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계몽령’ 주장하다 스스로 유죄 입증하는 윤석열 전 대통령
12·3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해 내란 및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이 항소심 법정에서 직접 입을 열었다. 그는 당시 조치가 실제 권력 장악이 아닌 ‘경고성 메시지’였다고 강변했다. 이른바 ‘계몽령’이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의 발언은 곳곳에서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무죄를 주장하려는 의도와는 달리 스스로 법적으로 문제있다는 내용으로 점철됐다.
윤 전 대통령은 먼저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던 김용현 증인을 신문하며 ‘계엄의 한시성’을 강조했다.
윤 전 대통령은 “내가 ‘아니 무슨 소리냐, 이거 짧으면 몇 시간, 길면 반나절인데 조사할 시간이 어디 있냐, 계엄 해제가 금방 될 것’이라고 얘기하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발언은 비상계엄 요건을 위반했음을 스스로 실토한 발언에 불과하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헌법이 규정한 ‘국가 비상사태’ 해결을 위한 최후의 수단이 아니라, 통치권자의 주관적 판단에 따른 일시적 충격 요법이었음을 자인하는 꼴이다. 헌법 제77조는 계엄의 사유를 전시·사변 등으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윤 전 대통령 말대로 ‘짧은 시간의 경고’를 위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군 동원을 허용하지 않는다. ‘금방 해제될 것’이라는 인식 자체가 계엄령의 엄중함을 간과하고 정치적 도구로 활용했음을 자인한 셈이다.
두번째로 윤 전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정식으로 거치지 않고 소수 위원만 소집한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는 ‘병력 동원 최소화’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이날 “정식으로 국무회의를 했다면 회의 시작 전 100% (안건이) 알려지고, 국민이 동요해 주요 도심지에 사람이 몰리면 상당한 병력이 투입될 수밖에 없지 않았나”, “특검 주장처럼 정식으로 국무회의를 열었다면 계엄군이 만 명은 투입해야 하지 않았겠나”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명백히 법치주의의 핵심인 ‘절차적 정당성’을 부정하는 위험한 논리다. 헌법 제89조가 계엄 선포 시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한 것은 권력자의 독단을 견제하기 위함이다. ‘안건 유출로 인한 국민 동요’와 ‘병력 투입의 효율성’을 이유로 헌법적 심의 절차를 고의로 우회했다는 주장은 윤 전 대통령 스스로 직권남용의 ‘고의성’을 뒷받침하는 결정적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즉 윤 전 대통령 스스로 유죄를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윤 전 대통령은 군이 주요 인사의 소재를 파악한 행위에 대해서도 김 전 장관에게 “계엄이 어차피 금방 해제될 텐데 주요 인사의 소재를 왜 파악했냐고 따져 묻지 않았나”라고 물었다.
이 질문은 당시 군의 조직적인 움직임과 통치권자의 지시 사이에 ‘괴리’가 있었다는 점을 부각해 내란 의도를 희석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1심 재판부가 이미 ‘국무회의 외관 형성’과 ‘허위 선포문 작성’ 등을 유죄로 판단한 상황에서, “나는 몰랐고 따져 물었다”는 식의 사후적 변명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실질적인 병력 투입과 포고령 선포가 이루어진 시점에서 ‘의도하지 않은 과잉 대응’이었다는 논리는 통수권자로서의 책임론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윤 전 대통령은 공수처의 수사권 부존재와 체포 시도의 위법성을 주장하며 사법 절차 전반을 부정하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1심에서 징역 5년의 중형이 선고된 핵심 사유는 ‘헌법 질서의 실질적 파괴’였다.
재판정에서 쏟아낸 윤 전 대통령의 발언들은 ‘의도는 선했다’는 주관적 동기에 함몰되어 있다. 헌법적 절차를 ‘병력 운용의 효율성’이나 ‘정치적 경고’라는 하위 개념으로 대체하려 한 점이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관건이다.
이날 윤 전 대통령의 주장은 자신의 유죄를 더욱 촉진하는 결과로 나타날 가능성이 커보인다. 재판부는 내달 6일 결심 공판을 통해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릴 예정이다.

권순욱 기자 kwonsw8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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