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종훈의 탐라멘터리] 숨으로 이어온 ‘가문해녀’ 연대의 기록, 스위스로 간다
다큐멘터리 사진가 양종훈 상명대 석좌교수의 시선이 《제주의소리》에 격주로 소개된다. 30여 년간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했고, 한국사진학회장과 제주해녀문화협회 이사장을 맡으며 예술과 현장을 잇는 작업을 이어왔다. 제주출신인 그는 오랜시간 국내외의 거친 현장을 누비며 핏속 제주의 숨결을 따라 언제나 제주섬의 이름을 알리고, 숨은 제주의 가치를 세상에 건네왔다. 원초적 인간의 삶과 대자연, 제주해녀와 농경사회를 현장에서 기록해왔고 앞으로도 그 작업은 계속된다. 격주로 연재될 이번 <양종훈의 탐라멘터리> 칼럼은 렌즈에 담긴 경험과 사유를 따라 제주의 문화예술을 다시 소통하는 기록으로, 변화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제주의 숨결을 조용히 비출 것이다. / 편집자 글
지난해 넷플릭스가 방영한 박보검 아이유 주연의 16부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가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드라마 제목이 마치 유행어처럼 번져갔다. '매우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뜻의 제주어인데, 본래 쌍시옷 받침이 인정되지 않아 '폭삭 속앗수다' 또는 '복삭 속앗수다'라고 쓴다.
이 낯선 제주어가 드라마 덕분에 최근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박보검과 아이유 두 주인공 못지않게 제주 해녀로 열연한 배우 염혜란의 연기도 백미였다. 배우 염혜란은 다음 달 개봉을 앞둔 제주 4.3을 다룬 영화 '내 이름은'에서도 주연을 맡아 촬영 내내 폭삭 속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녀들이 작업하는 바다는 부력(浮力)과 가시거리가 시시각각 달라져 수시로 변화하는 환경에 빠르게 적응해야 한다. 잠수한 상태로 해산물을 채취해야 하므로 폐 속 산소의 정도는 물론 물속에 있는 자신의 위치와 수면까지의 거리를 항상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 해녀의 물질 작업은 매일 매일 칠성판을 지고 물속으로 들어간다고 할 만큼 생사를 오가는 고된 작업의 반복이다.
이처럼 테왁 하나에 목숨을 의지해 거친 파도와 싸우는 우리 어머니들을 지난 2016년 유네스코가 '인류가 지켜야 할 보물'이라고 인정해 주었을 때, 그 가슴 벅참을 어찌 잊을까. 그로부터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이 흘렀다. 그동안 우리 제주해녀 삼춘 여러분, 참으로 고생 많으셨다.
그 10주년을 맞아, 필자가 그동안 카메라를 들고 20여 년 제주바다를 헤집고 다니며 본 기적 같은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바로 '가문해녀(家門海女)' 이야기다. 지금 필자 앞에는 흑백 사진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하얀 물소중이를 걸치거나 검은 고무옷을 입은 우리네 어머니, 딸, 며느리들이 서로 어깨를 감싸고 웃고 있는 사진들이다.
예전에는 해녀 어머니들이 딸에게 "얘야, 너만은 이 칠성판을 지지 마라. 육지에 가서 편안하게 살아라" 하며 눈물로 물질을 말리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어머니와 딸이 함께 손을 잡고 물에 들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같이 물질을 한다.
어머니와 딸이 함께 바다에 드는 모녀 해녀,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물길을 나누는 고부 해녀, 자매가 나란히 물질하는 자매 해녀, 부부가 함께 바다를 지키는 해녀·해남 부부, 올케와 시누이가 한 생명을 나누는 가족해녀…. 이것이 바로 '가문해녀'다. 필자가 만단 감동의 '가문해녀'들이다.
필자가 제주해녀의 삶을 '가문' 단위의 계보로 사진기록을 남기면서 또 한 번 뭉클했던 순간이 있다. 바로 '사돈 해녀'들이었다. 가령 한마을에서 나고 자라 혼사를 치르다보면 해녀끼리 사돈지간이 될 수 있다. 그런데 함께 물질하는 세 명의 해녀가 서로 사돈 관계가 되는 것은 흔치 않은 예다.

필자는 이 귀한 사진들을 품고 올해 스위스로 갈 계획이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본부가 있는 스위스에서 <제주 가문해녀 사진전>을 펼쳐 보일 예정이다. 세계 사람들에게 사돈이, 고부가, 모녀가, 부부가, 자매가 바다라는 거대한 자연 앞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생을 이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집안 대대로 지켜내고 전승하고 있는 이 끈끈한 '가문 해녀'의 모습을 보여주면, 제주해녀는 더 이상 박물관에 박제된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살아 숨 쉬는 '현재의 역사'가 되는 것이다.
할머니에서 어머니로, 어머니에서 딸로 면면히 이어지는 숨결 속에, 그리고 사돈과 사돈이 손을 맞잡는 그 연대 속에 인간의 생명력과 사랑, 그리고 공동체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있음을 세계인들에게 증명하려 한다.
