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한 적 없는데 왜 내 사인이… KT 이상한 인터넷 계약서 [추적+]

김정덕 기자 2026. 3. 24.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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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호텔 재무제표를 살펴보던 그는 '이상한 결산'을 발견했다.

■ 쟁점① 계약서 못 보여준다는 KT = 지난해 4월 A씨는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인 KT 측 고객센터에 연락해 계약 내용을 확인할 필요가 있음을 알리면서 계약서 사본을 요청했다.

A씨 : "하지만 난 당시 그런 계약을 한 적이 없다. 계약서를 직접 봐야 정확하겠지만, 내 사인이 도용된 것 같다. 계약서를 줄 수 없다면 대리점의 계약이 정상적이었는지 KT 측이 조사라도 해봐 달라."

A씨가 이를 거부하자 KT 측은 4개월여 후인 그해 10월 A씨를 상대로 위약금을 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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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요금 의문에 계약서 요청
KT는 복사본 제출도 거절
알고 보니 계약서 조작 논란
요금에만 집착, 관리는 뒷전

# 서울 소재 레지던스 호텔의 위탁 사업자 A씨. 지난해 호텔 재무제표를 살펴보던 그는 '이상한 결산'을 발견했다. 인터넷을 이전 설치한 후 관련 요금이 훨씬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유를 찾기 위해 세부 내용을 확인하려는데, 정작 계약서가 없었다.

# A씨는 곧바로 통신사 KT에 계약서 사본을 요청했다. 하지만 KT의 반응이 영 이상했다. 계약서를 내놓긴커녕 대리점에 물어보라면서 일을 떠넘겼다. 어쩔 수 없이 A씨가 인터넷 계약을 해지하자 이번엔 '위약금 소송'을 걸면서 맞섰다. 위약금 826만원을 내라는 거였다.

# 문제는 법적 소송 과정에서 KT가 꽁꽁 감췄던 '계약서'가 나왔다는 점이다. 한데, A씨의 사인이 아니었고, 세부 내용에도 문제가 많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더스쿠프가 KT의 '이상한 계약서'의 비밀을 취재했다.

KT는 대리점에 계약을 위임하고 있지만, 정작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을 지지 않는다.[사진|연합뉴스]
외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고 있다. 최근 한국관광공사가 발표한 월별 한국관광통계에 따르면, 올해 1월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은 126만5658명으로 지난해 1월보다 13.3% 증가했다. 지난해 방한訪韓 외국인 역시 1893만6562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처럼 관광객이 늘면서 요즘 숙박, 교통, 외식, 쇼핑 분야는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다.

하지만 이런 호재에도 레지던스 호텔 위탁 사업장을 운영하는 A씨는 근심이 한가득이다. 뜻밖의 소송에 휘말려서다. 중요한 건 이 소송이 대기업 KT의 비상식적인 행태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지난해 4월로 시계추를 돌려보자. 당시 A씨는 점점 늘어나는 방한 관광객 덕분에 모처럼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언제 어떤 악재가 닥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코로나 팬데믹으로 숙박업계는 큰 타격을 입었고, 당시 A씨 역시 적잖은 손해를 봤다. 이전에는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한한령으로, 더 이전엔 메르스(MERSㆍ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발목을 잡았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A씨는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를 기점으로 낭비가 없는지 꼼꼼히 살펴보게 됐다. 그러다 한가지 이상한 점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2022년에 사업장을 옮기면서 인터넷을 이전 설치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그 이후부터 인터넷 요금이 예상보다 많이 나온다는 점이었다.

[※참고: 레지던스 호텔에서 인터넷 비용은 만만찮다. 객실별로 인터넷을 설치하기 때문에 객실 수가 많을수록 요금도 늘어나는 구조여서다. A씨의 예상치는 월 100만원 수준이었지만, 실제로는 130만원이 넘게 지출되고 있었다.]

A씨는 요금이 많이 나오는지 이유를 확인해보기 위해 계약서를 찾았지만 없었다. 직원들도 계약서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원래 3년마다 통신사와 인터넷 재계약(연장계약)을 해왔는데, 사업장을 이전한 후엔 한번도 재계약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사진|연합뉴스]
그럼에도 인터넷 서비스가 유지되고 있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요금이 많이 나오는 이유를 알기 위해, 더 나아가 어떻게 서비스가 유지되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 계약서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 쟁점① 계약서 못 보여준다는 KT = 지난해 4월 A씨는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인 KT 측 고객센터에 연락해 계약 내용을 확인할 필요가 있음을 알리면서 계약서 사본을 요청했다. 그랬더니 KT 측은 이해할 수 없는 답변만 거듭해서 늘어놨다. 이해를 돕기 위해 A씨와 KT 측 담당 과장 B씨가 당시 나눈 통화 내용을 잠깐 살펴보자. 편의상 B씨는 KT라 표기했다.

A씨 : "계약서가 있는가. 있으면 사본을 보여 달라."

