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속 25㎝ 비료주입의 혁신… 농업의 미래를 바꾸는 ‘세렌디피티’[현장 진단]

2026. 3. 24.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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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역사는 정교한 설계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농업 현장에서도 이에 견줄 만한 혁신이 시작됐다.

현장에서 만난 농업인들의 반응은 무엇보다 분명하다.

땅속 25㎝라는 작은 변화가 농업의 난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됐듯, 이 기술이 전국으로 확산돼 더 많은 농업인이 혜택을 누리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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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 진단 - 이승돈 농촌진흥청장

과학의 역사는 정교한 설계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때론 예기치 못한 우연이 새로운 물줄기를 열고, 그 물줄기가 인류의 미래를 바꾸기도 한다. 1928년 알렉산더 플레밍이 연구실을 비운 사이, 우연히 날아든 푸른곰팡이가 포도상구균 배양접시를 오염시켰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오염으로 넘기지 않고, 주변 세균의 증식을 억제하는 현상에 주목했다. 이 관찰과 통찰은 인류를 감염병의 공포에서 구한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의 시초가 됐다. 위대한 발견은 치밀한 계산을 넘어, 세밀한 관찰과 끈기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이를 ‘세렌디피티(Serendipity·뜻밖의 발견)’라 부른다.

대한민국 농업 현장에서도 이에 견줄 만한 혁신이 시작됐다. 농촌진흥청 홍성창 박사가 개발한 ‘깊이 거름주기’ 기술이다. 출발은 미세먼지 저감 연구였다. 축산 분뇨 비료를 밭에 뿌릴 때 발생하는 암모니아 가스가 미세먼지의 원인이 된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홍 박사는 가스가 대기 중으로 휘발되지 않도록 비료를 땅속에 투입하는 방식을 시도했다.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가 ‘땅속 25㎝’라는 새로운 접근으로 이어진 것이다.

결과는 기대를 뛰어넘었다. 비료 성분이 공중으로 날아가지 않고 땅속에 안정적으로 유지되면서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20% 감소했다. 뜻밖의 발견은 그다음이었다. 지표면의 양분이 줄어들자 그토록 끈질기던 잡초 발생은 크게 감소했고, 작물은 더 깊이 뿌리를 내리며 튼튼하게 자랐다. 실제로 양파 생산량은 기존 방식보다 30% 이상 증가했고 마늘과 옥수수, 사료작물 등 다양한 품목에서도 유사한 성과가 확인되고 있다.

이 기술은 농업계의 해묵은 과제들을 해결하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제초제 없는 농사, 탄소중립 실현, 농가 소득 증대라는 세 가지 목표를 하나의 기술로 연결한 것이다. 현장에서 만난 농업인들의 반응은 무엇보다 분명하다. “제초제를 쓰지 않아도 잡초 걱정이 없고 수확량은 늘어나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말이 기술의 가치를 잘 보여준다. 홍 박사에게 주어진 특별승진은 현장 중심의 성과를 중시하는 우리 기관의 확고한 의지다.

하지만 플레밍의 발견이 대량생산 체계를 갖춘 뒤에야 인류를 구하는 의약품이 된 것과 같이 ‘깊이 거름주기’ 기술 역시 농가의 일상 속으로 깊이 뿌리내려야 한다. 현재 가장 중요한 과제는 전용 농기계의 확보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농기계 임대 사업’이라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 있다. 전국 시군 농업기술센터를 통해 장비를 체계적으로 보급하고, 농업인이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데 역량을 집중하겠다.

과학은 때로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을 건넨다. 땅속 25㎝라는 작은 변화가 농업의 난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됐듯, 이 기술이 전국으로 확산돼 더 많은 농업인이 혜택을 누리기를 기대한다. 농업인의 땀방울이 풍요로운 결실로 이어질 수 있도록 끝까지 함께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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