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현대 누가 잡나” 기업 코인 거래 앞두고 업비트·빗썸 법인영업 쟁탈전

지난해 초부터 “삼성전자·현대자동차도 비트코인 투자 가능해진다”는 기대가 시장을 달궜지만 정작 법인의 가상자산 거래는 아직 열리지 않았다. 상장사와 투자회사까지 참여하는 2단계 시행이 지연되면서 시장은 여전히 비영리법인 등의 코인 매도만 가능한 1단계 상태에 머물러 있다.
시장의 기대와 달리 제도는 멈춰 선 사이 업비트와 빗썸 등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기업 고객 선점 경쟁에 먼저 불을 붙였다. 개인 중심으로 굳어진 시장 판도가 뒤바뀔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2단계 개방은 언제 되나
국내에서는 원래 회사가 코인을 사고파는 것이 거의 금지돼 있었다. 2017년 정부가 “회사까지 코인 거래를 하면 돈세탁이나 투기 과열이 심해질 수 있다”고 판단해 강하게 막았다. 법에 법인 계좌 개설을 직접 금지하는 조항은 없지만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신중한 취급을 요구하면서 실제로는 거래소 실명계좌 발급이 어려운 구조가 이어져 왔다.
국내 기업들은 가상자산 거래소를 통해 코인을 사고파는 대신 개인이나 다른 업체를 직접 찾아 거래하는 ‘장외거래(OTC)’ 방식으로 제한적으로 코인을 사들여 왔다. 다만 최근 들어 상황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2024년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시행되며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 데다 국내 기업들의 가상자산 관련 신사업 수요가 계속 늘고 있다. 해외 주요국에서는 이미 법인의 가상자산 거래가 폭넓게 허용되면서 국내에서도 관련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분위기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2월 ‘법인의 가상자산 시장 참여 로드맵’을 통해 기업의 코인 거래를 단계적으로 허용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현재는 1단계만 시행된 상태다. 검찰·국세청 등 법집행기관과 대학·기부단체 같은 비영리법인, 그리고 가상자산 거래소에 한해 코인을 현금으로 바꾸는 ‘매도’만 허용돼 있다. 쉽게 말해 법인이 코인을 새로 사는 것은 불가능하고 이미 보유한 코인을 파는 것만 가능한 상황이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2단계가 시행돼 상장사와 투자회사도 코인을 사고팔 수 있어야 했다. 대상은 금융회사를 제외한 약 2500개 상장사와 전문투자자로 등록된 약 1000개 법인 등 총 3500여 개다. 하지만 디지털자산기본법 등 관련 입법이 지연되고 각종 가상자산 사건·사고에 대한 관계 기관 논의가 이어지면서 이들 법인의 거래 허용은 아직 논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최근 업계 한편에선 “곧 2단계가 시작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3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디지털자산 법인 시장 개방과 신뢰 인프라 구축 과제 학술 콘퍼런스’에 참석한 홍재선 금융위원회 사무관은 “법인 참여를 빠르게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다만 정확한 시점은 제시하지 않았다.

◆분주한 거래소
제도가 지지부진한 상황이지만 업비트와 빗썸 등 주요 거래소들은 법인 시장 개방에 대비해 물밑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기업 자금은 개인보다 규모가 크고 투자 기간도 길어 시장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다.
업비트가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현재까지 업비트에서 고객확인(KYC)을 마친 법인 고객은 약 265곳이다. 지난해 8월 100곳을 돌파한데 이어 11월 160곳, 이후 3개월 만에 100곳 이상이 늘었다. 업비트는 제휴 은행인 케이뱅크와 협력해 법인 고객을 더 늘릴 계획이다.
지난해 12월엔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한 설명회를 열고 법인 전용 서비스 ‘업비트 비즈’도 선보였다. 기업들이 가상자산을 거래하고 보관·관리할 수 있는 전용 창구다.
업비트는 ‘보안’을 핵심 경쟁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대규모 자산을 다루는 법인 특성을 고려해 인터넷과 분리된 ‘콜드월렛’ 방식으로 자산을 보관하고 고객별 자산을 분리 관리하는 커스터디(수탁)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법인 투자 관련 가이드라인이 나오면 즉시 대응할 수 있도록 여러 기업과 계약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빗썸도 법인 고객 확보에 속도를 내며 바짝 추격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약 100곳 수준이던 법인 고객은 올해 2월 기준 약 200곳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빗썸은 기업마다 투자 목적과 상황이 다른 점을 고려해 맞춤형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전담 직원이 각 기업을 맡아 계좌 개설부터 투자 방법까지 일대일로 상담해주는 방식이다. KB국민은행과의 제휴를 바탕으로 담당자가 직접 기업을 찾아가 가입을 돕는 ‘밀착 지원’도 차별화 포인트로 내세우고 있다.