KT : "계약서는 있지만 보여줄 수는 없다."

A씨 : "계약서가 신규 계약서인지, 연장 계약서인지, 친필 사인이 있는지, 도장이 찍혀 있는지, 언제 작성한 계약서인지 그런 것이라도 알려 달라."

KT : "2024년 4월 17일에 대리점과 서비스를 3년 연장하는 계약을 했고, A씨의 친필 사인이 있다."

A씨 : "하지만 난 당시 그런 계약을 한 적이 없다. 계약서를 직접 봐야 정확하겠지만, 내 사인이 도용된 것 같다. 계약서를 줄 수 없다면 대리점의 계약이 정상적이었는지 KT 측이 조사라도 해봐 달라."

KT : "연장 계약은 대리점을 통해 한 것이기 때문에 직접 대리점 쪽에 문의하시라. 현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이처럼 "계약서가 있지만, 보여줄 수는 없다"는 KT 측의 입장과 "그런 계약을 한 적이 없다"는 A씨의 입장이 엇갈리는데, 이는 상당히 중요한 함의를 갖고 있다. 그 이유를 하나씩 살펴보자.

■ 쟁점② A씨 주장의 신빙성 = 연장 계약을 한 적이 없다는 A씨의 주장이 맞다면 "계약을 체결했다"는 KT와 대리점은 법을 어긴 게 된다. 이 상황을 살펴본 한 변호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행 전기통신사업법(제32조)은 '전기통신사업자(KT)가 이용자(A씨)와 전기통신역무 이용 계약을 체결(계약 내용 변경 포함)할 경우, 해당 계약서 사본을 이용자에게 서면이나 정보통신망을 통해 송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5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 수 있다.

[자료|한국소비자원, 사진|연합뉴스]
관건은 A씨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느냐다. A씨가 연장 계약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데는 두가지 명확한 근거가 있다. 단순히 기억에 의존한 주장이 아니라는 건데, 첫째는 '지원금'을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A씨는 "그동안 연장 계약을 할 때는 KT가 주는 것인지, KT 대리점이 주는 것인지 명확하진 않지만, 통신사를 옮길 때처럼 일종의 지원금을 줬다"면서 "우리는 내는 요금이 많은 만큼 지원금 액수도 많은데, 그 지원금을 받은 내역이 없다"고 주장했다.

둘째는 더 명백한 건데, 약간의 사전 설명이 좀 필요하다. A씨는 KT 측과 이 사안으로 갈등을 빚다 결국 지난해 5월 KT와의 인터넷 계약을 해지했다. 그러자 KT 측은 A씨에게 826만원의 위약금을 물렸다.

A씨가 이를 거부하자 KT 측은 4개월여 후인 그해 10월 A씨를 상대로 위약금을 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A씨와 계약을 맺었다는 KT대리점을 통해서였다.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A씨가 "계약이 없었는데, 뭘 근거로 위약금을 물리는 것이냐"고 주장하자, 대리점 측은 계약서 사본 하나를 법원에 제출했다.

흥미로운 건 이 계약서 사본에 A씨의 이름과 사인이 적혀 있었지만, 그의 사인도 필체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KT 측이 주장하는 연장 계약 날짜도 적혀 있지 않았다. A씨는 현재 법원에 해당 계약서의 필적 감정까지 의뢰한 상태다. 누군가 계약서를 위조했거나 명의를 도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 쟁점③ KT 대응의 심각한 하자 = KT와 연장 계약을 한 적이 없다는 A씨의 주장이 맞다면 그동안 KT와 대리점의 대응엔 심각한 법적 결함이 생긴다. 우선 대리점은 전기통신사업법을 어긴 게 된다. 사문서를 위조했을 가능성도, 그로 인해 A씨가 몇년 동안 부당하게 요금을 더 부담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연히 KT는 대리점 관리ㆍ감독을 소홀히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소비자가 계약에 심각한 하자가 있다고 주장하는데, 자체적으로 조사도 하지 않은 채 '법적 소송'을 걸었기 때문이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A씨는 "해킹으로 인해 소비자들의 개인정보가 유출될 때는 쉬쉬하더니 소비자의 억울함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 KT의 황당한 행태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특히 대리점을 앞세워 소송을 제기한 건 KT가 이익만 챙기고, 계약이나 소송 등 복잡한 일은 대리점에 떠넘긴다는 인상마저 준다.

이런 상황에서 A씨가 피해자인 게 재판을 통해 명확해진다면 문제가 더 커진다. KT의 통상적 계약 방식에 문제가 있음이 드러나는 셈이어서다. A씨의 사인을 위조했다면 법적 문제를 넘어서는 논란이 제기될 수도 있다.

하지만 KT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KT 측은 "사안을 파악 중"이란 말만 남긴 채 어떤 답변도 하지 않고 있다. 모른 척일까 회피일까. 어떤 경우든 불편한 민낯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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