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돈 번 '왕사남', 매출 1위 넘어 경제 현상까지... [엔터코노미]
이해정 기자 2026. 3. 24. 11:28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1500만 관객을 향해 달려가며 단순한 흥행을 넘어 하나의 '경제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누적 매출은 1400억원을 돌파해 역대 국내 개봉작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고, 관객 수를 기준으로 환산한 티켓 소비 규모 역시 2000억원 안팎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티켓을 넘어 매점, 관광, 나아가 산업 전반의 분위기까지 반등시킨 효과도 상당하다. 한 편의 영화가 중형 산업에 버금가는 소비를 창출한 셈이다.
24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왕과 사는 남자'(감독 장항준/배급 ㈜쇼박스/제작 ㈜온다웍스, ㈜비에이엔터테인먼트, 이하 '왕사남')는 23일까지 누적 매출액 1433억원을 넘어섰다. 이는 직전 1위였던 '극한직업'(1396억원)의 기록을 넘어선 수치다. 누적 관객수는 1484만2823명으로, 기존 역대 흥행 3·4위였던 '신과함께-죄와 벌'(1441만명)과 '국제시장'(1425만명)을 밀어내고 역대 개봉작 중 3위에 올랐다.
지난 2월4일 개봉한 이후 한 달 반이 지났지만, 현재도 흥행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지난 20~22일 주말 동안에만 80만3000여 명(매출액 점유율 52.2%)의 관객을 보태며 3일 내내 박스오피스 1위를 지켰다.
극장 매출은 1400억원 수준이지만, 관객이 실제 지출한 금액은 1400만 관객 기준 티켓당 1만5000원을 적용할 경우 약 20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여기에 부가세와 수익 분배 구조가 반영되면서 최종 매출은 이보다 낮은 수준으로 집계되는 것이다. 이에 더해 극장 내 매점 매출과 부가적인 소비까지 포함하면, 영화가 만들어낸 총소비 규모는 티켓 매출을 크게 웃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장 직접적인 수혜를 본 곳은 극장가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 2월 국내 극장 매출은 1185억원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지난해 2월 매출액(530억원)보다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왕사남'이 지난 설 연휴 닷새 동안 약 267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것이 주효했다. 일평균 관객수는 약 85만명으로, 지난해 설 연휴 대비 58% 증가했다. 코로나19 이후 침체를 겪어온 극장 산업이 단일 콘텐츠를 계기로 반등의 신호를 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수익 구조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가 감지된다.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크게 웃도는 흥행 성과를 거두며 순제작비(105억원) 대비 극장 수익률은 1365%에 달한다. 티켓 매출은 부가가치세(10%)와 영화발전기금(3%)을 제외하고 극장과 배급사, 제작사, 투자사가 나눠 갖는다. 기대를 넘어서는 수익에 제작사 온다웍스의 임은정 대표는 "함께한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인센티브를 지급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왕사남'의 성공이 실질적인 수익 구조로 이어지며 위축됐던 영화 제작 및 투자 심리를 자극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투자 관점에서도 긍정적인 신호가 포착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흥행이 100억원 안팎의 중예산 상업영화도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한다. 대형 블록버스터에만 의존하지 않고도 시장에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향후 투자 포트폴리오 다변화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러한 흐름에 맞춰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올해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중예산 영화 지원을 위해 200억원을 투입하고 있다. 최휘영 문체부 장관은 최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왕사남'이 언급되자 "중예산 영화는 다행히 작년에 예산이 증액돼 더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게 됐다. 예산을 더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더 중점적으로 지원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재차 정부의 지원 강화를 강조했다.
주목할 점은 '왕사남' 효과가 단순히 극장, 배급사, 제작사, 투자사 등 직접적인 이해관계자를 넘어, 영화 외부의 소비까지 연쇄적으로 끌어올리며 경제적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영화 주요 촬영지인 강원 영월 일대에서는 관광객 유입이 크게 늘면서 상권 매출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은 영화 주요 촬영지인 영월군 소상공인 매출을 분석한 결과, 개봉 이후 4주간 일평균 매출이 개봉 전보다 35.7% 증가했다고 밝혔다. 전년 동기와 비교해도 매출은 16.4% 증가하며 영화 흥행이 지역 경제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업종별로는 숙박·음식점업 매출이 52.5% 늘며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고, 예술·스포츠·여가 서비스업(37.8%), 도소매업(27.0%)이 뒤를 이었다.

올해 4월부터는 인구감소지역을 여행하면 경비의 절반을 돌려받을 수 있는 정책이 시행되면서, 영월을 찾는 관광객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기획예산처와 문체부는 지난 2월 농어촌 인구감소지역을 여행하면 경비의 절반을 환급해 주는 '지역사랑 휴가 지원(반값 여행)' 시범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선정 지역은 강원 영월군을 비롯한 16개 지역으로, 4월부터 6월 말까지 시행될 예정이다. 사업 참여를 원하는 국민은 해당 지역의 여행 계획을 사전에 신청해 지자체 승인을 받은 뒤, 여행을 마친 후 지출 내역을 증빙하면 경비의 50%를 모바일 지역사랑상품권으로 환급받을 수 있다.
이처럼 '왕사남'은 극장 매출, 투자 수익, 지역 상권까지 다층적인 경제 효과를 만들어내며 시장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특히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중심으로 재편되던 콘텐츠 소비 환경 속에서도, 이른바 '킬러 콘텐츠' 하나가 극장 산업을 다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만 이러한 성과를 시장의 구조적 회복으로 해석하기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관객이 특정 작품에 집중되는 '쏠림 현상'은 여전히 심화되고 있으며, 중간 규모 영화나 다양성 영화로 온기가 확산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번 흥행이 극장 시장 수요가 사라진 게 아니라, 이를 자극할 작품이 부족했다는 문제를 드러낸 사례인 만큼 전반적인 콘텐츠 경쟁력 강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결국 관건은 지속 가능성이다. '왕사남'이 만들어낸 반등이 일시적인 '원 히트 효과'에 그칠지, 아니면 시장의 회복 신호탄이 될지는 미지수다. 단일 흥행작이 시장을 견인하는 구조를 넘어, 다양한 규모와 장르의 영화가 고르게 성과를 내는 생태계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향후 한국 영화 산업의 방향을 가를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해정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
MTN 머니투데이방송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