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신약, 영국에서 건강보험 안 되는 이유는?

이석호 기자 2026. 3. 24. 20:08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에자이·릴리, 英 NICE ‘레켐비·키선라’ 급여 제외 결정에 항소
항소심 패널, 제약사 측 주장 일부 인정...“절차적 검토 필요”
추정비용·모델링 등 핵심 쟁점 대부분은 기각
일본서도 비용효과성 논란 '약가 인하'...한국에선 급여 가능할까
레켐비(왼쪽)와 키선라 / 에자이, 일라이릴리

영국에서 의약품 급여 권고를 담당하는 독립 기관인 국립보건임상평가연구원(NICE)이 초기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와 '키선라(성분명 도나네맙)'의 건강보험 급여 제외 결정에 대한 항소심 결과를 발표했다.

NICE는 지난 20일(현지시간) 공개한 '항소 결정(Appeal decision)'에 따르면, 에자이와 일라이 릴리가 각각 제기한 항소 중 일부 사유가 인용됐지만 핵심적인 임상·경제성 판단은 그대로 유지됐다. 이번 결정으로 두 약물은 NICE 평가위원회(Appraisal Committee)에서 재심 절차를 밟게 된다.

NICE 결정에 불복한 제약사는 '절차적 불공정'과 '결론의 불합리성'을 근거로 항소할 수 있다. 항소심 패널은 위원회의 판단이 절차적으로 공정했는지와 합리적 범위를 벗어났는지를 중심으로 심사한다. 위원회의 전문적 판단 영역은 원칙적으로 존중된다. 이번 항소심도 이 원칙에 따라 진행됐다.

◆ 에자이·릴리, 英 NICE '레켐비·키선라' 급여 제외 결정에 항소

NHS England 로고

앞서 NICE는 지난해 6월 세 차례의 평가 끝에 두 약물 모두 국가건강서비스(NHS) 급여 적용을 권고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최종 초안 지침은 이들 약물에 대해 "초기 알츠하이머병 환자에서 인지 저하 속도를 4~6개월 늦추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그럼에도 약물의 높은 비용에 비해 효과가 너무 작다"고 평가했다. 비용효과성(cost-effectiveness) 지표에서 기준을 크게 벗어났다고 본 것이다.

NICE는 'QALY(질보정수명·Quality-Adjusted Life Year)'를 기준으로 급여 여부를 판단한다. QALY는 생존 기간과 삶의 질을 동시에 반영해 '건강한 상태로 1년을 더 살아가는 것'에 해당하는 가치를 계산하는 지표다.

NICE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QALY당 2~3만 파운드(한화 약 4,000~6,000만 원) 수준을 넘으면 NHS에서 사용 권고를 받기 어렵다. 두 약물의 비용효과성 분석에서는 증분 비용 효과비(Incremental Cost Effectiveness Ratio·ICER)가 이 기준을 크게 웃도는 것으로 평가됐다.

특히 NICE는 키선라의 비용효과성 추정치는 일반적인 기준보다 5~6배 높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는 약값뿐 아니라 정맥 주사 투여(infusion cost) 비용, 부작용 모니터링을 위한 MRI 검사 비용 등이 포함된 결과다.

임상시험 기간이 비교적 짧아 장기 치료 효과에 대한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대표적인 부작용인 ARIA(아밀로이드 관련 영상 이상) 등 안전성 문제도 지속 관찰이 필요한 요소로 언급됐다.

◆ 항소심 패널, 제약사 측 주장 일부 인정..."절차적 검토 필요"

영국 NICE 홈페이지

제약사 측은 NICE가 비용효과성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가족이나 무급 돌봄 제공자의 삶의 질 개선 효과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패널 역시 이 부분에 대해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레켐비 평가에서는 환자 치료가 가족이나 돌봄 제공자의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을 위원회가 어떻게 반영했는지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또한 약물 투여에 필요한 정맥 주사 투여 비용 자료가 평가 과정에서 이해관계자들에게 충분히 검토될 시간이 주어졌는지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정맥 주사 투여 비용 산정 방식에 따라 ICER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제약사 측은 임상시험을 통해 측정한 비용을 제시했으나, NICE는 NHS 잉글랜드가 제안한 더 높은 추정치를 채택했다.

키선라 평가에서도 절차적 공정성과 관련된 주장이 일부 받아들여졌다. NICE가 제3차 위원회 회의 4일 전에 NHS 잉글랜드의 정맥 주사 투여 비용 산정 자료를 제약사에 제공한 점이 문제가 됐다. 이 자료에는 수백 개에 달하는 HRG(Healthcare Resource Group) 코드가 포함돼, 해당 자료를 검토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이 릴리 측 입장이다.