또 대규모 자금을 한 번에 거래할 때 가격이 크게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한 기능도 강화했다. ‘시간분할주문(TWAP)’은 큰 금액의 주문을 여러 번에 나눠 자동으로 거래하는 방식이다. 최종 체결 가격이 해당 기간의 평균 가격에 근접하도록 설계돼 대규모 거래시 가격 변동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 빗썸은 이 같은 서비스를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과 PC, 웹까지 확대 적용하며 법인 투자 수요에 대비하고 있다. 지난해 10월엔 업계에서 가장 빨리 법인 고객 대상 콘퍼런스를 열어 기업들과의 접점도 넓혔다.
빗썸 관계자는 “제도 정비에 맞춰 법인 고객을 위한 서비스와 시스템을 계속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코인원도 뒤처지지 않기 위해 법인 시장 공략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12월 법인 고객 전용 서비스 ‘코인원 BIZ’를 선보이며 본격적인 사전 유치에 나선 것이다.
코인원 BIZ는 기업들이 쉽게 가입하고 거래를 시작할 수 있도록 만든 전용 창구다. 계좌 개설부터 거래 방법까지 필요한 정보를 한 번에 제공한다.
코인원은 ‘자산을 나눠 관리할 수 있는 기능’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기업이 투자 목적에 따라 돈을 따로 나눠 관리할 수 있도록 한 기능이다. 또 수수료도 낮췄다. 자동 거래(API) 이용 고객에게는 업계 최저 수준인 0.02% 수수료를 적용하고 전담 매니저를 통해 거래 보고서 발급, 기관용 지갑 관리 등도 지원한다.
코빗은 지난해 7월 ‘코빗 비즈’를 출시했다. 신한은행과의 협업을 바탕으로 내부통제와 보안을 강화한 법인 전용 서비스다. 관리자와 사용자 계정을 분리해 자금 이동 권한을 제한하는 등 안정성 확보에 초점을 맞췄다.
또 자산을 예치한 상태에서도 운용이 가능한 ‘자유형 스테이킹’ 서비스를 준비하며 법인의 자산 운용 효율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스테이킹은 가상자산을 예치해 보상을 받는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코인을 맡긴 동안 팔거나 옮길 수 없게 묶인다.
여기에 미래에셋그룹이라는 ‘우군’도 변수로 꼽힌다. 최근 미래에셋그룹은 코빗 지분 90% 이상을 확보하기로 하고 금융당국에 대주주 변경을 신청한 상태다. 인수가 마무리될 경우 코빗은 대형 금융그룹을 기반으로 한 기관형 거래소로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법인 시장이 승부처?
업계에서는 법인 시장이 열릴 경우 거래소 판도가 바뀔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현재 개인투자자 중심으로 형성된 시장에서 업비트가 높은 점유율로 1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향후 기업 자금이 유입될 경우 경쟁 구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업비트의 독주가 조금씩 흔들리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가상자산 통계사이트 코인게코에 따르면 지난 3월 19일 기준 업비트의 거래대금 점유율은 약 68%로 여전히 1위지만 지난해 상반기(70%대)와 비교하면 다소 낮아진 수준이다. 반면 코인원과 코빗 등은 점유율을 끌어올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코인원은 지난해 초 1~2% 수준에서 1년 만에 4%까지 점유율을 확대했고 지난해 12월에는 6.5%까지 올라서기도 했다. 코빗 역시 미래에셋그룹 인수 기대감이 반영되며 지난해 말 0%대에서 올 들어 2%대로 상승했다.
업계에서는 해킹 사고나 시스템 오류 등으로 거래소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경우 이용자 이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 점유율 변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업비트는 지난해 11월 두나무와 네이버 합병 공식 발표 날 대규모 해킹사태가 발생하면서 시장의 신뢰가 흔들린 바 있다.
빗썸 역시 지난해 말만 해도 30%대를 기록했지만 올해 들어 다시 20%로 내려앉았다. 지난 2월 발생한 ‘비트코인 오지급 사고’와 맞물리며 거래소의 내부통제와 자산관리 체계에 대한 우려를 키웠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 열리지 않은 법인 시장이 향후 거래소 경쟁의 ‘승부처’가 될 것”이라며 “1위인 업비트가 법인 고객 확보에 공을 들이는 것도 이 같은 변화를 대비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말했다.
용어설명
고객확인제도(KYC)
고객확인제도(KYC)는 금융사나 암호화폐 거래소가 고객의 신원을 확인하고 검증하는 법적 필수 절차다. 자금세탁, 테러 자금 조달 등 금융 범죄를 방지하기 위해 이름, 주민등록번호, 신분증, 주소 등을 확인하며 계좌 개설이나 고액 거래 시 진행한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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