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알'은 '조작방송'?…李 SBS 비판과 공방에 가려진 것들

노지민, 정민경, 김예리 기자 2026. 3. 24.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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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장영하 허위공표죄 판결과 2018년 '그알' 보도 비교해보니
정치권으로 확산한 공방…윤리 기준 정립 위한 "정확한 비판" 필요

[미디어오늘 노지민, 정민경, 김예리 기자]

▲이재명 대통령과 2018년 7월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보도 화면 일부 갈무리. 그래픽=안혜나 기자

2018년 7월, 2년 전 개봉했던 영화 '아수라'가 역주행했다. 살인사건에 연루된 폭력조직, 이 조직과 성남시 경찰, 나아가 유력 정치인 이재명의 유착 의혹을 다룬 SBS '그것이 알고 싶다'(그알)가 계기였다. 그리고 2021년, 국민의힘 정치인으로 활동해 온 변호사 장영하가 문제의 조직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20억 원을 건넸다고 주장했다. 장영하의 주장은 허위로 드러났고 2026년 3월 그에 대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가 확정됐다.

장영하에 대한 법적 판단이 끝난 시점에 화살은 SBS '그알'로 모이고 있다. 이재명 현 대통령이 '그알'의 사과를 요구한 날 SBS가 제작진 입장과 메인 뉴스로 사과했으나,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이하 SBS 노조)가 이를 '언론 길들이기'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이 사안을 '허위 보도를 한 언론의 반성 없는 태도' 혹은 '불리한 의혹에 대한 정치인의 매도'로 단순화해 접근하는 것은 진짜 필요한 비판을 지운다는 지적도 나온다. (편집자주: 아래 기사에서 주요 인물의 과거 직함은 최초 병기 이후 생략했다.)

장영하는 무엇을 '허위공표' 했나

대법원 판결 핵심은 성남시장 시절 이재명이 국제마피아파 출신 이준석이 세운 '코마트레이드'에 사업적 특혜를 주고 20억 원가량을 받았다는 장영하 주장이 허위라는 내용이다. 1·2심 재판부 모두 국제마피아파 출신인 박철민이 이재명 낙선을 목적으로 장영하에게 허위 제보를 했다고 인정했다. 다만 장영하가 허위임을 몰랐을 수 있다며 무죄를 선고한 1심과 달리, 2심 재판부는 그가 “해당 사실이 허위일 수도 있다고 용인한 채 허위사실을 공표했다”고 봤고 대법원이 이를 확정했다.

특히 법원은 장영하가 이재명 낙선을 위해 의도적으로 허위사실을 공표했다고 봤다. 일례로 장영하는 2021년 10월20일 기자회견에서 '20억 수수설' 근거로 이재명에게 전달됐다는 현금다발 사진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는 이미 이틀 전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김용판 의원이 공개했다가, 허위 제보자 박철민이 자신의 SNS에 올렸던 사진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뒤였다. 재판부는 그뒤로도 장영하가 이준석 측에 이재명에게 돈을 건넨 게 맞는지 사실확인을 하지 않고 검증 노력 없이 허위사실을 공표했으며, “20대 대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가 근소하게 낙선한 것을 볼 때 대선에 끼친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2021년 10월20일 장영하 변호사가 경기도 성남시의 한 법무법인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알' 보도가 허위인지는 주요 판단 대상이 아니었다. 판결문에는 '20억 수수설'을 기획·조작한 박철민이 이재명과 국제마피아파가 유착됐다는 취지의 방송 등을 보고, 이재명 낙선에 기여해 반대세력의 비호를 받겠다고 생각했다는 대목이 있을 뿐이다. 앞서 '그알'은 자격기준에 미달하고 회계기록이 부실한 코마트레이드가 성남시 중소기업인대상 장려상으로 선정된 것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과거 국제마피아파 조직원 2명을 변호했던 이재명이 코마트레이드 대표가 이 조직 출신이라는 걸 몰랐겠느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이재명 측은 심사 과정에 관한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2심 판결문엔 '그알'이 지적한 코마트레이드 수상에 문제가 있었다는 대목도 있다. 다만 이 과정에 당시 성남시장 이재명이 개입하거나 관여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성남시가 전례 없이 설립 시기가 다른 '코마'와 '코마트레이드' 법인 운영기간을 병합해서 '코마&코마트레이드'로 자격요건을 판단했고, 신청한 3개 기업 중 점수가 가장 낮은 코마트레이드가 장려상을 받았으며, 우수기업 심사를 담당한 공무원이 이 일로 징계를 받았다는 것이다.

