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환칼럼] 문화강국이라는 착각

지난 21일, 광화문의 밤은 보랏빛이었다. 'BTS'가 4년 만에 완전체로 돌아왔다. 공연은 전 세계로 생중계됐고, 사람들은 환호했다. 문화강국이라는 말도 다시 등장했다. 그러나 이 장면을 조금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
이 공연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무대 위 아티스트일까, 광장에 모인 시민일까.
아니다. 글로벌 플랫폼 '넷플렉스'다. 그들은 시청자를 얻고, 구독을 늘리고, 데이터를 확보했다.
반면 우리는 무엇을 얻었나. 공권력이 동원됐고, 도로가 통제됐으며, 광장은 하루 동안 상업의 무대가 됐다.
국가적 이벤트라는 이유로 설명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질문은 남는다.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뿌듯한 문화적 자부심 뒤에 가려진 것이 있다.
이 공연 자체 역시 순수한 우리의 것 '국내 제작물'이라 보기 어렵다.
최근 'BTS'의 음악을 보면, 작곡과 작사, 편곡, 프로듀싱 전반에 걸쳐 해외 인력이 깊숙이 관여하는 구조가 이미 일반화되어 있다. 실제로 앤드루 와트(Andrew Watt), 존 벨리온(Jon Bellion), 시아(Sia) 등 세계 각국의 프로듀서와 작가들이 작업에 참여해 왔다. 무대 연출과 퍼포먼스 역시 글로벌 스태프와 협업 속에서 완성된다.
K-팝은 더 이상 특정 국가의 창작물이 아니다. 글로벌 인력과 자본이 결합된 산업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자랑하는 것은 문화인가, 아니면 문화상품인가.
세계는 한국 콘텐츠에 열광한다. 오징어 게임, 기생충, 그리고 BTS. 성과는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곧 문화강국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최근 오스카상을 수상한 '케이 팝 데몬 헌터스 (일명 케데헌)'는 이 사실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한복이 나오고, 김밥이 나오며, K-팝이 등장한다. 겉모습은 한국이다.
그러나 제작은 다르다. 일본 기업 소니(Sony) 산하의 미국 스튜디오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이 만들고, 배급은 '넷플렉스'가 맡았다. 전형적인 글로벌 프로젝트다.
사람도 다르다. 주연 성우 이재는 한국계 미국인이고, 감독 매기 강은 한국계 캐나다인이다. 그들은 한국인인가? 한국적 배경과 정서를 공유할 수는 있다. 그러나 창작의 기반은 글로벌 산업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쉽게 말한다. "한국이 해냈다." 과연 맞는 말일까. 이 작품은 한국을 보여주지만, 한국이 만든 것은 아니다.
그러면 왜 지금 한국 콘텐츠인가?
답은 단순하다. 국력을 바탕으로한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졌다. 세계인의 시선이 우리에게 꽂혔고 새롭게 보기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세계의 문화상품에 대한 소비가 다양해졌고 수용성이 확대되었기 때문임을 간과할 수 없다. 이제 세계인들은 하나의 문화에 머물지 않는다. 다양성을 소비하고, 낯섦을 즐긴다.
한국은 그 흐름 속에서 선택된 것이다. 본받고 싶은 우월함이라기보다, 새로움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디즈니의 'The Lion King'을 떠올려 보자. 아프리카가 배경이다. 그러나 그것이 곧 아프리카 문화의 우수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소비와 존중은 다르다. 이 차이를 혼동하는 순간, 우리는 문화에 대해 잘못된 결론에 도달한다.
공동체의 문화는 콘텐츠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사회가 영위해온 삶으로 표출된다.
김구 선생이 소원한 문화강국은 힘이 아니었다. 콘텐츠 산업의 부흥도 아니다. 품격이었다.
그리고 그 품격은 무엇보다 정치에서 출발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정치 풍경을 돌아보면, 문화강국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해지는 장면들이 적지 않다. 거친 언어, 반복되는 책임 공방, 힘의 논리로 밀어붙이는 입법, 대화와 타협이 실종된 정치가 일상화되어 있다. 우리는 인간존중, 평화, 성숙한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한국 문화를 과시할 수 있을까?
아무리 콘텐츠가 세계를 사로잡아도, 정치가 품격을 잃는 순간 문화강국이라는 이름은 공허해진다.
문화는 무대 위가 아니라 우리 삶의 영역에서 완성된다. 민주주의는 단순한 다수결이 아니라 절제의 문화다. 권력을 어떻게 사용하고 제한하는가에 따라 그 사회의 수준이 결정된다.
광화문의 조명은 하루 만에 꺼졌다. 그러나 그날 남겨진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우리는 지금 문화강국으로 가고 있는가? 아니면 문화상품을 잘 파는 나라에 머물고 있는가?
진정한 문화강국으로 가는 길은 화려한 무대가 아니라, 한국사회의 성숙과 한국인의 품격에서 시작된다.
그것이 없다면, 문화강국은 결국 착각에 불과하다
정상환 한경국립대 객원교수, The Brain & Action Communic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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