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속초등산학교 삼총사의 설악산 등산 [독자산행기]

"이번 주말에 설악산 대청봉이나 한번 같이 갔다 올래?"
무심코 던진 나의 말에 우리 셋은 바로 계획을 짰다. 강원도 속초시에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국립속초등산학교라는 공공기관이 있다. 세 명 중 맏형인 박종혁 대리, 나 김용학 주임, 그리고 나이로는 막내지만 나와 입사동기인 김재준 주임으로 구성된 우리 삼총사는 국립속초등산학교의 등산 교육을 운영하는 직원이다.
우리는 오색분소에서 출발해 대청봉을 지나 소공원으로 하산하는 약 16km의 당일 산행을 계획했다. 우리 모두 등산 교육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라 체력은 걱정 없었지만, 출발점까지 이동하는 것이 문제였다. 처음에는 속초에서 오색까지 시외버스를 이용해서 가려고 했는데, 배차가 늦은 시각부터 있어서 문제였다. 원점회귀가 아니기 때문에 차를 어디에 주차할까 셋이 고민하는 와중 구세주가 등장했다. 바로 나의 직속상관인 실장님이었다. 실장님이 기꺼이 출발지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그것도 새벽 6시에.
오전 7시 오색분소 앞에 도착했다. 실장님한테 감사 인사를 하고 출발 전 개인 장비를 정비했다. 2월 말 겨울이 다 지나갈 무렵이어서 다행히 그렇게 춥지 않았다. 날씨가 정말 산행하기 딱 좋았는데도 예상보다 사람은 별로 없어 한산했다.
등산 시작. 도중에 일출도 보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 순간 산 노래도 같이 불렀다.
"우리는 잘 웃지도 않고 속삭이지도 않지만~♬"
"울적한 마음 달래려고 산길로 접어 섰다가~♪"
'자일의 정', '산 아가씨', '설악가' 등 다양한 산 노래를 부르면서 산을 오르다 보니 힘겨움보다 즐거움이 넘쳐났다. 막내인 재준이는 한국산악회 대구지부 출신으로 이미 여러 산 노래를 알고 있어 내게 산 노래를 알려줬다. '산 노래 배우기' 교과목을 개설해 국립등산학교에서 정식으로 교육하고 싶을 정도다.

정상에 다다를 무렵 아이젠을 착용했다. 겨울 산행에서 아이젠은 필수 장비다. 나는 예전에 아이젠을 착용하고 벗는 것이 귀찮아 아이젠이 결합된 등산화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을 해봤다. 평소에는 일반 등산화처럼 신다가 아이젠이 필요할 때 어떤 버튼을 누르면 밑창에서 바로 스파이크가 나오는 그런 등산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재미있는 상상은 그저 헛된 생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스파이크만큼 무게도 무거울 것이고, 스파이크가 있는 밑창은 뚫려 있으니 평상시 접지력도 떨어질 것이다. 역시 시중에 이런 상품이 없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어느덧 대청봉에 도착했다. 뻥 뚫린 하늘에 우뚝 솟은 하나의 바위. 빨간색으로 '대청봉'이라고 쓰인 커다란 정상석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우라가 있었다. 하지만 대청봉에 도착하자마자 매서운 바람을 온몸으로 버텨야 했다. 바람 때문에 성인 남성들이 몸을 휘청일 정도였다. 생존을 위해 얼른 대청봉 정상석과 인증샷을 찍은 후 서둘러 하산을 시작했다. 계획했던 포즈가 있었는데 그런 건 잊은 지 오래다. 빨리 이 매서운 칼바람과 맹추위에서 벗어나야 했다. 정상석에서 벗어나는 불과 몇 분 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묵묵히 발길을 옮겨야 했다.
나는 그 와중에 새로 산 카메라로 풍경 찍겠다고 장갑도 벗으며 사진을 마구 찍었다. 이날이 카메라를 사고 처음으로 산으로 출사한 날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이 카메라를 가지고 가야 하나 고민도 많았지만, 이러려고 구매하지 않았나 생각하면서 과감히 카메라를 챙겼다. 설악산 대청봉에 항상 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 손을 내주고 멋진 사진을 얻으리라.
대청봉에서 중청과 소청을 지나 희운각대피소에 도착했다. 여기서 잠시 휴식하며 점심을 먹기로 했다. 이번 점심 메뉴는 물만 있으면 바로 먹을 수 있는 발열 식품이다. 인원은 세 명이지만 일부러 두 개를 준비했다. 왜냐하면 이 발열 식품이 생각보다 양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센스 있게 하나는 라면을 곁들인 밥, 다른 하나는 비빔밥으로 가져와 나눠 먹는 즐거움을 더했다. 물만 부으면 10분 안에 따뜻한 한 끼를 든든하게 해결할 수 있어 이런 비화식 제품은 유용한 아이템이라 생각한다. 또한, 요즘 산불이 전국적으로 자주 일어나 사회적 문제인 만큼 산불 예방에도 아주 적합하다.
이제 배도 채웠으니 다시 하산길로 접어든다. 오를 때와 다르게 햇살이 들어 포근했다. 하지만 길은 아직 꽁꽁 얼어 있어 방심은 금물. 하산길은 11km 정도의 거리이기 때문에 중간중간 쉬면서 내려갔다. 행동식으로 챙겨온 초콜릿과 에너지바, 과일 등을 나눠 먹으며 체력을 보충했다. 그리고 풍경 사진도 찍었다. 이 사진들이 모두 내 블로그의 재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산행기를 개인 블로그에 포스팅하고 있다. 언제 누구와 어디를 갔는지 기록하면서 그때의 기억을 추억하기 위함이다.
어느덧 양폭대피소를 지나 비선대로 들어섰다. 작년 국립속초등산학교에서 중학교 1학년생 20여 명을 데리고 자유학기제 프로그램으로 산행했던 곳이다. 당시 남교리탐방지원센터에서 용탕폭포까지 십이선녀탕 코스를 계획했지만, 우천으로 인해 비선대 코스로 급하게 변경했었다. 그때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모두 완주할 정도로 비선대 코스는 완만하고 길이 잘 닦여 있다. 이제는 정말 도착 지점이 코앞이다.
동료들과 담소를 나누며 소공원 도착 지점에 골인했다. 내려오자마자 휴대폰 메시지를 확인하니 등산학교 교장님이 고생했다며 고기를 사주신다고 했다. 설악산 소공원의 랜드마크인 반달가슴곰 동상 앞에서 셋이 기념사진을 찍으며 오늘 산행을 마무리 지었다. 다음 산행은 서북 능선 코스로 기약하면서.
국립속초등산학교의 교육 운영 직원으로 산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누구에게는 힘들고 어려울 수 있지만, 나에게는 기쁨이다. 좋아하는 직장 동료들과 함께할 수 있어 좋고, 매번 새로운 교육생들과 친하게 지내며 같이 으.으. 하는 분위기가 너무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산을 많이 오를 수 있으니 더 좋다. 앞으로도 건강하고 재미있게 산을 즐길 예정이다.
월간산 4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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