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처럼 느린 경기”…끊이지 않는 슬로 플레이 논란[박민영의 골프홀릭]

박민영 선임기자 2026. 3. 24.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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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A투어 신인 드 차사르트 도마에
동반한 피츠패트릭 “집중력 깨졌다”
개막 앞둔 국내 골프투어에 ‘타산지석’
선수 개개인 위기의식·공감 가져야
맷 피츠패트릭이 발스파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 마지막 18번 홀에서 버디 퍼트를 성공시킨 뒤 포효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친절하게 말해 빙하처럼 느린 플레이다.”

23일(한국 시간) 끝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발스파 챔피언십을 중계한 미국 NBC의 코스 해설자가 아드리앵 뒤몽 드 차사르트(26·벨기에)를 두고 한 말이다.

이날 뒤몽 드 차사르트와 동반 플레이를 펼친 선수가 바로 우승을 차지한 맷 피츠패트릭(31·잉글랜드)이었다. 피츠패트릭은 ‘뱀 구덩이’(16~18번 홀)로 악명 높은 코스는 물론 동반자의 슬로 플레이까지 이겨내고 정상에 올랐던 것이다.

발스파 챔피언십 3라운드에서 플레이하는 아드리앵 뒤몽 드 차사르트. imagn Images연합뉴스

미국 플로리다주 팜 하버에 위치한 이니스브룩 리조트의 코퍼헤드 코스(파71)에서 열린 대회 최종 라운드.

2022년 US 오픈 우승자 피츠패트릭은 3라운드까지 공동 4위에 올라 이날 드 차사르트와 함께 맨 뒤에서 세 번째 조에서 경기에 나섰다. 사흘 내리 선두를 달린 한국의 임성재가 마지막 챔피언 조에 편성됐다.

지난해 2부 콘페리 투어에서 2승을 올리고 올 시즌 PGA 투어에 데뷔한 드 차사르트는 출발부터 트리플 보기를 적어내며 어수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후 계속된 그의 굼뜬 플레이에 인내하던 피츠패트릭의 짜증은 11번 홀(파5)을 마친 뒤 극에 달했다. 이 홀에서 드 차사르트는 티샷을 왼쪽 러프로 보낸 뒤 나무 사이를 전전하다 5타 만에 겨우 그린을 밟을 수 있었다. 피츠패트릭은 두 번째와 세 번째 샷을 먼저 하고 나서 그린에 걸어 올라간 후에도 드 차사르트가 그린에 도달하기까지 한참을 더 기다려야 했다. 피츠패트릭은 경기위원에게 그의 플레이 속도에 대해 항의했으나 페널티는 주어지지 않았다.

피츠패트릭은 우승을 차지한 뒤 기자회견에서 드 차사르트를 직접 거명하진 않았지만 “오늘은 너무 느렸다. 정말 답답했다”면서 “경기가 중단됐다가 다시 시작되는 느낌이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특히 잘 치고 있거나 우승 경쟁 중일 때는 더 집중해야 하는데, (동반자의 느린 플레이 때문에) 앞 팀을 따라잡거나 적절한 위치에 자리하기 위해 속도를 내야 하는 바람에 두세 홀 정도는 확실히 리듬이 깨졌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그래도 집중력을 발휘한 피츠패트릭은 15번 홀(파3)에서 버디를 잡은 뒤 데이비드 립스키(미국)와 공동 선두였던 마지막 18번 홀(파4)에서 4m 버디 퍼트를 넣고 1타 차 우승을 확정했다. 드 차사르트는 이날 3오버파를 기록해 공동 26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골프에서 슬로 플레이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지만 올해 들어 여러 차례 논란이 되며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PGA 투어 파머스인슈어런스 오픈에서 마지막 조 플레이가 6시간에 육박했고, AT&T 페블비치 프로암에서 우승한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는 5시간 30분 넘게 최종 라운드를 치러야 했다.

슬로 플레이는 개인만의 일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 피츠패트릭의 사례에서처럼 동반자의 리듬을 깨뜨릴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코스 내의 팀들이 꼬리를 물고 진행되는 골프 경기의 특성상 속도가 느린 한 팀의 여파는 뒤로 갈수록 커져 경기 시간을 늘린다.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경기는 팬들과 시청자의 외면을 부른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거꾸로 말해 속도감 있는 경기 진행은 흥행의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피치 클록 도입으로 속도를 높인 프로야구의 관중 수가 늘고 시청률이 높아졌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슬로 플레이 근절을 위해선 벌칙보다 ‘이러다 다 죽는다’는 선수 개개인의 위기의식과 공감이 더 중요하다. 경기 시간 단축은 코스 내 선수 모두가 필요성을 인식하고 전체 경기 운영에 대해 신경을 쓸 때에만 실현될 수 있다. 사실 샷을 하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보다는 샷을 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핵심이 될 것이다. 장갑을 끼고 벗는 일, 거리를 계산하는 일, 다음 샷 지점까지 빠르게 걸어가는 일, 자신의 순서가 되기 전부터 퍼트 라인을 살피는 일, 캐디와 상의하는 일 등은 자신이 샷을 할 차례가 되기에 앞서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국내 남녀 프로골프 투어 시즌 개막이 다가오고 있다. 골프규칙 5.6은 “플레이어는 홀을 플레이하는 동안이나 홀과 홀 사이에서 플레이를 부당하게 지연시켜서는 안 된다”, “골프의 라운드는 신속한 속도로 플레이하여야 한다. 각 플레이어는 자신의 플레이 속도가 다른 플레이어들이 라운드를 플레이하는 데 걸리는 시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여야 한다. 이 ‘다른 플레이어들’에는 플레이어가 속한 그룹의 플레이어들과 그 그룹을 따라 플레이 중인 다른 그룹들의 플레이어들이 모두 포함된다”라며 신속한 플레이를 의무로 엄히 규정하고 있다.

다른 플레이어, 다른 조, 더 나아가 한 라운드, 한 대회, 투어 전체를 인식하는 것은 플레이어가 갖춰야 할 가장 근본적인 태도다. 슬로 플레이는 그 자체로 규칙 위반이다.

너무 재미있어 쉽게 중독되는 것이 골프의 거의 유일한 단점이라고 합니다. 치는 골프, 보는 골프와는 또 다른 ‘읽는 골프’의 즐거움을 함께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박민영 선임기자 my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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