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사업자 대출로 중도금 치르고, 사무실은 전세 내주고...‘꼼수 대출’ 백태
금감원 “꼼수 대출 개인 5년간 대출 제한, 금융사·모집인 엄중 제재”

A씨는 서울 양천구 소재 아파트를 담보로 개인 사업자 대출 14억원을 받았다. 원자재 구입 대금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A씨는 이 대출금을 양천구의 또 다른 아파트 중도금 17억4000만원을 납부하는 데 활용했다. 당시 일반 가계 자격으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면 담보인정비율(LTV)이 60%에 그쳤지만, 개인 사업자 자격으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면 LTV를 80~90%까지 적용받을 수 있었던 점을 노린 것이다.
정부의 고강도 가계 대출 규제를 피해 개인 사업자 대출을 악용하는 사례가 끊이질 않고 있다. 사무실을 차리거나 사업 대금을 치르겠다고 돈을 빌려놓고는 거주용 아파트 구입 자금을 쓰는 등이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상반기 실행된 개인 사업자 대출 2만여 건부터 점검해보니, 127건의 ‘꼼수 대출’ 사례가 무더기로 적발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6·27’ 대책과 ‘10·15’ 대책으로 규제가 본격 강화된 지난해 하반기 이후 꼼수 대출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점검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22억대출받고는 절반만 쓰고 잠적
개인 사업자 자격으로 대출을 받아 거주용 아파트 매매나 임대차 자금으로 쓰는 경우는 대표적인 꼼수 대출 사례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나서 “사기죄로 형사고발하고 대출금을 회수할 수도 있다”며 “투기 이익은커녕 원금까지 손해 보실 수가 있다”고 경고했지만, 물밑에선 개인 사업자 대출 유용 사례가 끊이질 않는다.
가령 한 대출 중개업체는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버젓이 ‘신규 사업자 명의로 진행하는 담보 대출은 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며 ‘전세 퇴거 자금이나 운영 자금이 급한 분들에게 개인 사업자 대출은 필수적인 선택지’라고 광고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 사업자 대출을 받아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는 것도 엄연히 금지돼 있다.
금감원이 적발한 사례 중에는 개인 사업자 대출을 ‘쪼개기 유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업자 B씨는 운전 자금 대출로 22억1000만원을 받았다. 그중 11억6000만원은 기존에 받았던 사업자 대출을 갈아타기(상환)하는 데 썼다. 문제는 나머지 10억5000만원이었다. B씨는 이 돈을 원자재 구입 대금으로 쓰겠다고 했지만, 실제 대출을 받은 뒤로는 잠적해 버렸다.

◇사업장 차리곤 임대 내주고, 친인척에 빌려주고
개인 사업자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이들이 내세우는 대표적인 사유 중 하나는 사업장 개설이다. 프리랜서나 이커머스 전문 자영업자 등은 아파트도 사무실로 등록할 수 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예컨대 C씨는 개인 사업자 대출로 3억5000만원을 받아 양천구 소재 아파트를 구입했다. C씨는 이 아파트에서 살던 세입자가 계약 기간을 채우면 사업장으로 쓰겠다고 했지만, 실제로 기존 세입자가 빠지자 C씨는 새로운 세입자를 찾아 전세 계약을 맺었다.
이 밖에 금감원은 사업자 대출로 2억5000만원을 받아 2억1000만원을 친인척에게 다시 빌려준 사례 등 대출금을 돌려 쓰는 사례도 적발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사업 목적으로 대출을 받았다면 그 목적 외에 사용하는 모든 자금은 용도 외 유용이 되고, 법적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대출 모집인이나 금융사 창구 직원, 그들과 연계된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꼼수 대출을 성행하게 만든 주범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대출 중개업체 관계자는 “불법 업체들은 처음부터 개인 사업자 대출을 받으라고 권하진 않지만, 자금이 부족하다고 하면 슬쩍 얘기를 꺼내며 권유한다”며 “특히 고가 아파트가 몰려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온라인 업체와 모집인, 부동산 중개업자가 연결돼 대출을 꾀어내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금감원은 꼼수 대출을 받은 이들에 대해서는 대출금을 회수하고, 신용정보원에 ‘금융 질서 문란자’로 등재해 최대 5년간 신규 대출을 제한한다는 방침이다. 또 꼼수 대출에 관여한 금융사 임직원과 대출 모집인에 대해서는 강하게 제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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