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집값 안정의 필요충분조건

성행경 기자 2026. 3. 24.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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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행경 건설부동산부장
‘비이성적 과열’ 패닉 바잉 밀어 올린 집값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로 매물 잠김 관측도
‘정권은 유한·부동산 영원하다’ 인식 여전해
재초환 폐지 검토 등 담대한 공급책 고민해야

세계적인 행동경제학자인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자산 가격이 펀더멘털보다 감정과 군중심리로 인해 과도하게 상승하는 상태를 ‘비이성적 과열’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2000년대 초 미국 주식·부동산 시장의 과열 양상을 분석하면서 지나치게 낙관적인 투자 심리가 버블을 만들어내고 종국에는 폭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러 교수의 경고대로 닷컴 버블 붕괴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미국 주식·부동산 시장은 큰 혼란을 겪었고 수많은 기업들이 사라졌다. 시장 참여자들도 막심한 재산상 손실을 입었다.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만큼 비이성적 과열이라는 개념이 잘 들어맞는 곳도 없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주택을 구입하는 ‘영끌’과 지금이 가장 쌀 때라는 ‘공포’에 짓눌려 매수 행렬에 동참하는 ‘패닉 바잉’이 수시로 벌어진다. 지난해 하반기가 대표적이다. 2024년 초부터 슬금슬금 오르던 집값은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도 꾸준히 우상향하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폭등했다. 깜짝 놀란 정부가 지난해 10월 15일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와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축소라는 강력한 수요 억제 대책을 내놓았음에도 집값 상승세가 꺾이지 않았던 것은 영끌과 패닉 바잉으로 상징되는 비이성적 과열 심리가 작용했다.

다락같이 오르던 집값은 올 들어 이재명 대통령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언하면서 겨우 잡혔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를 비롯해 연일 부동산 시장 안정화 의지를 피력하면서 강남 3구를 비롯해 한강벨트의 집값 상승세가 하락 전환했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고가 주택이 밀집한 동남권 아파트 단지의 호가가 큰 폭으로 내렸지만 실거래가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최근 2년여 간 집값이 너무 많이 오른 탓이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가 종료되는 5월 9일 이후에 매물이 잠기고 집값이 다시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여전하다.

시장에는 ‘정권은 유한하고 부동산은 영원하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부동산 공화국을 해체하겠다는 현 정부의 임기가 4년 넘게 남았음에도 그렇다. 부동산 시장 안정의 기준이 무엇인지, 적정한 집값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현 상황이 비정상적인 것만은 분명하다. 역대 정부가 부동산 시장의 과열·침체 상황에 대응해 수많은 대책을 내놓았음에도 서울 집값은 추세적으로 상승했고 부동산 불패 신화가 만들어졌다. 이제는 땜질식 대책이 아니라 근본적인 정책이 필요한 때다.

이 대통령이 24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보유세를 다시 언급했다. 세제 개편은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필요하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충분조건은 적정한 규모의 주택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것이다. 이전 정부에서 주택 공급이 축소되면서 앞으로 연간 9만 가구가량이 부족한 상태가 당분간 이어진다. 다주택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재고주택을 시장으로 끄집어내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바늘 하나 꽂을 곳이 없을 정도로 아파트가 빽빽하게 들어찬 서울에서 주택을 추가로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은 재개발·재건축밖에 없다. 정비사업 활성화를 위해 유명무실하지만 대못 규제로 작용하고 있는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를 없애는 것도 검토할 때가 됐다.

지난해 9월 7일 발표된 주택공급대책에도 집값 상승세가 잡히지 않았던 것은 ‘결정적 한 방’이 없었기 때문이다. 올 1월 29일 추가로 발표된 공급대책에서도 용산국제업무지구와 과천경마장 같은 양호한 입지가 포함됐음에도 시장 반응은 대체로 미지근했던 이유도 비슷하다. 확실한 공급 시그널을 주기 위해 판교·위례처럼 서울과 인접한 지역에 신도시급 개발을 추진해보면 어떨까. 예를 들어 성남시 수정구에 위치한 서울공항을 이전하고 그곳에 자족 기능을 갖춘 직주근접형 도시를 건설하는 것이다. 판교 테크노밸리와 연계해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만든다면 서울 강남 수요를 상당 부분 흡수·분산시킬 수 있을 듯싶다. 물론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다. 다만 집값 상승 기대가 한풀 꺾인 시점에 ‘담대한’ 주택공급 방안이 나와야 비이성적 과열 심리를 되살리지 않고 부동산 시장 안정화에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해보는 제안이다.

성행경 기자 sain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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