그러나 제주해녀문화는 지금 위기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매년 제주해녀는 약 250명 넘게 사라지고 있다. 고령으로 현업에서 은퇴하거나 돌아가시는 분들이 늘고 있다. 제주도가 실시한 해녀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5년 12월 31일 기준 현직 해녀는 2371명으로 집계됐다. 전년(2623명)보다 252명 줄었다.
그런데 새로 들어오는 신규 해녀는 고작 한해 30여 명뿐이다. 이대로 가다간 10년 뒤엔 저 사진 속 웃음을 정말 박물관에서나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필자는 제주해녀문화의 유네스코 등재 10주년을 맞아 딱 두 가지 제안을 하려 한다.
첫째는 '외국인 전용 해녀학교'를 만들자는 것이다. 해녀수가 줄어든다고 한탄만 하지 말고, 눈을 세계로 돌려보자. 지금 세계는 'K-컬처'에 푹 빠져있다. 외국인들이 한국문화, 전통문화에 관한 관심이 지대하다. 실제로 파란 눈의 외국인들이 제주 바다에 와서 물질을 배우고 싶어 하고, 물질을 배우는 이들도 있다. 그들을 "혼저 오라(어서 오라)" 하고 받아주자. 단순히 며칠 체험하고 떠나는 일회성 관광 상품을 넘어, 일정 기간 체류하며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정식 해녀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둘째는 '가문해녀 인증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저 사진 속 가문해녀들처럼, 3대 4대를 이어 물질하는 집안, 가족끼리 바다를 지키는 집안은 도 차원에서 '가문해녀 명가'로 확실히 인정해 주어야 한다. 무형문화재 보유자를 인정하듯, 대를 이어 바다를 지키는 가문에 대해 도지사가 인증패를 수여하고, 가문해녀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10년 후를 걱정해야 할 만큼 사라져가는 제주해녀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는 중차대한 문제다.
해녀들이 늘 하는 말이 있지 않나. "물속에선 절대 욕심내지 마라", "딱 너의 숨만큼만 따와라"라고. 바다에서는 욕심을 비우는 게 사는 법이라 배웠다. 뭍에 올라와선 불턱 안에서 서로 차가운 손을 잡으며 온기를 채웠다. 올해 프랑스 파리 전시에서 보여줄 가문해녀의 이야기, 특히 세 명의 사돈 이야기는 제주해녀문화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한 '채움'과 '이음'의 증거다. 핏줄로, 혹은 결혼으로 맺어진 인연들이 바다라는 거대한 자연 앞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만들어낸 사랑의 연대기이다.
'제주해녀문화'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10주년인 2026년. 이제 우리는 '가족 안에서' 해녀문화를 이어가고 있는 그들을 특별히 주목하여 '제주가문해녀(濟州家門海女)'라고 불러야 한다. 세대를 잇고, 사돈을 잇고, 이제는 세계를 잇는 거대한 끈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가문해녀라는 튼튼한 뿌리 위에, 제주해녀문화의 세계화라는 새로운 가지가 뻗어나가길 소망한다. 사돈끼리 손잡고 바다로 들어가는 저 기적 같은 풍경이, 100년 뒤에도 제주의 바다에서 계속 펼쳐지길…. 다큐멘타리 사진가 양종훈이 간절한 염원하는 바이다. / 양종훈 사진가·상명대학교 석좌교수

'사진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은 사진가' 양종훈 상명대 석좌교수(디지털이미지학과). 그는 자연과 인간을 오랫동안 기록해온 다큐멘터리 사진가다. 중학생 시절 고향인 제주를 떠나 상경, 중앙대 사진학과를 거쳐 미국 오하이오대(석사), 호주 RMIT대(박사)에서 디지털이미지 분야를 수학했다. 그동안 소아암 환자를 기록한 《소희야》를 시작으로, 아프리카 스와질란드(現 에스와티니)의 에이즈 실상과 김혜심 교무의 헌신을 알린 《블랙마더 김혜심》, 21세기 첫 독립국가인 동티모르 국민들의 삶을 전한 《동티모르에 축복을(God Bless East Timor)》, 엄홍길 대장과 동행한 극한의 기록 《히말라야로 가는 길》, 제주해녀문화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초석을 다진 《제주해녀사진특별전》 등 30여 년간 현장 중심의 다양한 출판·전시를 통해 기록의 가치를 확장해왔다. <이명동 사진상> 등 국내외에서 권위 있는 다수의 수상 이력이 있다. 한국사진학회장을 세차례 역임했고, 현재 사단법인 제주해녀문화협회 이사장과 상명대 석좌교수를 맡고 있다. 학계와 현장을 넘나드는 그의 걸음은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겨왔다. 앞으로도 제주의 바람과 파도를 따라 '사진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기록자'로 살고 싶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