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처럼 느린 경기”…끊이지 않는 슬로 플레이 논란[박민영의 골프홀릭]
동반한 피츠패트릭 “집중력 깨졌다”
개막 앞둔 국내 골프투어에 ‘타산지석’
선수 개개인 위기의식·공감 가져야

“친절하게 말해 빙하처럼 느린 플레이다.”
23일(한국 시간) 끝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발스파 챔피언십을 중계한 미국 NBC의 코스 해설자가 아드리앵 뒤몽 드 차사르트(26·벨기에)를 두고 한 말이다.
이날 뒤몽 드 차사르트와 동반 플레이를 펼친 선수가 바로 우승을 차지한 맷 피츠패트릭(31·잉글랜드)이었다. 피츠패트릭은 ‘뱀 구덩이’(16~18번 홀)로 악명 높은 코스는 물론 동반자의 슬로 플레이까지 이겨내고 정상에 올랐던 것이다.

미국 플로리다주 팜 하버에 위치한 이니스브룩 리조트의 코퍼헤드 코스(파71)에서 열린 대회 최종 라운드.
2022년 US 오픈 우승자 피츠패트릭은 3라운드까지 공동 4위에 올라 이날 드 차사르트와 함께 맨 뒤에서 세 번째 조에서 경기에 나섰다. 사흘 내리 선두를 달린 한국의 임성재가 마지막 챔피언 조에 편성됐다.
지난해 2부 콘페리 투어에서 2승을 올리고 올 시즌 PGA 투어에 데뷔한 드 차사르트는 출발부터 트리플 보기를 적어내며 어수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후 계속된 그의 굼뜬 플레이에 인내하던 피츠패트릭의 짜증은 11번 홀(파5)을 마친 뒤 극에 달했다. 이 홀에서 드 차사르트는 티샷을 왼쪽 러프로 보낸 뒤 나무 사이를 전전하다 5타 만에 겨우 그린을 밟을 수 있었다. 피츠패트릭은 두 번째와 세 번째 샷을 먼저 하고 나서 그린에 걸어 올라간 후에도 드 차사르트가 그린에 도달하기까지 한참을 더 기다려야 했다. 피츠패트릭은 경기위원에게 그의 플레이 속도에 대해 항의했으나 페널티는 주어지지 않았다.
피츠패트릭은 우승을 차지한 뒤 기자회견에서 드 차사르트를 직접 거명하진 않았지만 “오늘은 너무 느렸다. 정말 답답했다”면서 “경기가 중단됐다가 다시 시작되는 느낌이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특히 잘 치고 있거나 우승 경쟁 중일 때는 더 집중해야 하는데, (동반자의 느린 플레이 때문에) 앞 팀을 따라잡거나 적절한 위치에 자리하기 위해 속도를 내야 하는 바람에 두세 홀 정도는 확실히 리듬이 깨졌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그래도 집중력을 발휘한 피츠패트릭은 15번 홀(파3)에서 버디를 잡은 뒤 데이비드 립스키(미국)와 공동 선두였던 마지막 18번 홀(파4)에서 4m 버디 퍼트를 넣고 1타 차 우승을 확정했다. 드 차사르트는 이날 3오버파를 기록해 공동 26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골프에서 슬로 플레이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지만 올해 들어 여러 차례 논란이 되며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PGA 투어 파머스인슈어런스 오픈에서 마지막 조 플레이가 6시간에 육박했고, AT&T 페블비치 프로암에서 우승한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는 5시간 30분 넘게 최종 라운드를 치러야 했다.
슬로 플레이는 개인만의 일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 피츠패트릭의 사례에서처럼 동반자의 리듬을 깨뜨릴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코스 내의 팀들이 꼬리를 물고 진행되는 골프 경기의 특성상 속도가 느린 한 팀의 여파는 뒤로 갈수록 커져 경기 시간을 늘린다.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경기는 팬들과 시청자의 외면을 부른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거꾸로 말해 속도감 있는 경기 진행은 흥행의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피치 클록 도입으로 속도를 높인 프로야구의 관중 수가 늘고 시청률이 높아졌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슬로 플레이 근절을 위해선 벌칙보다 ‘이러다 다 죽는다’는 선수 개개인의 위기의식과 공감이 더 중요하다. 경기 시간 단축은 코스 내 선수 모두가 필요성을 인식하고 전체 경기 운영에 대해 신경을 쓸 때에만 실현될 수 있다. 사실 샷을 하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보다는 샷을 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핵심이 될 것이다. 장갑을 끼고 벗는 일, 거리를 계산하는 일, 다음 샷 지점까지 빠르게 걸어가는 일, 자신의 순서가 되기 전부터 퍼트 라인을 살피는 일, 캐디와 상의하는 일 등은 자신이 샷을 할 차례가 되기에 앞서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국내 남녀 프로골프 투어 시즌 개막이 다가오고 있다. 골프규칙 5.6은 “플레이어는 홀을 플레이하는 동안이나 홀과 홀 사이에서 플레이를 부당하게 지연시켜서는 안 된다”, “골프의 라운드는 신속한 속도로 플레이하여야 한다. 각 플레이어는 자신의 플레이 속도가 다른 플레이어들이 라운드를 플레이하는 데 걸리는 시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여야 한다. 이 ‘다른 플레이어들’에는 플레이어가 속한 그룹의 플레이어들과 그 그룹을 따라 플레이 중인 다른 그룹들의 플레이어들이 모두 포함된다”라며 신속한 플레이를 의무로 엄히 규정하고 있다.
다른 플레이어, 다른 조, 더 나아가 한 라운드, 한 대회, 투어 전체를 인식하는 것은 플레이어가 갖춰야 할 가장 근본적인 태도다. 슬로 플레이는 그 자체로 규칙 위반이다.

박민영 선임기자 my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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