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과 국채 금리가 동시에 가파르게 상승하며 금융시장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과 이란 간 충돌이 불러온 공포로 위험자산 전반의 투자심리가 얼어붙은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발전소와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을 닷새간 중단하겠다고 밝히자 국제 유가는 순식간에 급락세로 전환하며 시장 변동성은 한층 더 확대되고 있다.
2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3일 코스피는 전장보다 375.45포인트 내린 5405.75에 장을 마감했다. 이날 3% 넘는 갭하락으로 출발한 코스피는 장 초반 매도 사이드카까지 발동되며 투자심리가 급격히 위축되는 모습을 보였다.
전날 원·달러 환율은 16.7원 오른 1517.3원에 주간 거래를 마감하며 17년 만에 최고 수준에 육박했다. 환율 상승은 환차손 우려를 키워 외국인 자금 이탈 압력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의 발전소와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모든 군사 공격을 5일간 연기하도록 전쟁부(국방부)에 지시했다고 밝히자 환율은 1500선 아래로 내려가며 순식간에 하락세로 전환했다.
국제유가도 불안감은 여전하다. 23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장중 한때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5일 연기 발언에 국제 유가는 일제히 급락했다. 전황이 시시각각 변하면서 좀처럼 안정세를 찾지 못하는 모습이다.
유가 불안은 기대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며 금리 상승 압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미국과 일본 등 주요국 국채 금리는 일제히 상승세다. 영국의 경우 20일 기준 10년물 국채 금리가 4.94%를 기록하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이러한 흐름은 시장 부담을 더욱 키우고 있다. 특히 고유가로 인한 인플레이션 상승 우려로 금리 인하 기대감이 꺾이며 주식시장의 하방 압력은 더욱 자극되는 모양새다. 20일(현지시간) 크리스토퍼 월러 연방준비제도(Fed) 이사는 미국 CNBC에 출연해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 유가가 오랫동안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커졌다"라며 "인플레이션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우려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여기에 코스피의 가파른 상승에 따른 포트폴리오 리밸런싱까지 겹치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탈 움직임도 감지된다. 실제로 외국인은 18일을 제외하면 지난 11일부터 23일까지 줄곧 코스피 순매도를 이어가고 있으며, 23일 하루에만 4조원가량을 내다 팔았다. 코스피를 이끈 삼성전자의 경우 8개월 만에 외국인 보유율이 50% 아래로 내려간 상황이다.
자금이 뚜렷하게 이동할 대체 투자처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금, 은 등 전통적인 안전자산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3일 금 시세는 전장 대비 7.87% 하락한 20만8530원에 마감했다. 이는 금 선물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 쇼크로 10.00% 폭락했던 지난달 2일 이후 최대 하락폭이다. 금은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무이자 자산인 만큼 일반적으로 금리와 역의 상관관계를 보이는데, 금리 인하 가능성이 줄어든 데다, 그동안 고점을 높여온 만큼 차익 실현 매물까지 출회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글로벌 투자자들의 현금 비중 확대 흐름도 포착된다. 지난 18일 뱅크오브아메리카(BofA)가 발표한 펀드매니저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달 평균 현금 보유 비중은 4.3%로 전월(3.4%) 대비 크게 상승했다. 지난 1월 3.2%로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투자자들의 태도가 빠르게 보수적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유가와 천연가스 등 주요 원자재의 급격한 상승으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재발했다"라며 "변동성이 급격히 높아졌기 때문에 추가 약세를 가정하고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접근해야하는 시점이라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안재균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영국과 독일을 필두로 기대인플레이션 급등세가 전개되는 모습"이라며 "(미국·이란) 사태 초 마련했던 기본 시나리오에서 부정적인 상황을 보다 염두에 둬야 한다"고 분석했다.
중동분쟁 불확실성 고조로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있는 23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종가와 국제 유가 선물이 표시되어 있다./제공=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