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갈 집이 없어요”… 서울 전세 갱신 50% 돌파

지난달 서울 아파트 임대차 시장에서 기존 계약을 연장하는 ‘갱신 계약’ 비율이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매매 가격에 이어 전셋값까지 치솟자 이를 감당하지 못한 세입자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대신 현 거주지에 머무는 ‘버티기’에 들어간 영향으로 풀이된다. 신규 전세 공급이 급감한 상황에서 갱신 계약이 늘어나자 전세 매물이 사라지고, 결국 가격이 뛰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24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전월세 계약 1만7183건 중 전세 계약은 9046건으로 집계됐다. 이 중 전세 갱신 계약은 4761건으로 전세 계약의 52.6%를 기록했다. 전월세 계약 유형이 별도로 집계되기 시작한 2022년 이후 월별 갱신 비율이 50%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원구에서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한 공인중개사는 “집주인들이 보증금을 수천만씩 올려 달라고 해도 세입자 입장에서는 이사 비용이나 치솟은 신규 전셋값을 감당하느니 차라리 눌러앉는 것을 선택해 시장에 물건이 돌지 않는 상황”이라고 했다.
◇10·15규제 이후 가팔라진 갱신율
상승세를 이어오던 전세 갱신 계약 비율은 지난해 10·15 부동산 규제 이후 급등했다. 지난해 11월 42.8%였던 갱신율은 12월 46.9%, 올해 1월 48.2%로 가파르게 상승하다 결국 2월 들어 50% 선을 돌파했다. 이는 서울 전역과 경기 일부 지역의 갭투자(전세 낀 매매)가 막히면서 신규 전세 공급원이 차단되자, 불안함을 느낀 임차인들이 곧바로 갱신 계약에 나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임대료 상승 폭을 5% 이내로 제한할 수 있는 ‘계약 갱신 요구권’ 사용 비율은 오히려 줄었다는 점이다. 지난달 전세 갱신 계약 중 요구권을 활용한 비율은 51.3%로 전월(57.6%) 대비 6%포인트 이상 감소했다. 이는 이미 계약갱신요구권을 한 차례 사용한 세입자들이 시세에 맞춰 보증금을 올려주고 추가로 2년을 더 거주하는 것을 택하는 사례가 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입자들이 이동을 포기하면서 시장에 나오는 전세 매물은 급격히 줄고 있다. 올해 초 2만3060건이었던 서울 전세 매물은 현재 1만6880건으로 두 달 새 26.8%나 줄었다. 전세 매물 부족 현상은 강남권보다 ‘노·도·강(노원·도봉·강북)’ 등 서울 외곽 지역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올해 초 대비 노원구의 전세 매물 감소율은 65.4%에 달해 송파구(25.7%)나 강남구(17.9%)보다 최대 3배 이상 높은 수치를 보였다.
실제로 성북구 길음동부센트레빌(1377가구)처럼 규모가 큰 단지에서도 전세 매물이 단 한 건도 나오지 않는 ‘매물 잠김’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격 상승세도 외곽 지역이 주도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3월 3주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지자체별 전셋값 변동률은 관악구(0.32%)를 비롯해 도봉구(0.31%), 구로구(0.27%), 성북구(0.22%) 등이 서울 평균치(0.13%)를 크게 웃돌며 전체 가격 상승을 이끌었다.
◇’전세 벼랑’에 몰린 신혼부부·사회 초년생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전형적인 ‘규제의 역설’로 진단한다. 실수요자를 보호하겠다는 각종 규제가 오히려 전셋값 공급 통로를 막아버리는 병목 현상을 낳았다는 것이다. 전셋값이 갱신 계약 위주로 재편되면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신규 임차인들이다. 신혼부부나 사회 초년생들은 서울에서 전셋집 구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전세의 대안인 월세 매물마저 올해 초 대비 27%가량 줄어들었다.
전세 매물은 앞으로도 감소세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향후 보유세 인상 등 세제 개편안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임대인들이 실거주를 선택해 전세 매물을 거둬들이고, 높아진 세금 부담을 월세 형식으로 임차인에게 전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규제 중심의 정책이 지속될 경우, 신규 전세 가격이 폭등하며 임대차 시장의 혼란은 더욱 가중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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