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성범죄 사제와 교회의 은폐에 짓눌린 케이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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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판단이거대한 착각이었고, 자신이 문 미끼가 시한폭탄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채 3년이 걸리지 않았다.
변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는 피의자의 범죄가 드러난 게 전부가 아니며, 아동 성범죄자-사제가 한둘이 아니며, 주교 등 미국 가톨릭교회가 만연한 아동 성범죄를 알고도 은폐-묵인함으로써 사실상 범죄를, 피해자를 양산해온 사실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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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8월, 미국 루이지애나 라피에트의 이름난 형사법 전문 변호사 프랜시스 레이 무통(F. Ray Mouton, 1947.4.1~ 2026.2.5)에게 사건 의뢰가 들어온다. 아동 상습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한 교구 사제를 변호해 달라는 의뢰였고, 그는 아무 망설임 없이 쾌재를 부르며 그 사건을 수임한다. 미국 역사상 최초로 가톨릭 사제가 성범죄로 기소된 사건이었다. 잘만 하면 전국적으로 유명해질 수 있고, 또 무엇보다 “가톨릭교회는 돈을 슬롯머신처럼 토해낼 수 있는 고객”이었다. 게다가 그는 가톨릭교회를 “선의 수원지”라 믿으며 성장한 토박이 케이준이었고, 피의자의 혐의 역시 과장됐거나 ‘예외적인 악’이라 여겼다.
그 모든 판단이거대한 착각이었고, 자신이 문 미끼가 시한폭탄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채 3년이 걸리지 않았다. 변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는 피의자의 범죄가 드러난 게 전부가 아니며, 아동 성범죄자-사제가 한둘이 아니며, 주교 등 미국 가톨릭교회가 만연한 아동 성범죄를 알고도 은폐-묵인함으로써 사실상 범죄를, 피해자를 양산해온 사실을 알게 된다. 고객에게 불리한 사실을 누설해선 안 된다는 직무상의 의무와 시민으로서의 윤리-책임의식 사이에서, 또 자신이 믿던 신앙과 교회의 배신 사이에서 찢기며 그는, 자신이 맡은 사건과 별개로 교구와 싸우고, 미국 가톨릭교회와 싸우고, 바티칸과도 싸웠다. 그러다 결국 양극성장애 진단을 받고 알코올 중독자가 돼 집과 가족과 신앙을 잃고, 변호사업도 접고, 고향을 등져야 했다.
미국 가톨릭교회의 범죄와 위선의 원년 내부 고발자이자 간접적 피해자로서 교회 개혁의 과제가 불거질 때마다 언급되곤 하던 그가 최근 폐-인후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78세.
사건의 무대가 루이지애나였던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미국 보수 복음주의 기독교의 아성인 남부 ‘바이블벨트(Bible Belt)’에서도 중심부 ‘버클(buckle)’ 지역 중 한 곳이지만, 루이지애나의 종교적 뿌리는 로마 가톨릭에 두고 있다. 18세기 약 100년을 가톨릭 국가인 프랑스-스페인 식민지로 보낸 역사적 유산 때문이다. 18세기 중엽 영국(국교회)의 종교 박해를 피해 남하한 캐나다 동부 아카디아 지역 프랑스-가톨릭계 주민들이 정착한 곳도 그래서 루이지애나였다. 공식 광역 행정구역이 ‘카운티(county)’가 아니라 패리시(Parish, 교구)인 루이지애나의 가톨릭 인구 비율은 전국 평균(19~20%)보다 2배 이상 높고, 핵심 패리시 중 한 곳인 남서부 라피에트(Lafayette) 패리시의 가톨릭계 비율은 52%에 달한다. 케이준 시민들에게 성당은 결혼과 장례, 축제, 분쟁 중재의 거점이자 공동체 결속의 상징이고, 가톨릭은 ‘준 국교’의 권위를 지닌다. 19세기 영국의 역사가 액턴 경(Lord Acton)이 "권력은 부패하기 쉽고,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쓴 편지의 수신인도 당시 영국의 성공회 고위 성직자였다.

84년 무통의 ‘고객’은 당시 39세 신부 길버트 고트(Gilbert Gauthe, 1945~)였다. 77년 라피에트 교구 헨리(Henry)의 성 제임스 성당 사제로 부임한 그는 이후 약 6년간 10세 전후의 복사단 소년(주로 남아) 37명을 사제관과 고해소 등에서 성추행하고, 사진을 찍고, 가중강간(1급 강간)까지 한 혐의로 피소됐다. 교구 당국(당시 주교 Gerard Frey)은 약 500만 달러로 6가구를 용케 입막음했지만 한 가구가 소송을 강행한 것. 교회 법률자문이던 루이지애나대 부총장(Raymond Blanco)이 교회 사정을 잘 들어줄 유능한 변호사로 주교에게 추천한 게 당시 37세의 케이준 변호사 무통이었다.
