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적이 없는 챔피언" 김효주, 우승보다 더 빛나는 '사람의 힘'
- 아버지와 스승이 만든 ‘감사 겸손의 골프’
- 천재성에 성실. 유머와 진심.


김효주(31·롯데)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포티넷 파운더스컵에서 우승했습니다. 이번 우승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인간 김효주'에 대한 찬사가 새롭게 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1라운드부터 줄곧 선두를 지킨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이었지만 마지막 날 1오버파를 치며 추격을 허용했지만 결국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지난해 3월 포드 챔피언십 이후 1년 만에 LPGA투어 통산 8번째 우승입니다. 우승 상금은 45만 달러(약 6억7000만 원)에 이릅니다. 시즌 초반이긴 해도 상금 랭킹 선두에 나섰습니다.
시상식 모습을 보니 김효주 특유의 장난기가 발동한 것 같았습니다. 클럽을 휘두르는 골퍼 모습을 형상화한 트로피를 따라 스윙하더군요. 이런 유머러스한 면모는 김효주의 가장 큰 장점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김효주는 뛰어난 유머 감각과 재치 있는 발언으로 동료 선후배, 팬들 사이에 친화력 높은 선수로 유명합니다.
주니어 시절부터 극심한 경쟁에 시달리는 한국 여자골프에서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정도를 뛰어넘는다는 말까지 있습니다. 남의 불행이 자기 행복이 될 때도 있습니다. 이런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김효주는 별종으로 불릴 만합니다. '김효주를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김효주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라는 평판을 듣기 때문입니다. 선배와 후배, 동료와 지도자 등 한목소리로 김효주의 '사람됨'을 이야기합니다. 김효주를 중학교 시절부터 취재한 필자 역시 주위에서 김효주에 대한 사소한 험담조차 들은 적이 없습니다.

'소년등과일불행(少年登科一不幸)'이란 고사가 있습니다. 너무 이른 나이에 출세하면 자만과 배움의 부족을 초래해 인생의 발전을 저해하고 결국 파멸에 이를 수 있다는 경계의 메시지입니다. 중고 시절 일찌감치 천재 골프 소녀라는 칭송을 들은 김효주는 달랐습니다. 늘 겸손하고 인사성 바른 10대였을 뿐입니다. 거기에 늘 미소가 떠나지 않았으니.
오랜 세월 주니어 골프 유망주를 관리한 장세훈 대한골프협회 경기력향상위원장은 김효주 이런 면모의 배경으로 아버지와 지도자를 꼽았습니다. "김효주 선수는 어려서부터 한연희 전 국가대표 감독이 줄곧 지도하고 있다. 김효주 선수 아버님은 김효주 선수가 국가대표 때부터 훈련 때마다 동료 선수까지 음식을 해먹일 정도로 잘 챙기셨다. 이런 성장 과정을 거쳐 운동선수 김효주의 입지가 올바르게 다져졌다."
김효주 아버지 김창호 씨는 오랜 세월 건설 현장을 돌아다니며 식당 일을 하면서도 딸 뒷바라지에 정성을 다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키가 170cm로 작았기에 골프 선수 딸 만큼은 키가 크기를 바라는 마음에 무조건 잘 먹였다고 합니다. "한 끼에 스테이크를 몇 장씩 구워줬고, 자연산 미꾸라지를 잡아 끓여 줬다"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납니다.

골프를 잘 몰랐던 아버지는 여느 골프 대디처럼 기술적인 레슨을 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대신 정신자세를 강조했습니다. 감정 조절의 중요성을 가르쳤고, 성과가 안 좋다고 남의 탓을 할 때는 따끔하게 혼을 냈습니다.
김효주가 아버지에게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은 단어는 바로 '감사'입니다. "골프장 직원, 캐디, 갤러리에게 늘 감사해야 한다. 우리를 위해 고생하는 분들이 많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골프 기술은 지도자에게 맡기되, 태도와 인성만큼은 가정에서 다져야 한다는 원칙이었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아버지의 말은 김효주의 골프 인생을 관통하는 기준이 됐습니다.
이 같은 교육은 자연스럽게 필드 위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김효주는 경기 중 감정 기복이 거의 없는 선수로 꼽힙니다. 실수가 나와도 과하게 드러내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플레이에 집중합니다. 이는 단순한 멘털 관리가 아니라 주변을 배려하는 태도와 맞닿아 있습니다.

