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전쟁에 AI '슈퍼사이클'도 제동...전 세계 경기침체 촉발하나

문재연 2026. 3. 24.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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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분쟁, AI기술 개발 위한
반도체 제조 시장에 타격
에너지 공급 및 전력 비용 상승 부담
"AI, 미국 1~3분기 투자 70% 차지"
"산업 타격 커지면 글로벌 경기 침체 올 수도"
송유관 모형 뒤로 호르무즈해협과 이란이 표시된 지도가 보인다. 그래픽은 2025년 6월 제작됐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과 아시아 증시를 사상 최고치로 끌어올리며 역대급 호황을 이끌던 인공지능(AI) 붐이 미국·이란 전쟁의 직격탄을 맞았다.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에 따른 공급망 위기가 AI 제조산업에 악영향을 끼치며 AI '슈퍼사이클'에 균열을 내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AI 산업 위축이 글로벌 경기 침체로 직결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22일(현지시간)은 미국·이란 전쟁이 역대급 슈퍼사이클에 진입하고 있는 AI 산업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보도했다. AI 슈퍼사이클은 AI 기술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및 기기 수요가 폭증하며 반도체 등 관련 산업이 장기간(10~20년) 호황을 누리는 현상을 뜻하는데, 현재 AI 산업은 이제 막 초기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문제는 미국·이란 전쟁이 AI 기술 개발에 필수적인 반도체 생산에 큰 충격을 가하면서 산업 내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FT는 이란이 걸프 지역 국가들의 에너지 시설을 공격하면서, 당장 전력 생산의 상당 부분을 중동에서 들여오는 석유와 액화천연가스(LNG) 등 화석연료에 의존하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대만 TSMC 같은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큰 타격을 입게 됐다고 짚었다. 실제 대만 TSMC의 경우 LNG 수요의 3분의 1 이상을 중동 지역에 의존하고 있다.

전력만이 문제가 아니다. 반도체 생산 공정에 필수적인 핵심 화학물질도 중동에 묶여 있다. 구체적으로 반도체 세정 및 식각 공정에는 황이, 실리콘 웨이퍼 냉각을 위해서는 헬륨이 필요하다. 그런데 카타르가 전 세계 헬륨 공급량의 3분의 1을 책임지는 등 대부분이 이란이 봉쇄한 호르무즈해협을 통해 운송돼야 해 수급에 큰 차질을 빚는 것으로 전해졌다. FT는 "황은 해상 운송상 약 절반이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한다"며 "미국·이란 전쟁 이전에도 황은 이미 AI 슈퍼사이클과 전기차로 수요가 높아지면서 공급 부족을 겪던 실정이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반도체 웨이퍼 패턴을 새기는 데 쓰이는 화학물질인 브롬도 이스라엘에 인접한 소금 바다인 사해가 세계 최대 생산지로, 가격 인상에 따른 부담이 가중될 전망이다. 중국 상품 데이터업체인 선시어스에 따르면 최근 브롬의 가격은 일주일간 12.28%나 급등했다. FT는 "한국은 사실상 브롬 수급의 전량을 이스라엘에서 수입하고 있다"며 "헬륨의 경우에도 한국과 대만은 대부분을 카타르에 의존하고 있다"고 전했다.

물류 대란도 시작됐다. 전 세계 웨이퍼 운송의 30%를 담당하는 캐세이퍼시픽 항공 화물 부문은 지역 허브인 아랍에미리트(UAE)의 두바이 접근이 제한되면서 배송 지연을 겪고 있다. 글로벌 리서치 기관인 BCA 리서치의 마르코 파픽 수석 전략가는 FT에 "4월 중순까지 호르무즈해협 봉쇄 등 운송로가 정상화되지 않으면 전 세계는 코로나19 이후 첫 공급망 붕괴와 경기 침체를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이란 전쟁이 단기간에 끝난다고 해도 공급망 회복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세계 최대 LNG 생산단지 카타르 라스 라판 시설은 이미 무인기(드론) 공격으로 생산물량의 17%가 감축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라스 라판 시설에서 가스와 헬륨 생산이 재개되는 데에는 최소 4~5주, 공급망 정상화까지는 추가로 2~3개월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세계무역기구(WTO)도 미국·이란 전쟁에 따른 AI 호황의 붕괴와 이로 인한 경기 침체를 경고하고 나섰다. 로버트 스타이거 WTO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1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가진 '2026년 세계 무역 전망 보고서' 관련 브리핑에서 "에너지 가격이 올해 내내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AI 붐에 타격을 줄 것"이라며 "지난해 1~3분기 북미 지역 전체 투자 성장의 약 70%를 AI 관련 상품이 차지한 만큼, 해당 산업이 위축되면 글로벌 경기에도 연쇄적으로 충격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재연 기자 munj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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