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세계 10위권 국력에 걸맞은 안보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최근 몇 년간 나타난 미국의 강한 국익 우선주의는 이러한 흐름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정치 지도자의 성향과 국내 정치 환경에 따라 동맹 정책 역시 크게 흔들리고 있다. 동맹국의 안보 요구보다 미국의 전략적 필요가 우선되는 사례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중동 위기가 고조되는 과정에서 한국에 배치된 미군의 방공 자산인 사드(THAAD)와 패트리엇 일부가 한국과 충분한 협의 없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사례는 동맹 구조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지나치게 높은 대미 의존 구조에 머무르는 것은 장기적으로 전략적 위험이 될 수 있다.
여기에 미·중 패권 경쟁까지 겹치면서 국제질서는 사실상 새로운 냉전 구조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중국은 경제력과 군사력을 동시에 확대하며 지역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고, 미국은 이를 견제하기 위해 동맹과 파트너십을 재정비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은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으며, 많은 국가들이 특정 진영에 완전히 편입되기보다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한국 역시 이러한 변화 속에서 외교와 안보 전략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한국 외교는 흔히 ‘안미경중(安美經中)’이라는 틀 속에서 운영되어 왔다.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경제는 중국과 협력한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세계 10위권의 경제력과 첨단 산업 기반을 갖춘 국가로 성장한 지금, 단순히 강대국 사이에서 눈치를 보는 전략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제는 한국의 국력에 걸맞은 능동적 외교와 전략적 자율성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특히 최근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한국 방위산업의 경쟁력은 새로운 외교 자산이 될 수 있다. K-2 전차, K-9 자주포, FA-50 경전투기, 장보고-III 잠수함 등 한국 무기체계는 성능 대비 가격 경쟁력이 뛰어나 많은 국가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방산 협력은 단순한 무기 판매를 넘어 산업 협력, 기술 협력, 전략적 파트너십으로 확장될 수 있다. 즉 방산 외교를 기반으로 경제 외교와 전략 협력을 동시에 확대하는 실리적 안보 외교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안보 정책의 접근 방식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 안보는 의지나 구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와 시스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강경한 수사나 상징적 조치만으로는 오늘날의 복합적 위협 환경을 관리할 수 없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은 계속 고도화되고 있으며, 사이버 공격과 정보전은 이미 일상적인 위협이 되었다. 여기에 우주 영역과 전자전, 드론 전쟁 등 새로운 전쟁 양상이 등장하면서 안보 환경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따라서 실용주의 안보 전략의 출발점은 철저한 위협 평가다. 어떤 위협이 가장 직접적인지, 어떤 위협이 장기적으로 구조화될 가능성이 있는지를 데이터와 분석을 통해 판단해야 한다. 위협의 강도, 발생 가능성, 그리고 파급 효과를 종합적으로 평가한 뒤 전략적 우선순위를 설정해야 한다.
다음 단계는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다. 안보 예산은 무한하지 않다. 상징적 전력 확대보다 실제 억제 효과가 높은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사일 방어 체계, 감시정찰 능력, 사이버 방어, 우주 기반 정보체계와 같은 영역은 데이터 기반 분석을 통해 지속적으로 보완되어야 한다. 결국 안보 정책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분석과 증거에 기반한 전략적 투자가 되어야 한다.
실용주의 안보는 선언보다 실행을 중시한다. 전략 문서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조직 구조와 예산, 교육훈련 체계까지 함께 바꾸어야 한다. 감정적 대응은 순간적인 만족을 줄 수 있지만, 장기적인 안정은 체계적 준비에서 나온다. 실용주의 안보는 ‘강경’과 ‘유화’라는 단순한 이분법을 넘어선다. 오직 국가의 안전과 효과라는 기준으로 판단하는 접근이다.
세계 질서는 지금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필요한 것은 감정과 의리가 아니라 냉정한 데이터와 전략이다. 한국이 세계 10위권 국력에 걸맞은 국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동맹을 존중하되 의존하지 않고, 국익을 중심으로 전략을 설계하는 현실주의적 안보 전략이 필요하다. 그것이야말로 불확실한 국제 질서 속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키는 길이다.
김관용 (kky1441@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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