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회계법인서 잇단 사망 왜···회사는 AI 핑계, 극한 과로 내몰리는 회계사들

김남희·김송이·김원진 기자 2026. 3. 24. 06:0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AI가 제역할 못해서? AI로 채용 줄여서?
연이은 사망에 동료들 “그것만은 아닌데…”
AI 정보 재검증하느라 되레 업무 늘어
“내년 감사 시즌엔 다 쓰러질 듯”
회계사. AI생성 이미지

“실체도 없는 인공지능(AI) 때문에 사람 죽어나가는 거예요. 경영진은 유명무실한 AI 써서 추가 채용도 없고, 오히려 인원 투입 줄이라고 압박이나 넣는 상황입니다.”

23일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를 보면, 최근 ‘빅4 회계법인’ 중 하나인 삼정KPMG에서 30대 회계사 두 명이 지난해 연말과 올해 초 연이어 숨진 이후 일부 동료 회계사들은 AI 도입 문제를 언급했다. AI가 업무의 상당 부분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과 아직 초기 단계인 기술 수준의 미스매치가 맞물리고 회계업계의 과도한 경쟁과 업무강도까지 겹친 사고로 풀이된다. AI 도입이 본격화하면 회계업계 외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타날 수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

회계업계는 여러 업종 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으로 AI를 도입해 생산성 향상을 시도하는 분야다. AI 도입을 이유로 수습 회계사 채용을 줄였다는 분석도 나왔다. 기자가 만난 현직 회계사 7명은 “AI 도입이 확대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아직 업무를 대체할 수준은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AI 도입 효과는 아직 “미미한데…”

최근 대형 회계법인들은 앞다퉈 AI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AI 감사 에이전트 도입을 준비하고 전담 조직을 꾸리는 등 감사·세무·컨설팅 전반에 AI를 접목하려 한다. 생산성을 향상하겠다는 취지가 담겼지만 현장에선 “효과가 제한적이라 업무 경감이 도움이 안 된다”고 했다.

감사 업무 특성상 보안 문제로 유명 생성형 AI 활용이 어렵고, 회계법인의 자체 AI는 아직 기술수준이 낮다는 데 회계사들의 의견이 모였다. 대형 회계법인의 10년차 회계사 A씨는 “같은 항목의 숫자여도 재무제표의 앞부분과 뒷부분에 들어가는 수치가 다를 때가 있는데, 인간은 맥락을 통해 그 이유를 설명해준다”며 “여전히 AI가 판단이 필요한 부분은 인간을 대체하지 못한다”고 했다. 5년차 회계사 이모씨도 “보안 때문에 시중 AI를 자유롭게 쓸 수 없고 데이터 업로드가 막혀 있어 실질적으로 도움이 거의 안 된다. 리서치 수준을 넘어서기 어렵다”고 했다.

AI 활용이 오히려 업무 부담을 늘리는 측면이 있다고도 했다. 8년차 회계사 김모씨는 “회사에서 AI 활용을 권장하지만 오류와 할루시네이션(허위 정보 생성) 때문에 사람이 다시 검토해야 해 오히려 부담된다”고 말했다. 대구의 한 세무회계법인 대표 B씨는 “민감한 정보가 많아 사용이 조심스럽고 결국 사람이 다시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대형회계법인들은 AI를 전제로 한 조직 축소를 시도하고 있다. 7년차 회계사 박모씨는 “과거엔 매니저 아래 여러 스텝이 붙는 구조였다면, 이젠 프로젝트 매니저와 막내만 두고 중간 인력을 줄이려 한다”며 “중간층의 업무는 AI로 대체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이라고 했다.

AI 때문에 채용 줄인다는 건 착시?

회계사 과로사 논란이 불거지면서 AI 도입과 함께 얼어붙은 회계사 채용 시장이 주목받았다. 신규 채용이 줄어들면서 기존 인력에 일이 몰렸다는 의혹이 따라 붙었기 때문이다.

한국공인회계사회의 수습 취업 현황을 살펴보면, 2021~2022년에는 미취업 인원이 한 자릿수에 그쳤지만 2024년 114명으로 급증했다. 2025년 10월 기준 1200명 합격자 중 862명(72%)이 수습처를 찾지 못했다.

대형 회계법인에선 수습 회계사는 줄어들지만 등록 회계사는 늘어나는 현상도 확인된다. AI 도입 등에 대비해 숙련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신규 채용이 위축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삼정KPMG의 수습 회계사 수는 2023년 6월 기준 375명에서 2025년 6월 268명까지 줄었다. 같은 기간 삼정KPMG의 등록 회계사 수는 1750명에서 2095명으로 늘었다. 삼일회계법인도 같은 기간 수습 회계사는 334명에서 260명으로 감소했는데, 등록 회계사는 3979명에서 4263명으로 증가했다.

회계법인들이 채용에 소극적이게 된 배경에는 AI로 대체될 업무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과 동시에 업계의 경기 둔화 등이 모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과로는 구조적 문제”

회계업계의 채용 규모가 축소되면서 5~15년차 회계사들 사이에선 “내년엔 다 죽겠다”는 말까지 공공연하게 돈다. AI 도입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이고, 업무 강도가 집중적으로 높아지는 업계의 ‘시즌’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회계업계에서 매해 1~3월은 감사가 집중되며 업무 강도가 세진다. 4년차 회계사 C씨는 “매년 2월에 새벽 3~4시까지 일하고, 3월부터는 하루에 2시간씩 자면서 일한다”며 “AI가 엑셀 정리나 문장 작성 같은 기술적인 부분에는 도움이 되지만, (인간의) 판단이 필요한 영역이 많아 실제 업무가 줄었다고 느끼진 않는다. 야근은 지난해랑 똑같다”고 말했다.

회계사들은 경기 침체와 함께 회계 제도에 따른 저가 수임 경쟁도 무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5년차 회계사 이모씨는 “저가 수임 경쟁이 심해지면서 전에는 100개를 수임해서 벌었던 금액을 이제는 130개씩은 해야하니 업무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회계사 A씨는 “회사는 저가 수임 구조 속에서 인건비를 줄이려 AI 도입을 더 강화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남희 기자 nami@kyunghyang.com,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