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스 되겠다” 수첩 남기고 떠난 19세 노동자···유족 “산재 인정하라”

김창효 기자 2026. 3. 24.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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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페이퍼 청년 사망 사고 산재 인정 촉구 기자회견···“법적 마침표는 산재 승인”
전북 전주의 한 제지공장에서 숨진 19세 노동자의 생전 메모장 내용. 민주노총 전북본부 제공

“인생계획 세우기, 다른 언어 공부하기, 편집기술 배우기, 경제 공부하기, 조심히 안전하게 일하겠음, 파트에서 에이스가 되겠음.”

입사 6개월 만에 숨진 19세 청년 노동자의 수첩에는 사회초년생의 소박한 다짐이 빼곡했다.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전주페이퍼에 입사한 박정현씨는 기계실에서 홀로 작업하다 목숨을 잃었다. 유가족과 민주노총 전북본부·전남본부는는 24일 광주 남구 봉선동 광주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산업재해 인정을 촉구했다.

이들은 “차가운 기계실 바닥에서 홀로 생을 마감한 청년 노동자의 죽음은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명백한 산업재해”라고 주장했다.

박씨는 2024년 6월16일 일요일에도 출근해 ‘2인 1조’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상태에서 단독 작업을 하다 변을 당했다. 배관 점검을 위해 들어간 현장에서 쓰러진 뒤 약 1시간 동안 발견되지 못했고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참가자들은 “기본적인 안전수칙과 즉각적인 구조만 이뤄졌어도 살릴 수 있었던 생명”이라며 “미숙련 신입 노동자에게 위험 작업을 맡긴 구조 자체가 문제”라고 했다.

사측의 대응도 논란이 됐다.

회사 측은 사고 초기 유독가스 농도가 미미했다고 밝혔지만 이후 자체 조사에서는 현장에서 치명적인 황화수소(H₂S)가 측정기 한계치인 100ppm 이상 검출된 사실이 확인됐다. 황화수소는 수차례 흡입만으로도 치명적일 수 있는 물질이다.

24일 오전 광주 남구 봉선동 광주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앞에서 열린 ‘전주페이퍼 박정현 산재 인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이민경 민주노총 전북본부장이 발언하고 있다. 민주노총 전북본부 제공

참가자들은 “사측이 이를 축소하거나 은폐하려 했다”며 “실제 농도는 더 높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유족은 사고 이후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하며 폭염 속 단식 투쟁을 벌였다. 뒤늦은 사과와 합의가 있었지만 유족과 단체는 “고인의 명예 회복과 재발 방지를 위한 최소한의 출발점은 산재 인정”이라고 했다.

노동계는 이번 사고가 과거 청년 노동자 사망 사고와 구조적으로 닮았다고 본다.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홀로 수리하다 숨진 ‘구의역 김군’,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김용균씨 사례처럼 위험 업무의 외주화와 인력 축소, 안전 규정 미준수가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참가자들은 광주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신속한 산재 승인과 함께 근로복지공단이 유독가스 노출과 열악한 노동 환경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을 인정하고 고용노동부가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고인이 남긴 ‘안전하게 일할 권리’는 개인의 바람이 아니라 사회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준”이라며 “산재가 인정될 때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김창효 선임기자 c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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