한연희 감독은 "김효주는 천재성을 지녔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고 늘 겸손하게 연습에 나서는 스타일"이라고 말했습니다. 한 감독은 특별한 기념일이나 연말에는 김효주를 비롯한 제자들을 모아 회식을 합니다. 이 자리에는 한 감독을 비롯한 선수, 지인 가족들까지 모두 모여 대식구 같은 분위기를 만듭니다. 이런 모임을 통해 선수들은 서로 정을 쌓고 애환을 들으며 자신을 내려놓는 습성을 쌓게 됩니다.
김효주의 소속사 지애드 서승범 이사는 "예민하지 않고 시원시원한 성격에 귀여운 이미지까지 더해진 '테토 매력'이 있다"라며 "천재급 샷 능력까지 갖춰 골프 만화가 있다면 주인공으로 딱 맞는 캐릭터다. 유머러스하고 위아래 지인들과도 매우 잘 지낸다"라고 전했습니다. 실력과 인간적인 매력이 동시에 어필되는 보기 드문 유형이라는 얘기입니다.
강형모 대한골프협회 회장과 오랜 스승 한연희 감독은 약속이나 한 듯 한마디로 "착하다"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화려한 수식어 대신 본질을 짚은 평가입니다. 오랜 시간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들이 내린 결론이라는 점에서 더욱 설득력이 커 보입니다.
김재열 SBS 해설위원은 "선천적으로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김효주라서 다들 좋아합니다. 인사성 밝고 만나서 이야기하면 좋은 기운을 주는 사람이라 다들 좋아하는 게 아닐까요"라며 흐뭇해했습니다.


김효주는 팬들에게 사인을 요청받으면 성의 있게 응하고, 특히 어린이 팬에게는 눈높이를 맞춰 다가갑니다. 그의 팬클럽 '슈팅스타' 회원들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열띤 성원을 보내고 있습니다. 동료 선수의 우승이 확정되면 누구보다 먼저 축하를 건네고, 경쟁 상황에서도 상대를 존중합니다. 골프장 직원과 운영요원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모습 역시 자연스럽습니다.
KLPGA투어에서 어느새 노장 소리를 듣는 이정민은 초등학교 때부터 세살 밑인 김효주를 동생처럼 특별히 챙겼습니다. 이정민은 "효주와는 대원외고에 입학했을 때 교복을 물려줬을 만큼 가깝다. 고교에 이어 대학(고려대)도 후배인데 국내에 있을 때는 모임도 자주 갖는다. 효주는 늘 인기가 많다"라고 전했습니다.
김효주는 3월 초 LPGA투어 대회에 출전하지 않고 동갑내기 고진영의 결혼식에서 축사했습니다. 어려서부터 동고동락한 맞수자 친구의 앞날을 축하하기 위해 기꺼이 일정을 조정한 겁니다.


같은 한연희 감독의 제자로 김효주와 친남매처럼 지내는 한국 남자골프의 간판 박상현은 "원체 똑똑한 동생이다. 기본적으로 타고난 감각에 머리도 뛰어나다. 낯선 환경, 골프장 등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나 부러울 정도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극대화하는 반면 할 수 없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래서 늘 유쾌하고 긍정적인 것 같다"라고 전했습니다.
김효주의 아버지 김창호 씨는 강원골프협회 회장에 올랐지만, 그저 봉사하는 자리라고 말할 뿐입니다. 아버지는 강원도 원주 오크밸리 골프장 부근에 대형 음식점과 베이커리 카페를 차렸습니다. 이 근방에서 골프대회가 열리면 "효주네 팔아줘야 한다"라며 몰려든 골프 관계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김효주는 한번 맺은 인연을 오랜 세월 지키고 있습니다. 메인 스폰서인 롯데, 용품 후원사인 요넥스 등과는 10년 넘게 계약을 유지하고 있으며 소속사인 지애드스포츠(대표 강영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소한 이해득실에도 수시로 소속을 바꾸는 일부 선수와도 사뭇 다릅니다.

고교 시절 프로대회에서 우승한 김효주도 어느새 30을 훌쩍 넘겼습니다. 서른을 넘어서도 여전히 정상의 자리를 지키는 그는 더욱 특별해 보입니다. 기술과 기록뿐 아니라 태도와 인성이 만들어 낸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멘털,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이 결국 경기력으로 이어졌습니다. 진지와 가벼움을 넘나드는 반전 매력의 소유자입니다.
프로 스포츠는 숫자로 평가받습니다. 그러나 김효주는 그 너머를 증명해 왔습니다. 좋은 사람이 좋은 선수로 이어진다는 사실. 그래서 그의 이름 앞에는 늘 같은 수식어가 붙습니다. '우승자' 이전에 '모두가 좋아하는 선수'. 어쩌면 그것이 김효주가 쌓아온 가장 값진 기록 아닐까요.

김종석 채널에이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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