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폐악용 방지·임원보수 통제…자본시장 개혁, 디테일 남았다

한겨레 2026. 3. 24.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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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리포트 : 한국 경제 속 재벌 탐구
이재명 대통령이 18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자본시장 안정과 정상화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3월18일 이재명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자본시장 안정과 정상화 간담회’를 직접 주재했다. 최근 중동 사태로 국내외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된 가운데 열린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단기적 시장 안정에 그치지 않고 자본시장의 근본적인 체질개선이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외부 충격에 흔들리지 않는 시장을 만들려면 제도부터 바꿔야 한다는 인식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100조원+알파(α)’ 규모의 시장안정 프로그램 가동, 가짜뉴스·시세교란 무관용 엄벌 등 단기 대응과 함께 △신뢰(공정하고 투명한 시장질서 확립) △주주보호(주주가치가 존중되는 기업문화 조성) △혁신(혁신기업 성장사다리 체계 구축) △시장접근성(국내외 자금의 투자환경 개선) 등 4대 방향을 중심으로 한 ‘자본시장 체질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방향은 맞다. 그러나 아직 담기지 못한 과제들이 있다. 중간 돌과 자갈까지 걷어내야 한국 자본시장이 비로소 옥토가 된다는 대통령 자신의 말처럼, 개혁의 완성도를 높이려면 추가로 설계해야 할 제도들이 남아 있다.

지난 1∼3차 상법 개정으로 집권 1년차 자본시장 활성화의 1단계는 일단락됐다. 이사 충실 의무 확대 등 일련의 상법 개정은 기업 내부 거버넌스, 즉 자본시장의 ‘뿌리’를 바로잡는 작업이었다. 큰 돌들을 걷어낸 것이다. 이제 집권 2년차인 올해 하반기부터는 중간 돌과 자갈을 집어내는 2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상장, 퇴출, 인수·합병(M&A), 공시 등 구체적인 거래에서 주주의 이익이 침해되지 않도록, 상법과 자본시장법의 정밀한 규율을 설계하는 단계다. 1단계가 원칙을 세우는 작업이었다면, 2단계는 그 원칙이 실제 시장에서 ‘열매’를 맺도록 질서를 정비하는 작업이다. 이 과정에서 국회 정무위원회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본시장 활성화 2단계까지 성공한다면, 이 대통령은 적어도 자본시장 개혁의 측면에서는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될 것이다. 이하에서는 기존 논의(자본시장 정상화 간담회, 민주당 코리아 프리미엄 K-자본시장 특별위원회 등)에서 빠진 추가 과제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주주가치 제고와 시장질서 확립을 위한 핵심 과제들이다.

24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지수 등이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중복상장, 모회사 주주를 위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자회사를 별도로 상장하는 중복상장은 모회사 주주의 이익을 희석시키는 대표적인 수단으로 지목돼 왔다. 금융당국이 원칙적 금지 방침을 밝힌 것은 긍정적이다. 이제 관건은 예외를 허용할 때의 세부 설계다. 우선 자회사를 중복상장하려면 모회사 주주총회에서 일반주주 과반의 동의를 받도록 상법을 개정해야 한다. 중복상장이 유지되는 동안에는 모회사와 자회사 모두에 대형 상장법인 수준의 지배구조 규율을 적용해야 한다. 자회사 신주는 모회사 주주에게 100% 우선 배정하고, 상장 준비 시점부터 상장 계획을 공시하도록 거래소 규정도 손질해야 한다. 나아가 매년 사업보고서에 중복상장 유지 이유와 이해상충 방지 절차를 명시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자발적 상장폐지, 헐값 퇴출을 막아야 한다

최근 자발적 상장폐지를 악용한 일반주주 착취 사례가 늘고 있다. 지배주주가 주가가 낮은 시점을 골라 저가로 공개매수를 한 뒤 일반주주를 내몰고 회사를 비상장화하는 방식이다. 구조는 단순하지만 피해는 크다. 이를 막으려면 두 가지 장치가 필요하다. 첫째, 상장폐지 목적의 공개매수를 추진할 경우 독립된 외부 전문기관이 작성한 공정가치 평가 보고서를 반드시 공시 서류에 포함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이사회는 공개매수 가격의 공정성과 일반주주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한 공식 의견서를 주주들에게 제출해야 한다. 지배주주의 이해관계에서 독립된 시각으로 가격의 적정성을 따지는 절차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상장폐지는 기업의 자유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일반주주가 적정한 가격을 받을 권리마저 빼앗겨서는 안 된다.

