시외버스 업계도 비상이다.
코로나19 이전 시외버스 이용률 회복률이 3분의 2 수준에 불과한 데다, 중동 분쟁 여파가 국내로 번지면서 여객 수요는 줄고 기름값은 뛰어 손익분기점도 맞추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에 일부 시외버스 노선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등 손실을 줄이며 버티기에 나서는 실정이다.
장민성(56) 동방고속 영업이사는 “현재 차량 1대당 하루 손익분기점에도 20여만원이 부족한 상황이다. 기름값은 버스 1대당 하루 평균 3만2000여원이 추가로 부담되고 있다”며 “전남도에서 운영비를 지원하는 농어촌버스 2대를 제외한 30여대의 유류비 인상분은 고스란히 업체가 떠안고 있다”고 호소했다.
회사 명의의 영업용 번호판을 빌려 달아 영업하는 전세 버스 기사들의 어려움도 크다. 회사에 ‘번호판 값’ 명목의 월 지입료 50여만원을 납부하고 사실상 개인사업자처럼 활동해 유류비 지원은 전혀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광주에서 30년째 전세 버스를 운행하는 김대중(60)씨는 “화물차와 달리 전세 버스는 유가 보조를 받지 못해 유가 폭등으로 월 20만원 이상 수입이 줄었다”며 “관광 등으로 수입을 충당하기 어려워 유치원·학교 셔틀버스까지 병행하고 있는데, 수익이 많이 남지 않더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아예 일감이 끊기기 때문에 버티는 형편”이라고 했다.
/여수=김진아 기자 jinggi@kwangju.co.kr
/윤준명 기자 yoon@kwangju.co.kr
/여수=김혜림 기자 bridge@kwangju.co.kr
/여수=김창화 동부취재본부장 ch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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