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해고가 쉬운 나라일까, 어려운 나라일까?…이 대통령이 던진 화두
'법령 기준' 해고 난도, OECD 평균 웃돌지만
정규직-비정규직 양극화, 교섭 관행 미측정
"고용 경직됐다는 건 대기업 정규직만 해당"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공개석상에서 여러 차례 '고용유연성 확대'를 화두로 던지면서 사회적 논쟁이 불붙을 조짐이다. 이 대통령은 24일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을 만나 "경영계에선 고용 유연성을 요구하고 노동계는 '해고는 곧 죽음'이라며 도전히 수용할 수 없어 두 의견이 크게 부딪히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19일 열린 경제사회노동위원회 1기 출범 정책 토론회에서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드러낸 바 있다. 실제 경영계는 채용·해고·임금 등 노동 시장이 지나치게 경직돼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다고 토로하는 반면, 노동계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맞선다. 어느 쪽 말이 맞을까. 관련 지표와 학계의 분석을 토대로 따져봤다.
①고용유연성이 뭐야?
고용유연성이란 '쉬운 해고'만을 뜻하진 않는다. 근로 형태나 시간, 임금, 기업 내 인력 배치 전환을 유연하게 하는 것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예컨대 회사 사정에 따라 해고를 지금보다 쉽게 하고, 성과급제 등을 통해 임금 비용을 조절하며 근로시간도 지금보다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용유연성 확대는 인구가 빠르게 줄어드는 상황에 잠재성장률을 지킬 방법"이라며 "한정된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해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잠재성장률 추정치는 현재 1.7~1.9%인데 이는 새 정부 목표치인 3%에 한참 못 미친다. 다만 이 대통령이 토론회에서 강조한 것처럼 노동자는 '해고=죽음'으로 받아들이는 현실에서 사회안전망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②고용유연성 확대, 처음 나온 얘기야?

한국에서 고용유연성 논의가 나오기 시작한 건 김영삼 정부(1993~1998년) 때다. 정부는 노사개혁위원회를 설치하고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자 도입을 추진했지만 야당의 반대로 법을 만들지는 못했다. 외환위기 직후 출범한 김대중 정부(1998~2003년)는 정리해고제를 도입한다. 국제통화기금(IMF) 측이 자금을 빌려주는 조건 중 하나로 정리해고제 도입 등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일반해고 요건 완화, 저성과자 퇴출 등을 시도했지만 노동계 반대를 넘지 못했다.
진보진영 정치인인 이 대통령이 취임 후 첫 국무회의에 이어 양대노총을 만나서도 언급한 것은 파격으로 비친다. 다만 이 대통령은 "기업이 원하는 고용유연성에 대해 노동자들이 수용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일방적 추진이 아닌 노사 간 대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③정말 우리나라가 덜 유연해?
"고용유연성이 부족하다"는 재계와 "충분히 유연하다"는 노동계의 주장 중 어느 한쪽이 전적으로 옳다고 보기 어렵다. 현상을 정확하게 측정할 지표가 없어서다. 가장 널리 인용되는 건 경제협력개발지구(OECD)의 '고용보호지수'다. 노동관계법상 해고 규제 수준을 0부터 6점까지 매기는데, 낮을수록 법적 보호가 미비해 해고가 쉽다는 뜻이다. 최신 지표(2019년) 기준 우리나라 정규직(개별 해고 시) 고용보호지수는 2.37로, OECD 회원국 평균(2.26)을 조금 웃돈다. 미국(1.3), 호주(1.66), 영국(1.74), 독일(2.22)보다는 해고가 어렵지만 체코(3.02), 이탈리아(2.72)보다는 쉽다.

경영계는 이런 수치를 근거로 "우리나라 고용이 경직됐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현행법상으로는 긴박한 경영상 이유, 징계로 인한 해고만 가능하다. 이 때문에 기업 입장에선 일단 고용하면 해고가 어려우니 정규직을 덜 뽑고 비정규직을 채우는 것이다. 이 같은 악순환 탓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노동 시장 이중구조(좋은 일자리와 열악한 일자리로 양극화)가 굳어졌다.
학계에선 기존 지표로는 노동 시장 양극화를 측정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기업 정규직은 고용이 경직돼 있다'는 표현이 틀리지 않은 현실이지만 대다수의 중소기업 비정규직 고용은 지나치게 유연화돼 있다"고 말했다. 고용보호지수는 비정규직의 해고 용이성을 정규직과 똑같이 집계하고 있지 않아 제대로 된 평가가 어렵다. 비정규직은 전체 임금 근로자의 약 38.2%(856만8,000명)지만 노조 가입률은 1%에 불과하다.
또 지표는 법령을 기준삼아 고용유연성을 따지기에 현장의 '관행'은 놓치는 한계가 있다. 정규직 노조원이 법령 외에도 교섭을 통한 단체협약, 취업규칙을 토대로 고용 경직도를 높이는 상황이 반영되지 못한다는 얘기다. 이것까지 따지면 유노조 정규직 해고는 더 어렵다. 김유빈 한국노동연구원 고용정책연구본부장은 "노동관계법 자체의 사각지대도 많아 (고용유연도를) 제대로 측정할 수 없다"고 짚었다.
④앞으로 어떻게 될까

고용유연화의 가장 큰 관문은 강력하게 반발하는 노조를 설득하려는 일이다. 이 대통령은 노동 취약계층 보호망을 깐 뒤 노조 양보를 이끌겠다는 복안을 내놨다. 그러면서 노동계가 유연성을 받아들이는 대신 기업은 노동자 재취업에 드는 사회 안전망 비용을 분담하게 하면 좋은 일자리가 확대되는 선순환이 가능할 거란 기대를 내비쳤다. 대표적인 모델인 덴마크의 '유연안정성(Flexicurity)'은 노동계도 지지한다. 해고 이후의 삶까지 보장하는 시스템으로, 실업급여 수급이 끝나고도 재취업을 못 하면 사회부조로 생계비를 지원한다.
다만 이번 정부에서 노사 대타협의 물꼬를 틀지는 미지수다. 이병훈 교수는 "역대 정부에서 분란만 겪다가 끝났던 경험을 토대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현실 진단이 우선"이라 제언했다. 이 대통령도 속도보단 방향이 중요하다며 사회적 대화를 통한 신뢰 회복을 독려했다.
강지수 기자 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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