인수·합병 등 지배권 거래의 규칙을 바로잡아야 한다

한국 자본시장에서 인수·합병 등을 통해 기업 지배권이 바뀔 때마다 일반주주들은 소외된다. 지배주주끼리 경영권 프리미엄을 주고받으며 거래를 완결하는 동안, 일반주주에게는 주식을 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이익은 소수가 나누고, 위험은 다수가 떠안는 구조다. 이 불공정을 바로잡을 핵심 수단이 의무공개매수제도다. 본인과 특별관계자의 합산 지분이 발행주식 총수의 25% 이상이 되는 경우, 잔여주식 전부에 대해 현금으로 공개매수를 의무화하고 청약한 주주의 주식은 전량 매수하도록 자본시장법을 개정해야 한다. 영국·독일 등 선진 자본시장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도입된 상식적인 제도다. 지배권 거래에서 일반주주에게 완전한 회수 기회를 보장하는 것, 그것이 공정한 시장의 출발점이다.

인수·합병 등 조직재편 시 일반주주를 의사결정의 주체로

기업 가치를 훼손하는 불공정 거래의 상당수는 합병·분할합병·주식의 포괄적 교환·이전·영업 양수도 등 조직재편 과정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현행 상법은 이러한 중대한 결정을 지배주주가 사실상 단독으로 통과시킬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회사의 운명을 결정하는 자리에서 정작 일반주주는 들러리에 불과한 셈이다. 상법을 개정해 상장회사의 주요 조직재편 시 지배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고, 일반주주 과반의 동의를 얻도록 해야 한다. 회사의 중대한 선택에서 일반주주가 실질적인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을 때, 시장의 공정성도 비로소 확보된다.

ESG 공시 의무화와 스튜어드십 코드 실효성 제고

지속가능한 기업 경영에 대한 정보가 충분히 공개되어야 투자자들이 장기적 관점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지속가능보고서 법정 공시를 조속히 시행하되, 온실가스 배출량 전 범위(스코프 1·2·3, 직접·간접·공급망 배출)의 감축 계획까지 포함해야 한다. 코스닥 상장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지배구조 정보는 기업가치와 성장 가능성을 평가하는 핵심 정보로,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에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다. 코스닥 상장사의 지배구조보고서 공시를 2027년부터 단계적으로 의무화해야 한다. 기관투자자의 역할도 강화되어야 한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이행하는 일정 지분 이상의 기관투자자에게 주요 거버넌스 현안에 대해 회사의 입장을 묻는 조회공시 요구권을 부여해야 한다. 기관투자자가 실질적인 감시자로 기능할 때, 시장 전체의 투명성도 높아진다.

임원보수 공시 강화와 주주총회 보수 심의제 도입

임원보수는 거버넌스 개선 논의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앞으로는 핵심 과제가 되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가운데 주주가 경영진 보수를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나라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우선 주주총회 보수 심의제(Say on Pay)를 도입해 임원 보수 정책과 집행 내역에 대해 주주들이 직접 심의·표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보수 정책은 주주 구속력을 갖되 개별 집행 내역은 권고적 의결로 처리하는 영국식 이원화 방식이 참고할 만한 모델이다. 공시의 투명성도 높여야 한다. 현행 5억원인 개별보수 공시 기준을 3억원으로 낮추고, 대표이사는 금액과 관계없이 의무 공시해야 한다.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 등 주식기준보상의 산정방법, 성과급 환수 규정, 계열사 겸직보수 내역도 상세히 공개해야 한다. 대표이사와 일반 직원(중윗값) 간 보수 배율(Pay Ratio) 공시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회계 부정이 확인될 경우 성과급을 환수하는 클로백(Clawback) 제도의 도입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자본시장 개혁은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중복상장 규율, 의무공개매수, 조직재편 시 소수주주 보호, ESG 공시 의무화, 임원보수 심의제는 서로 연결된 하나의 패키지다. 어느 하나만 빠져도 전체의 완성도가 떨어진다. 외부 충격에 흔들리지 않는 자본시장은 구호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정밀한 제도 설계의 축적만이 그 토대를 쌓는다. 이 대통령의 방향은 맞다. 이제 남은 것은 국회와 금융당국의 속도와 정교함이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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