무통은 내전 남군 장군과 상원의원 등을 배출하고 교구 내에서 가장 웅장하다는 성당(Our Lady of Fatima Church)까지 봉납한 집안의 후손이었다. 고교시절 미식축구팀 스타 쿼터백 출신으로 루이지애나대(경영학)를 거쳐 73년 같은 대학 로스쿨을 졸업한 그는 탄탄한 인맥과 준수한 외모, 유려한 언변으로 변호사로 승승장구했다. 학부 2학년 때, 과에서 가장 미인이었다는 여성(Janis Thiberville)과 멕시코로 사랑의 도피를 감행해 결혼한 이력으로도 유명했다. 당시 그는 3남매의 가장으로, 말 사육장과 수영장, 7에이커(약 8,500평)에 달하는 연못까지 둔 15에이커(1만8,000평) 대지의 저택에서 살았다. 그는 2002년 워싱턴포스터 인터뷰에서 수임 이유를 “허영심과 돈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변론 전략은 피의자의 ‘예외적인 일탈’을 정신 이상 탓으로 몰아 실형 대신 치료감호 조치를 받게 하자는 거였다. 하지만 실질적 고객인 교구는 그 계획에 반대했다. 정신 이상을 입증하려면 공판을 해야 하는데, 여러 진술과 증언이 이어지는 과정에 교구 및 주교의 책임론이 불거질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훗날 인터뷰에서 그는 “교회는 사사건건 나와 대립했다. 처음부터 그들은 조용히 유죄를 인정하고 양형거래로 재판 없이 매듭짓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교회 책임론이란 사제 인사권자인 주교가 고트 신부의 아동 성범죄 의혹과 고발을 71년 서품 직후부터 여러 차례 접수하고도 다른 교구로 전출시키는 방법으로 무마- 은폐해온 사실이었다. 심지어 그를 보이스카웃 담당사제로 임명하기도 했고, 피해 아동들에게 비행에 동조한 죄를 씻어야 한다며 고해를 종용한 적도 있었다. 무통은 교회 내부문건을 통해 아동성애자로 추정되는 사제가 고트 외에도 7명이나 더 있지만 교회가 그들 역시 사실상 방치해온 사실을 알게 된다.
고트는 교회 뜻에 따라, 종신형이 가능한 가중강간 혐의를 없애주는 조건으로 나머지 혐의를 모두 인정, 20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검찰과의 합의서에는 그의 여죄가 드러나더라도 추가 기소하지 않는다는 문항이 포함돼 있었다. 교회 측은 원고 가족에게 120만 달러 배상금을 지불했다. (고트의 집안과 각별했다는 당시 주대법원장 헨리 폴리츠(Henry Politz)의 배려(?) 덕에 수감 중에도 온갖 특권을 누렸던 고트는 9년 만에 가석방됐고, 이후 텍사스 등에서 유사 범죄를 저질러 다시 실형을 살았다.)
사건은 끝났지만, 무통은 곧장 발을 빼지 못했다. 그는 약물 중독 등 여러 정신질환을 앓는 사제와 수녀들을 위한 치료시설(St.Luke Institute)을 설립해 운영하던 사제 겸 정신과 의사 마이클 피터슨(Michael Peterson)과 당시 바티칸 주미대사관 교회법 담당 사제 토머스 도일(Thomas Doyle)을 만나 자신이 파악한 ‘사태’를 상의했고, 셋은 미국 교회 아동성범죄라는 지뢰밭 위에 서 있다는 위기의식을 공유하게 된다.
의욕과 사명감으로 뭉친 그들은 시카고의 한 호텔에서 몇 주씩 합숙하며 92쪽 분량의 비밀 보고서(일명 The Manual)를 작성, 85년 추기경과 주교 등 미국 가톨릭 고위 사제들에게 전달했다. 성 비위 사실이 확인된 사제들의 성직 박탈과 정직-제명 등 선제적인 대응과 적극적인 방지책이 골자였다. 그들은 “지금 교회가 직면한 심각하고도 광범위한 문제”에 “조기 대응하지 않을 경우 수많은 신자와 함께 최소 10억 달러(근년 기준 약 30억 달러)에 이르는 경제적 손실을 입을 수 있다”고 보고서에 썼다.

하지만 사전에 그들의 구두보고를 받고 보고서 작성을 독려했던 클리블랜드 보좌주교 제임스 퀸(A. James Quinn), 보스턴 교구 추기경 버나드 로(Bernard F. Law) 등 미국 가톨릭교회 수뇌부는 정작 보고서를 받아든 직후 돌변했다. 그해 6월 워싱턴에서 열린 가톨릭총회 직후 주교회의 대변인은 이런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는 유사한 일이 교회 내에 만연하다는 인상을 주길 원하지 않는다. 그건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위층의 결정에 반발하며 피해자 상담 등을 지속한 도일 신부는 86년 보직 해임과 함께 강의하던 신학대에서도 쫓겨났다. 그는 공군 사목으로 발령받아 2004년 은퇴할 때까지 알래스카 등지의 군 캠프를 떠돌아야 했다. 말일성도교회(몰몬교) 신자였다가 개종해 78년 사제 서품을 받은 동성애자 신부 피터슨은 87년 AIDS로 숨졌다. 교회는 그의 성정체성과 사인을 보고서의 진실성을 흠집 내는 근거로 활용했다.
