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통에 '유가 담합' 압수수색… 15년 만에 되살아난 정유업계 악몽

박민식 2026. 3. 24.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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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대기업 정유사들의 담합 정황을 포착하고 23일 강제수사에 돌입했다.

정유사들의 담합 규모가 크고, 유가 담합 구조가 복잡한 만큼 이날 압수수색에도 대규모 수사 인력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업계에서는 "싱가포르 현물시장 등의 국제유가 변동을 반영해 국내 가격을 산정하기 때문에 비슷한 추세를 보일 수밖에 없지만 담합과는 구별된다"며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사이트 오피넷에 정유사 공급가도 매주 공개돼 담합이 어려운 구조"라는 반론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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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정유사 4곳·석유협회 압수수색
공정위 이어 유가 담합 겨냥한 듯
15년 전 MB "기름값 묘하다" 발언에
공정위 과징금 4000억 부과했지만
법원서 "객관적 증거 부족" 뒤집혀
미국·이란 전쟁 여파로 유가가 급등한 가운데 검찰이 정유사들의 짬짜미 정황을 포착하고 강제수사에 나선 23일 서울의 주유소들. 연합뉴스

검찰이 대기업 정유사들의 담합 정황을 포착하고 23일 강제수사에 돌입했다. 정유업계는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담합 혐의로 부과된 4,000억 원대 과징금을 놓고 수년간 소송전을 치렀던 악몽이 미국·이란 전쟁을 계기로 재현될 수 있어서다.

법조계와 정유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 나희석)는 이날 오전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 등 4개 정유사와 정유 4사를 회원사로 둔 대한석유협회를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했다. 이들은 사전에 협의해 국내 유통 유류 및 석유제품의 가격을 임의로 조정한 혐의를 받는다.

강제수사는 이재명 대통령이 이달 6일 국내 기름값 급등을 놓고 "바가지 아니냐"며 단호한 대응을 주문한 뒤 이뤄졌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이튿날 유가 담합 행위에 대해 '반사회적 중대 범죄행위'라고 규정하면서 대검찰청에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정유업계는 정부가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석유 최고가격제를 13일부터 시행한 와중에 수사까지 시작되자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조사 이후 검찰 조사까지 이어졌다"며 "가격 담합으로 추정만 할 뿐 구체적인 혐의 내용은 모르지만 최대한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정유사들은 '경제검찰' 공정위 제재를 시작으로 홍역을 치렀던 15년 전을 떠올리고 있다. 2011년 1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기름값이 묘하다"는 발언으로 정부가 정유업계를 예의 주시하던 시절 공정위는 정유 4사에 원적지 담합 혐의로 과징금 4,348억 원을 부과하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원적이란 주유소가 정유사 브랜드(폴 사인)를 변경할 경우 종전 폴 정유사를 뜻하는 정유업계 용어다.

공정위는 2000년 3월 정유 4사가 모임을 통해 경쟁 정유사의 폴 주유소를 빼앗지 않기로 하고, 불가피할 경우 자신이 보유한 폴 주유소를 뺏긴 정유사에 넘겨주기로 합의한 뒤 이를 약 10년간 유지한 혐의를 포착해 제재를 내렸다.

검찰이 미국·이란 전쟁 여파로 급등한 유가와 관련해 '담합 의혹'을 받는 정유사 4곳에 대해 강제수사에 나선 23일 서울의 한 HD현대오일뱅크 주유소 앞으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뉴시스

당시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SK이노베이션 등 정유사들은 반발하며 과징금 납부명령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2015년까지 "객관적 근거가 부족하다" 등의 이유로 대법원에서 줄줄이 무혐의가 확정됐다. 가장 많은 과징금 1,772억 원이 부과됐던 GS칼텍스는 자진신고자감면제(리니언시)를 통해 과징금 전액이 면제됐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그때도 기름값 담합을 확인하려 했으나 명확하지 않아 다른 혐의인 원적지 조사로 바꾼 것으로 기억한다"며 "결과적으로 무리한 수사라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런 전례가 있기에 검찰은 수사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정유사들의 담합 규모가 크고, 유가 담합 구조가 복잡한 만큼 이날 압수수색에도 대규모 수사 인력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업계에서는 "싱가포르 현물시장 등의 국제유가 변동을 반영해 국내 가격을 산정하기 때문에 비슷한 추세를 보일 수밖에 없지만 담합과는 구별된다"며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사이트 오피넷에 정유사 공급가도 매주 공개돼 담합이 어려운 구조"라는 반론이 나온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위용성 기자 up@hankookilbo.com
오지혜 기자 5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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