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병(派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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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派兵)은 파견(派遣)과 병력(兵力)의 합성어다.
즉 일정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군대를 외국에 파견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 범위를 해외로 한정한 해외파병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
파병은 주로 전쟁ㆍ분쟁지역에서의 전투 투입, 평화 유지, 동맹 협력 증진 등 군사적ㆍ정치적 목적을 위해 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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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派兵)은 파견(派遣)과 병력(兵力)의 합성어다. 일반적으로 군대를 다른 곳에 보내는 경우를 가리킨다. 즉 일정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군대를 외국에 파견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 범위를 해외로 한정한 해외파병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
파병은 주로 전쟁ㆍ분쟁지역에서의 전투 투입, 평화 유지, 동맹 협력 증진 등 군사적ㆍ정치적 목적을 위해 행해진다. 재난구조, 의료지원, 재건ㆍ복구사업 참여 등 인도적ㆍ경제적 차원에서 이뤄지기도 한다.
▲자국 군인을 다른 나라 영토에 파견하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우리의 파병 역사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손에 꼽힐 정도다. 서기 400년 왜적이 한반도 남부에 몰려오자 고구려 광개토대왕은 5만 대군을 신라에 파견해 왜적을 물리쳤다.
고려 시대엔 1274년과 1281년 2차례에 걸쳐 원나라의 강요로 여원(麗元)연합군이 결성돼 일본 정벌에 나섰다. 하지만 이 원정은 태풍으로 실패했다. 조선시대엔 1619년 후금(청나라 전신)을 토벌하려는 명나라를 돕고자 2만명에 가까운 군사를 보냈으나 사르후 전투에서 대패했다. 그 뒤 1654년과 1658년 청나라 변경을 침입한 러시아군을 격퇴하기 위해 조총수가 파견되기도 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후 국군 파병은 베트남 전쟁이 최초이자 최대 규모였다. 1964년부터 1973년까지 약 9년 동안 맹호ㆍ청룡ㆍ백마부대 등 연인원 32만명이 동원됐다. 우리의 군사력 강화와 경제 발전 등에 기여했다. 그러나 장병 5000명 이상이 전사했고 고엽제 후유증은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나라는 1991년 유엔 가입 이후 전투ㆍ지원ㆍ재건ㆍ평화유지 등 다양한 방식으로 파병에 참여하고 있다. 단위 부대 기준으로 대상 지역만 동티모르 상록수 부대, 이라크 자이툰 부대, 소말리아 청해부대, 남수단 한빛부대 등 20개국 30곳이 넘는다.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이 4주차에 접어든 가운데 최근 뉴스에서 파병이란 단어를 자주 듣게 된다. 얼마 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한국, 일본, 중국, 영국, 프랑스 등 5개국을 거론하며 군함 파견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명분은 글로벌 에너지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 확보를 위함이다.
이에 국내 반응은 부정적 여론이 우세하다. 정부도 일단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며 유관국가들과 다각도로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 어느 때보다 냉철한 판단과 현명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