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진보인권 법률가’들이 빠진 함정 [아침햇발]


이재성│논설위원
이재명 정부의 검찰개혁을 3단계로 나눈다면 이제 갓 2단계가 지난 셈이다. 공소·중수청 설립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2단계에선 검찰청을 폐지한 정부조직법이 통과되던 1단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날 선 논쟁이 이어졌는데, 논쟁의 대부분이 검찰개혁에 찬성하는 진영 내부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이다. 무엇이 옳은지보다 대통령 방침에 따르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믿는 여당 안팎의 스피커들이 정부 법안을 비판하는 원칙론자들을 ‘반명’으로 몰아붙이기도 했다. 스스로 제왕의 신민이 되고자 하는 왕당파는 여야 관계없이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교훈이 남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놀라웠던 경험은 이른바 진보 성향의 법률가들조차 검사의 본분이 무엇인지 착각하거나 고의로 호도하는 광경을 목격한 것이다. 이들은 주로 피해자 관점에서 ‘수사의 효율성’을 앞세우며 검사가 수사권을 계속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우리 헌법의 근본이념을 망각했거나 무시하는 주장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형사절차의 전 과정이 “인권침해적인 국가작용”이라는 인식의 토대 위에서 “형사소송절차의 전반을 기본권 보장의 측면에서 규율하여야 한다는 기본 원리를 천명하고 있”다.(이주원 ‘형사소송법’) 여기서 기본권이란 피해자가 아니라 피의자의 기본권이다.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의해서만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할 수 있도록 한 영장주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와 구속적부심사청구권, 법관 및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일사부재리 원칙 등이 제헌 헌법부터 반영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강제수사의 시발점인 영장을 “검사의 신청”에 의해서만 발부할 수 있도록 한 이유도 수사기관의 모든 행위가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적법하게 이뤄졌는지 법률가로서 점검하라는 의미다. 박정희 정권이 검찰권 강화 수단으로 개헌안에 끼워 넣은 측면이 있지만, 당시 ‘경찰 파쇼’로 불릴 만큼 강력했던 경찰을 법률적으로 통제하려는 의도가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검사’(檢事)라는 명칭 자체가 ‘점검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범인을 잡아넣는 게 최대 목표인 수사기관을 “기본권 보장의 측면에서” 헌법과 법률로 견제하고 바로잡는 사람이 검찰관(檢察官)이다. 검찰관은 ‘효율적으로’ 범인을 수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수사관의 인권침해를 막고 적법하게 기소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법률을 전공했다는, 그중에서도 인권을 중시한다는 진보적 법률가들이 이토록 자명한 사실을 정말 몰라서 공소청이 (보완)수사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해답은 이들이 한결같이 피해자 구제를 중심으로 활동해온 인권 법률가들이라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낸 대학교수, 장애인 권익을 위해 활동해온 인권변호사, 인권시민단체에서 오래 활동한 대학교수로서 피해자 관점의 정의관에 따라 현실에 개입해온 분들이다. 형사절차의 두가지 목표라고 할 수 있는 ‘진실 발견’(가해자 처벌)과 ‘적법 절차’ 가운데 전자에 무게중심을 둘 수밖에 없는 처지다.
하지만 이들이 당위처럼 전제하는 ‘신속하고 강력한 가해자 처벌’은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기본권 보장’이라는 최상위 가치와 명백히 충돌한다. 가해자 처벌을 통한 정의 실현이 국가의 존재 이유 중 하나인 건 분명하지만, 우리 헌법은 ‘적법 절차’가 ‘진실 발견’보다 “우월한 형사절차의 최고 이념”(이주원, 같은 책)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특히 검사는 강제수사를 허용할지 말지(영장청구권), 법정에 세울지 말지(기소권) 결정하는 ‘적법 절차’의 파수꾼 같은 존재다. 피해자 관점의 정의관으로 검사를 포함한 형사절차를 논하니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처벌의 효율성으로 치면, 수사와 기소, 재판까지 도맡았던 조선시대 원님(사또) 제도가 최고 아닌가.
수사와 기소 분리는 우리 헌법에 내장된 기본 원리라고 할 수 있다. 헌법 정신에 어긋나는 검찰의 수사권을 정부 수립 이래 80년 가까이 존속시킨 결과, ‘윤석열 내란’이라는 헌정 질서 붕괴 사태에 이르렀다고 봐야 한다. 영장청구권과 기소권으로 수사기관을 통제해야 할 검찰이 수사권마저 가짐으로써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는 무소불위의 괴물이 되고 말았다. 내란 사태를 맞아 헌법 정신에 맞게 온전히 분리하지 않는다면 미래의 또 다른 헌법 파괴를 허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시행착오조차 불가피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든든한 합의다. 수사와 기소의 완벽한 분리는 가지 않을 수 없는, 가야만 하는 헌법의 길이다.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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