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쓰고 도포 휘날리며…“한국 색 입힌 발레 역수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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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을 쓴 발레리나, 도포자락 휘날리는 삿갓 발레리노.
한국 전통 모자를 모티프로 한 창작 발레 '갓(GAT)'이 무용계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는 "사극에서는 흔히 갓이 등장하지만, 오히려 한국사람이 한국의 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며 "익숙한 전통 소재를 감각적이고 세련된 방식으로 현대 발레로 풀어낸 점이 좋은 반응을 얻은 것 같다"고 말했다.
주립, 족두리, 삿갓 등 다양한 전통 모자를 통해 계급과 상황, 정서를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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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 ‘킹덤’서 영감, 한국의 美 재해석
흑립·주립·족두리·패랭이·삿갓 등
전통 모자별 옴니버스 10편으로 구성
3초 쇼츠 300만 조회…전국매진 행렬
태국·홍콩 등 공연 확정, 유럽도 논의중


갓을 쓴 발레리나, 도포자락 휘날리는 삿갓 발레리노.
한국 전통 모자를 모티프로 한 창작 발레 ‘갓(GAT)’이 무용계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민간 발레단인 윤별발레컴퍼니의 이 작품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전국 공연이 전석 매진되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젊은 발레리노 윤별이 안무가 박소연과 손잡고 선보인 창작 발레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28일 마포아트센터 공연을 앞두고 양재동 잭슨아트홀에서 만난 윤별 대표는 “전통을 소재로 삼되 서사와 감정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아름다움과 정서, 이미지를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사극에서는 흔히 갓이 등장하지만, 오히려 한국사람이 한국의 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며 “익숙한 전통 소재를 감각적이고 세련된 방식으로 현대 발레로 풀어낸 점이 좋은 반응을 얻은 것 같다”고 말했다.
작품의 출발은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해외 발레단 입단의 꿈이 좌절된 시기, 윤 대표는 안무가 박소연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창작 무용에 도전했다. “해외 친구들이 드라마 속 인물마다 다른 모자를 쓰고 등장하는 장면에 큰 관심을 보였어요. ‘발레리나가 갓을 쓰고 춤추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해 7분짜리 여성 흑립(검은 갓) 파트가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작품은 점차 확장됐다. 하이라이트인 흑립 파트는 여성 군무와 남성 군무로 나뉘며, 남성 군무는 선비의 지조와 멋을, 여성 군무는 색다른 에너지를 드러낸다. 주립, 족두리, 삿갓 등 다양한 전통 모자를 통해 계급과 상황, 정서를 표현한다. 예컨대 무관의 주립은 위엄과 절제를, 삿갓은 세속을 떠난 나그네의 고독과 자유를 담은 파트로 완성됐다. 지난해부터는 패랭이를 추가해 서민들의 흥겨운 춤판이 펼쳐진다. 작품은 총 10개의 짧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돼 짧은 콘텐츠에 익숙한 젊은 관객층에도 호응을 얻고 있다.



지금은 소화하기 힘들 정도로 공연 요청이 쇄도하지만 시작은 순탄하지 않았다. 2024년 초연 당시만 해도 신생 무용단이라는 이유로 공연장 섭외조차 쉽지 않았다. 가까스로 구로아트밸리에서 공연을 올렸지만 티켓 판매는 저조했다. 전환점은 공연 2주 전 올라온 3초짜리 유튜브 쇼츠였다. 조회 수 300만 회를 기록하며 입소문이 퍼졌고 표는 순식간에 매진됐다. 이후 출연 무용수들이 엠넷(Mnet)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테이지 파이터’ 등에 출연하며 인지도가 높아졌고 지난해부터 전국 투어로 이어졌다.
시즌을 거듭하며 작품의 완성도도 높아지고 있다. 새로운 춤 파트를 추가하고 전통 모자 소품의 완성도를 끌어 올렸으며 올해부터는 미디어아트를 도입해 시각적 효과를 더했다. 윤 대표는 “초기에는 제작비가 없어 방충망에 검은 칠을 해 갓을 만들었다(웃음)”며 “공연을 거듭하며 소품과 의상을 점차 업그레이드해 지금은 비단 의상까지 갖추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사용했던 ‘방충망 갓’은 지금도 연습실 천장에 걸어두며 초심을 되새기고 있다.
작품의 성공과 함께 윤별발레컴퍼니도 도약하고 있다. 프로젝트 단위로 무용수를 모아왔던 방식에서 벗어나 올해부터 약 30명 규모의 정식 단원제를 도입했다. ‘갓’ 외에도 ‘카르멘’, 갈라 공연 등 레퍼토리를 확장하고 있다. 윤 대표는 “국내에서는 무용을 전공하고도 주요 무용단에 속하지 못하면 설 무대가 제한되는 현실이 있다”며 “후배 무용수들이 지속적으로 무대에 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대중들의 관심이 커질수록 그만큼 책임감도 커졌다. 윤 대표는 “예전에는 무용 공연 객석에 (무용수들이 머리카락을 정리하는) ‘머리망’을 한 관객이 대부분일 정도로 업계 사람들만의 잔치였다. 이제는 유료 관객 비율이 90%를 넘는다”며 “관객의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작은 실수조차 외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마음에 새기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는 해외 진출을 위한 첫발도 뗀다. 윤 대표는 “연줄도 없이 시작하다 보니 전 세계 극장 70여 곳에 직접 이메일을 보냈다”며 “상당수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고, 조건이 맞는 곳을 중심으로 투어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5월과 9월 태국, 베트남, 홍콩 공연이 확정됐으며, 유럽 공연도 추가로 논의 중이다.
내년에는 초청 공연을 목표로 한다. 그는 “해외 주요 극장의 기획 공연에 참여하려면 1~2년 이상의 준비가 필요하다”며 “올해는 직접 무대를 보여주고 네트워크를 쌓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궁극적인 목표는 K발레의 ‘역수출’이다. 윤 대표는 “지금은 고전으로 여겨지는 ‘백조의 호수’도 탄생 당시에는 혁신적이고 동시대적인 작품이었다”며 “오늘의 감각으로 그런 작품을 만들어내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50년도 채 되지 않은 한국 발레의 역사에 우리 고유의 색을 입혀 다시 세계 무대에 내놓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덧붙였다.
이혜진 선임기자 has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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