고리 없이 엮인 '살인조폭'과 '이재명'

물론 '그알' 보도가 무결했다고 볼 수 없다. '그알'을 둘러싼 비판은 단지 일부 의혹 제기의 타당성을 두고만 제기된 것이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그알'은 도입부에 폭력조직이 등장하는 영화 장면들과 함께 “현실에 똑같이 적용이 될 수 있다”(전직 형사)거나, “'아수라'라는 영화가 있다…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하고 너무 똑같다”(정치권 관계자) 등의 발언을 이어붙였다. 뒤이어 “저는 활용 당한 정치인”이라는 당시 경기도지사 이재명의 발언을 얹었고, 폭력조직이 연루된 '파타야 살인사건'으로 본격적인 보도를 시작했다.

▲2018년 7월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

이 회차에서 이재명에 관한 이야기는 1시간 여의 방송 중 40여 분이 지난 뒤에야 나온다. 살인사건 주요 용의자가 국제마피아파 조직원이었고 이 조직이 성남지역 경찰 등에 금품을 제공하며 편의를 얻었다는 내용에 이어, 조직 출신 인사가 운영하는 코마트레이드와 성남시의 유착 의혹으로 이어지는 흐름이다. 성남시나 이재명이 살인사건과 연관되었다거나, 이재명이 코마트레이드 등에 관한 특혜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거나 관여했다는 대목은 없다. 그러나 시청자들에게는 도입부에 나온 '조폭 영화' 속 이야기처럼, 폭력 조직과 결탁한 정치인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을 수밖에 없는 구성이다.

실제 '그알'이 방송된 뒤 도입부에 짤막하게 등장한 영화 '아수라'가 역주행한 사실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3대 지상파 방송사인 SBS의 탐사 보도프로그램인 만큼 파급력도 컸다. 주요 언론 매체들도 '그알'의 예고편과 본 방송 내용을 앞다퉈 인용 보도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기준으로 2018년 1월1일~12월31일 1년간 '이재명' '조폭' 관련 보도는 총 1995건, 이 가운데 714건이 '그알' 보도가 이뤄진 7월에 집중됐다. 7월 들어서는 '이재명' 키워드 뉴스의 주요 연관어로 '코마트레이드', '파타야', '조직원', '조직폭력배', '영화 아수라' 등이 올랐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에서 2018년 1월1일~12월31일 '이재명' '조폭' 키워드가 모두 포함된 기사의 월별 추이

'그알=작전'? 근거 없는 의혹 지피기

정치인이 한 번 각인된 이미지를 벗기란 쉽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0일 자신의 X(구 트위터) 게시글에 '그알'을 언급하며 “졸지에 살인 조폭으로까지 몰렸다”고 표현한 것도 과장이라 보기 어렵다. 문제는 이 대통령이 '그알' 비판을 위해 근거 없는 의혹을 꺼내들었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은 해당 글에서 “이 방송은 나를 제거하기 위해 동원된 물리적 테러, 검찰을 통한 사법리스크 조작, 언론을 통한 이미지 훼손 작전 중의 하나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어 담당PD를 거론한 뒤 “정치적 목적으로 거짓의 무덤에 사람을 매장하는 일이 재발하지 않게 하려면 조작 폭로한 국민의힘이나 그알 같은 조작방송의 반성과 사과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보도 시점이나 내용 면에서 차이가 있는 장영하의 허위사실공표와 '그알' 보도를 한 데 묶고, '그알' 보도를 '테러' '작전' '조작' 등에 빗대면서 어떠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이재명 대통령 X 게시글 갈무리

정작 경기도지사 시절 이재명은 '그알' 보도 자체가 허위인지에 대해 법적 판단을 받지 않기로 결정한 바 있다. '그알' 방송 이후인 2018년 8월 SBS와 제작진 등 상대로 1억5000만 원의 손해배상 및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가, 2019년 3월 “조폭몰이의 허구성이 법적으로 입증돼 소송할 이유가 해소”됐다며 “대승적 차원”에서 이를 취하했다고 밝혔던 것이다.

