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덕칼럼]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의 숙명

손현덕 기자(ubsohn@mk.co.kr) 2026. 3. 24.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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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유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사태 해결된들 위기는 상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
이참에 에너지 아껴 쓰자
손현덕 주필

3월 15일 일요일 오후 7시 청와대 서별관에서 열린 '석유수급 비상대책회의'는 9시 넘어서야 끝이났다. 문신학 산업통상부 차관은 곧바로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했다. 특사단의 일원으로 밤 11시 40분 두바이로 가는 에미레이트항공 323편에 탑승. 강훈식 청와대 비서실장이 단장을 맡았다.

아랍에미리트(UAE) 출장은 한 편의 영화 같았다. 도착을 1시간 앞두고 이란 드론 공격으로 공항에 불이 났다. 여객기는 상공을 선회하다가 인근 알막툼 공항에 비상착륙한다. 가까스로 대통령과의 면담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그 뒤는 알려진 대로 원유 1800만배럴 추가 도입 성사.

환호 뒤엔 또 다른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17일 새벽 3시 15분 돌아오는 비행기가 영공 폐쇄로 취소됐다. 호텔로 복귀. 이번엔 미사일 공습. 두바이에서 출국은 불가 판정. 특사단은 아부다비로 이동했고 거기에서 태국 방콕을 경유하는 비행기를 잡아 예정보다 하루 늦게 한국에 도착했다. 이렇게 무박4일 일정으로 미션 완수.

해프닝으로 넘길 일만은 아니다. 전쟁 중 중동에서의 원유 도입은 그만큼 아슬아슬, 위험천만이다. 가격은 부차적. 수급에 차질이 생기면 우리 경제 자체가 낭떠러지다. 석유는 물론 그 파생상품도 문제. 제조업에 치명타다. 현재 원유를 정제해서 나오는 나프타 수급이 더 심각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1970년 이후 석유파동은 두 번 있었다. 1973년 중동전쟁 땐 유가가 4배 상승했다.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촉발된 2차 석유파동 때는 약 2.5배 상승. 그래도 버텨낸 한국 경제였다. 이번에는 다르다. 이란 전쟁이 설사 곧 끝나더라도 석유와 가스 생산이 정상화되는 건 아니다. 이미 많은 생산시설이 타격을 받아 복구에 시간이 꽤 걸린다. 개월(個月)의 문제가 아니라 년(年)의 문제라고도 한다.

더 큰 이슈는 수송. 세계 경제의 숨통을 쥐고 있는 호르무즈 해협이 막혔기 때문이다. 초유의 일이다. 호르무즈 통행에 대한 결정권은 미국에 있지 않다. 이란이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 한 유조선은 한 척도 빠져나올 수 없는 게 현실. 보험료도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지난 20일 서해 대산항에 들어온 이글벨로어호가 호르무즈를 떠난 마지막 유조선이며, 이번 UAE 담판으로 확보한 석유도 아직 중동을 벗어나지 못했다. 우회로가 있기는 하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홍해 연안의 얀부, 그리고 UAE에서 오만만의 푸자이라 항구로 빼는 라인. 그러나 홍해에서 아덴만을 통해 인도양으로 빠지는 좁은 길목은 예멘의 후티 반군이 노리고 있고, 푸자이라 항구는 이란의 드론 공격으로 석유 선적이 원활치 않다. 게다가 이 두 항구는 호르무즈에 비하면 취급 물량이 턱없이 적다. 우리나라의 원유 도입은 작년 기준 10억배럴. 이 중 69%가 중동에서 오고, 그 물량의 90%가 호르무즈를 통과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2022년부터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에서 원유 공급이 끊기면서 중동 의존도가 더 커졌다. 북미에서 가져올 수도 있으나 기일이 10일 이상 더 걸리며 대부분 경질유다. 중질유 중심의 설비를 갖춘 한국엔 적절치 않다.

당장이 문제다. 전쟁 중 직접 호르무즈를 뚫는 건 상상 초월이고, 이란산 원유를 도입하는 건 첩첩산중이다. 그렇다면 공급 측면에서 남은 해결책은 비축유 방출밖에 없다. 중동 상황이 하루하루 급변한다. 이 글을 마감하고 난 후 밤중에 또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른다. 그래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일, 그걸 해야 한다. 한국의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독일이나 일본에 비해 약 1.7배 많다. 에너지 절약이 답이다. 이참에 에너지 펑펑 쓰는 관행을 고쳐보자. 석유를 수입하는 한 '석유 위기'도 수입할 수밖에 없는 법.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의 숙명인 걸 어쩌겠나.

[손현덕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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