무통 역시 엄청난 후폭풍에 직면해야 했다. 라피에트 주민 일부는 교회를 상대로 싸움을 건 피해자를 욕했고, 또 일부는 악마의 변호사라며 무통을 손가락질했다. 그의 아들이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맞고 온 일도 있었다. 교회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 직업 윤리에 묶여 무기력한 자신을 탓하던 그는 술에 의존하며 피폐해지다 양극성장애(조울증) 진단까지 받았다. “그 사건으로 내 삶이, 내 가정이, 내 신앙이 무너졌다. 불과 2, 3년 사이에 나는 소중한 모든 것을 잃었다.(…) 나는 교구와 싸우고, 미국 가톨릭교회와 싸우고, 바티칸과 싸우며 헌신적으로 일했지만, 결국 나 스스로를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태워버린 셈이었다.” 그는 87년 이혼 후 고향을 떠나 유럽 각지를 떠돌다 피레네 산록의 남프랑스 생장피드포르(St.Jean Pied Port)에 정착, 2000년 재혼한 아내(Melony Barrios)와 함께 말년까지 은거했다. 이웃 마을인 스페인 팜플로나의 산페르민(San Fermin) 여름 축제, 특히 성난 황소들과 함께 거리를 달리는 행사에 참여하는 게 그의 유일한 낙이었다고 한다.
그(들)의 시련과 별개로 가톨릭 성범죄 피해 소송은, 보고서의 예견처럼 인근 교구로, 북동부 보스턴과 뉴욕, 서부 캘리포니아로 들불처럼 확산됐고, 교회는 치명적인 오명과 더불어 엄청난 재정적 손실을 감당해야 했다. 그런 사건들이 불거질 때마다 무통과 두 사제의 85년 보고서는 교회의 조직적 은폐와 미필적 고의에 의한 방조의 증거로 환기되곤 했다.
무통이 언론 인터뷰에 응하기 시작한 건 2002년 보스턴 교구 한 신부(John Geoghan)의 아동 성폭력 스캔들 이후였다. 그 신부가 약 30년간 130명 이상의 아이들을 성추행했지만 교회 당국이 그를 파면하거나 신고하지 않고 매번 타 교구로 전출시킴으로써 범죄를 순환-확산시킨 사실이 지역 매체인 ‘보스턴 글로브’ 취재팀에 의해 폭로된 것. 그것과 똑같은 범죄 실상을 고발하며 대책을 촉구한 85년 내부 보고서가 있었지만 교회 당국이 묵살한 사실도 그렇게 드러났다.

2015년 오스카상을 수상한 영화 ‘스포트라이트(Spotlight)’의 모티브가 된 그 사건으로 17년 전 보고서를 덮는 데 앞장섰던 버나드 로 대주교(추기경)가 쫓겨났고, 교구는 피해자 합의금을 마련하느라 적지 않은 교회 및 토지를 매각해야 했다. 2025년 조지타운대 CARA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가톨릭교회는 198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한 아동 성범죄 소송으로 최근까지 50억 달러(약 7조 원) 이상 합의금과 법률 비용을 지출했다. 2004년 오리건주 포틀랜드 교구가 파산 신청(Chapter 11)한 이래 43개 교구 및 수도회가 소속 성당 수백 곳의 파산 보호를 신청, 25년 말 기준 29건이 종료되고 14건이 진행 중이다(Dickinson Law 보고서). 2024년 루이지애나 주 대법원은 가톨릭 사제 성범죄에 대한 민사 소송 시효를 2027년 6월까지 만장일치로 재연장했다.
2002년 미국주교회의는 ‘아동 및 청소년 보호를 위한 헌장’을 채택하고, 단 한 번이라도 아동 성추행 사실이 드러난 사제는 정직-환속시킨다는 엄격한 기준과 함께 내부 신고를 의무화했다. 2019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제 성범죄 관련 서류를 교황 비밀(폰티피컬 시크릿)에서 해제, 사법 당국에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무통은 긴 세월 혼자 삭여야 했던 자신의 진실을 2012년 소설 ‘In God’s House’로 출간했다. 직후 인터뷰에서 그는 “이 책을 세상의 모든 사제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과 생존하지 못한 이들에게 바친다”고 말했다.
올해 1월 라피에트 교구 한 사제가 최근 1년간 3건의 아동 성추행 혐의로 또 기소됐다. 무통의 아들 토드(Todd)는 “아버지는 유사한 시련이 40년이 지난 지금도 재연되고 있는 현실에 화를 삭이지 못한 채 떠났다”고 말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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