패널은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제약사와 이해관계자에게 충분한 검토 시간이 제공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다만 이 문제는 위원회 결론의 합리성이 아니라 절차적 공정성과 관련된 사안일 뿐, 비용효과성 결론 자체를 뒤집는 근거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 추정비용·모델링 등 핵심 쟁점 대부분은 기각

영국 NICE 홈페이지

반면 추정 비용, 질병 진행 모델링, 치료 효과 감소 가정 등 핵심 쟁점은 대부분 기각됐다.

제약사 측은 NICE가 자사 임상시험 기반 비용 대신 NHS 잉글랜드 추정 비용을 채택한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패널은 위원회가 이러한 판단을 내린 이유가 최종 초안 지침에서 충분히 설명돼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NHS 잉글랜드가 주요 의료 지불자인 점을 고려하면 해당 비용 추정치를 사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제약사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레켐비 평가에서 에자이는 NICE가 자사 약물의 질병 진행 지연 효과를 모델링에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패널은 위원회가 제약사의 모델링이 임상 3상 'CLARITY AD' 데이터와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을 우려한 점이 정당했다고 설명했다. 또 레켐비와 키선라의 임상시험 설계와 데이터 구조가 서로 달랐기 때문에 두 약물을 동일한 방식으로 비교해야 한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NICE는 평가 과정에서 치료 인프라 부담이나 환자의 과도한 기대 유발, 진단의 어려움 등 정량화하기 어려운 요소도 고려했다. 이에 대해 제약사는 근거 없는 일방적 평가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패널은 환자 단체와 전문가 의견을 반영한 것이며 NHS 자원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는 것은 위원회의 역할이라고 규정했다. 또 이러한 요소들이 최종 권고를 바꿀 정도의 결정적 영향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키선라 평가에서는 약물 중단 이후 치료 효과가 점차 감소할 수 있다는 가정이 쟁점이 됐다. 키선라는 뇌 속 아밀로이드가 일정 수준 이상 제거되면 투약을 중단할 수 있다. 위원회는 투약 중단 후 치료 효과가 비교적 빠르게 감소한다고 가정했다. 효과 감소 속도가 빠르게 설정되면 장기 효과는 줄고 ICER가 불리해진다.

이에 릴리는 이를 자의적 가정이라고 주장했지만, 패널은 임상 데이터의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위원회의 판단이 합리적인 범위에 있다고 봤다.

레켐비에서는 치료 전 필요한 APOE4 유전자 검사 비용도 쟁점이 됐다. 에자이는 NHS 잉글랜드가 제시한 검사 비용이 과도하게 높다고 주장했지만 패널은 이를 기각했다. 패널은 검사 비용이 전체 비용효과성 분석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점을 근거로 비례성 원칙을 적용했다.

◆ 일본서도 비용효과성 논란 '약가 인하'...한국에선 급여 가능할까

일본과 한국에서도 약가와 치료 효과를 둘러싼 비용효과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초기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대상으로 장기간 투여가 필요한 치료제라는 점에서 각국 보건당국은 재정 부담과 실제 임상 효과를 동시에 따져보는 분위기다.

일본에서는 이미 약가 조정이 현실화됐다. 일본 정부는 비용효과성 평가 결과를 반영해 레켐비의 약가를 15% 인하하기로 결정했다. 2023년 12월 급여 등재 이후 첫 약가 조정이다. 이에 따라 체중 50kg 환자 기준 연간 치료비는 약 2,800만 원 수준에서 약 2,400만 원으로 줄었다.

비용효과성 논란은 국내에서도 제기됐다. 홍송희 서울약대 교수 연구팀이 진행한 경제성 분석에서는 레켐비의 ICER는 QALY당 약 1억 8,000만 원에서 2억 원 가까이 산출돼 국내 지불의사액(WTP) 기준인 3,000만 원을 크게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현재 가격 기준으로는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어렵고 약가를 80% 이상 낮춰야 경제성이 맞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주요국에서 비용효과성 논쟁이 이어지는 이유는 두 약물의 임상 효과가 제한적인 반면, 급여 적용 시 재정 부담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장기 투여에 따른 약제비와 정기 MRI 모니터링 비용까지 더해지면 보건 재정에서 감당해야 할 규모가 크게 늘어난다.

약가 인하나 위험분담계약(RSA), 투여 대상 환자군 제한 등 정책적 조합이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일단 급여가 개시되면 이를 되돌리기 어렵고 이미 치료받는 환자와 가족의 반발도 커질 수 있어 결정 자체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Copyright © 본 기사의 저작권은 디멘시아뉴스에 있으며, 사전 동의 없는 무단 복제·배포·전송·변형을 일체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