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개도국 지위 반납해야”… 美, WTO 고강도 개혁 압박
韓 지목 “개도국 특혜 포기해야”
WTO 안보 개입 거부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 등을 정조준해 세계무역기구(WTO)에 개발도상국(개도국) 지위 관련 조항들을 대폭 수정하라고 강하게 압박했다. 경제적 위상이 이미 세계적 수준으로 높아진 국가들이 개도국 특혜를 누리며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무임승차 관행에 눈감아주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23일(현지시각) 미 무역대표부(USTR)는 이날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WTO 일반이사회에 ‘WTO 개혁에 대한 추가 관점(Further Perspectives on WTO Reform)’이라는 제목을 단 문건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총 12쪽 분량인 이 문건에서 미국은 WTO 의사 결정 방식과 ‘특별·차등 대우(SDT)’, 필수 안보 예외 조항 같은 다방면에 걸쳐 고강도 개혁을 촉구했다.
특히 경제 규모가 세계적 수준으로 충분히 성장한 국가들이 스스로 개도국 지위를 계속 유지하며 국제 무역 체제에서 부당한 특혜를 챙겨가는 불균형 구조를 지적했다. SDT는 개도국을 위한 일종의 할인 혜택이다. 개도국이 국제 무역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자국 산업을 보호할 수 있도록 관세 인하 폭을 한시적으로 낮춰주거나, 합의 이행 기간을 길게 연장해 주도록 권장한다.
이번 개혁안을 보면 미국은 2019~2020년 사이 한국과 브라질·싱가포르·코스타리카가 ‘앞으로 WTO 협상에서 SDT를 포기하겠다’고 밝혔던 전례를 다시 거론했다. 그러나 이들 국가가 사실상 선진국 반열에 올랐음에도 이 혜택을 방패로 글로벌 무역 규칙 준수 의무를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한국은 지난 2019년 농업 분야 등에서 향후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대내외에 선언했다. 이후 WTO 협상에서 SDT 조항을 주장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미국은 여전히 한국 정부가 개도국 특혜에 관한 체감할 만한 변화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이런 자발적 포기 선언으로는 SDT 적용 기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보고, 회원국 전반에 적용할 객관적 기준을 새로 만들자고 주장했다.

미국은 또 무역 분쟁이 발생했을 때 회원국들이 ‘필수 안보(essential security)’ 조치를 발동할 경우 WTO가 개입하거나 권위적 해석(authoritative interpretation)을 해서는 안 된다는 강경한 입장도 명시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전쟁처럼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부과하는 고율 관세 등 자국이 취하는 무차별적인 보호무역 조치에 무한한 정당성을 부여한다. WTO 같은 외부 기구가 가하는 통제를 조금도 받지 않겠다는 의도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국과 비동맹국을 철저히 가리지 않고 무역 장벽을 높이는 현 상황에서 무역 분쟁의 최후 보루인 WTO가 가진 다자간 규범적 제재 능력마저 완전히 무력화하려는 사전 포석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이 입장을 WTO가 받아들일 경우, 첨단 반도체 등 핵심 기술 통제를 안보 논리로 정당화하는 미국 행보에 더욱 강력한 명분이 생길 수 있다.
미국이 다자주의 글로벌 무역 질서를 미국 이익에 맞춰 전면적으로 수정하라고 강하게 요구하면 수출 의존도가 절대적인 한국 경제와 핵심 산업계가 직면한 불확실성도 한층 커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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