그에 앞서 '그알' 보도를 앞두고 제기한 방영금지 가처분 신청이 기각된 일도 있다. 당시 서울남부지법은 이재명 측의 자료 만으로 방송 내용이 허위사실이라거나, 악의적이고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에 해당한다는 점을 소명하기에 부족하다며 가처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해당 방송 전부터 이재명이 조직폭력배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적이 있었고, 방송의 목적과 동기는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이라고 했다. 지금의 사후적인 평가와 별개로, 당시 법원은 '그알'을 정치인 검증을 위해 방영을 막아선 안 될 보도라고 판단했다.

SBS노조의 반발과 정치권 논쟁까지

이 대통령의 '그알' 사과 요구는 공방으로 이어지고 있다. SBS는 즉각 제작진 입장문과 메인 뉴스로 사과했지만, SBS 노조는 “('그알' 보도는) 공적 인물에 대한 검증으로 장씨의 주장과는 시기도 내용도 전혀 무관하다”라며 반발했다. 이들은 이 대통령을 향해 “지지자들을 향해 '조리돌림할 대상이 여기 있노라' 하며 좌표를 찍으려 한 것은 아닌가”라고 되묻는 한편 “반민주적인 언론 길들이기를 중단”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자 더불어민주당이 SBS 노조 성명을 다시 반박하면서 대통령의 사과 요구를 둘러싼 공방이 정치권으로 옮겨붙었다. 지난 23일엔 민주당 황명선 최고위원이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자신들의 잘못은 외면한 채 언론 탄압이라고 덮어씌우는 것이야말로 또 다른 폭력”이라고 했다. 같은 날 김기표 대변인은 <오보에도 '탄압' 타령하는 적반하장, 언론은 성역입니까> 제목으로 SBS 노조를 비판하는 브리핑을 진행하기도 했다.

▲지난 20일 SBS '8뉴스' 갈무리

이런 상황을 두고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그알' 방송의 허위성이 입증됐다거나 공익성이 부정되는 어떠한 법적 판단도 내려진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이를 연결해서 마치 (장영하 허위공표죄 판결에 따라) 추후보도 의무가 발생하는 것처럼 이야기되고 있다”며 “SBS 내부에서 그걸 부정하고 언론의 자유를 외치는 것처럼 프레임이 잡혀버리는 것은 사실관계에 기반한 흐름은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SBS 사측이 대통령의 사과 요구와 기존 보도에 대해 숙고하고 내부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 없이 곧바로 사과한 대응 또한 문제가 있다고 평가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과연 이것이 SBS가 더 좋은 방송을 하는 데 있어 필요한 것일까. 정확한 비판을 해줘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알'이 살인 사건을 다루는 기법을 정치인 검증 보도에 그대로 이어가거나, '스토리텔링'적 요소를 과장하는 식의 보도 방식에 대해선 평가와 성찰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했다. 아울러 “언론이 최초로 의혹을 보도하는 데 있어서 윤리적 기준이 정교하게 세워지는 쪽으로 논의가 되어야 하는데 이상한 구도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언론탄압' 공격하는 국힘의 내로남불

한편 국민의힘은 연일 이재명 대통령의 사과 요구가 “언론 장악”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힘 또한 20대 대선 직전 허위사실 공표 사건에 대한 입장 표명이 필요한 대상이다. 법원은 장영하를 '2006년 이래 주로 성남시에서 활동하면서 여러 차례 성남시장 선거에 출마하였다가 낙선한 경력이 있는 지역정치인이자 변호사로서 국민의힘 정당 당원' 즉 국민의힘 정치인으로 정의했다. 허위제보자 박철민은 2021년 국민의힘 성남수정당협 청년위원장으로 임명됐던 박용승 전 시의원의 아들이다.

국민의힘은 또한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를 들어 공익 목적의 의혹 보도는 언론자유의 핵심이라 강조했는데, 과거 자당이 집권한 시기 'PD수첩' 및 MBC 상대로 자행한 언론탄압 행태는 언급하지 않았다. 한나라당 집권기 정부는 PD수첩 광우병 관련 보도를 한 제작진을 명예훼손 혐의로 수사 의뢰했다. 검찰은 제작진을 체포한 데 이어 명예훼손·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그러나 결과는 1·2심과 최종심에서의 일관된 무죄 판결이었다. 직전 윤석열 정부 시기에는 국민의힘이 정권 비판적 보도를 문제 삼아 'MBC 편파·조작 방송 진상규명 TF'를 꾸렸다. 여권 비판적인 방송사 보도에 집중된 무더기 과징금 처분은 법원에서 '28전28패'를 기록하며 취소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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