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사 인권 위험 평가한다던···안전공업의 원청 현대차 책임은 없나

강한들 기자 2026. 3. 24.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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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법은 계류 중
14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대전 안전공업 화재 참사 현장에서 23일 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원, 고용노동부 등 관계자들이 합동 감식을 진행하고 있다. 대전|문재원 기자

74명의 사상자를 낸 대전 자동차 부품업체 ‘안전공업’ 화재 확산의 원인 중 하나로 ‘공장 환경 관리 부실’ 등이 지적되면서 원청인 현대차그룹의 책임도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3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현대자동차가 지난해 6월 낸 ‘2025 현대자동차 지속가능성 보고서’에서 현대차는 협력사 1494곳에 대한 ‘인권 위험 평가’를 한 뒤, 이 중 19곳에 대해 위험 사항을 발견해 개선을 마쳤다고 밝혔다. 문제가 있었지만 개선했다는 취지다. 현대차는 협력사가 안전·보건을 어떻게 확보하고 있는지, 노동 조건과 환경은 어떤지 등을 인권 위험 진단 지표로 쓰고 있다. 협력사의 문제를 사전에 예측하고, 서면으로 우선 진단한 뒤 잠재적 위험을 현장 실사를 통해 확인한다고 한다.

참사가 벌어진 안전공업은 현대차의 1차 협력업체다. 현대차그룹의 ‘협력사 행동규범’에는 “사업장 내 유해한 설비 등에 대한 안전성을 점검·평가하고 사고를 예방하는 조치를 해야 한다”는 등 내용이 담겼다. 또 “행동 규범을 따르는지 점검과 실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현대차그룹은 위험에 대한 개선을 권고할 수 있고, 협력사는 상호 협의를 바탕으로 위험 완화 계획 수립 및 이행조치를 수행하게 된다”고도 밝혔다.

하지만 이 평가·규범과 달리 안전공업 공장에서 노동자의 건강과 화재 등 문제가 생길 수 있는 환경이 오래 유지됐다는 증언이 다수 나왔다. 전날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안전공업에 대해 특수진단을 했던 의사들과 과거 안전공업 종사자들은 화재 위험과 열악한 환경을 오래전부터 지적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기름증기가 자욱한 환경에서 오래 일하는 노동자에게 건강상 악영향이 있을 수 있고, 이런 환경이 불이 났을 때는 화재 대형화의 원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사측이 환경 개선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안전공업 노조의 주장도 있었다.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 원칙’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등 국제 기준은 현대차와 같은 다국적 기업이 1차 협력업체 등의 잠재적 인권 문제를 파악해 부정적 영향을 줄이도록 하는 정책을 마련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기업의 책무를 구체화할 국내 법은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태다. 국회 재정경제위에는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6월 대표 발의한 ‘기업의 지속가능 경영을 위한 인권·환경 보호에 관한 법률안’과 같은 해 11월 박홍배 민주당 의원이 제출한 관련 법률안이 계류돼 있다. 이 두 법은 기업이 인권 존중 책임을 실현하기 위해 인권·환경 실사 계획을 수립해 이사회에 보고하고 승인을 받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업의 인권 영향 평가 규정도 정하고 있다. 김두나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기업과인권네트워크 소속)는 “법 제정이 늦어지는 동안 원청 기업의 인권존중 책임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이 미뤄지고 있다”며 “법 제정을 서둘러 노동자 인권·안전 침해에 대한 적극적인 예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대재해 예방과 안전권 실현을 위한 학자 전문가 네트워크(공동대표 김현주 이화여대 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안전관리학과 교수)는 이날 성명을 내고 “원청이 협력업체에 품질·납기·원가 등에 강한 통제를 유지하면서 안전에 대한 책임을 협력업체에 전가한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현대차에 ‘인권 위험 평가 당시 안전공업에 대해 어떻게 평가됐고, 어떤 조치가 있었는지’ 등을 물었으나 이날까지 답하지 않았다.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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