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 美 대외원조기관 부활… 트럼프 입맛 따라 선별 지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재집권 직후 해체에 나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대외 원조 기관 미국국제개발처(USAID)의 대체 조직이 출범했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 20일 자로 전 세계 자연재해와 인도적 위기 대응을 총괄하는 ‘재난·인도적 대응국(Bureau of Disaster and Humanitarian Response·이하 대응국)’을 신설했다. 200여 명 규모 인력과 12개 세계 거점을 기반으로 운영되며, 연간 예산은 약 54억달러(약 8조1450억원)로 USAID에 비해 크게 축소된 규모다. USAID는 폐지 직전까지 정직원만 1만여 명에 달했고, 연간 예산은 400억달러가 넘었으며 전 세계 130여 곳에서 개발·원조 사업을 진행해왔다. 독립 정부 기관으로 마지막 USAID 처장은 서맨사 파워 전 유엔 주재 미국 대사였다.
대응국은 과거 USAID의 인도적 대외 지원을 이어받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에 철저히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국무부 고위 당국자는 로이터 등 외신들에 “모든 재난과 위기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 아니다. 지원 대상을 더 신중하게 선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후 대응 프로그램이나 사회적 공익을 위한 지원은 제외하고, 생명을 구하는 직접적인 개입에만 전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집권 후 전임 조 바이든 민주당 행정부의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와 PC(정치적 올바름) 정책이 국가 이익에 반한다고 주장한 트럼프 입장에 부합한다.
1961년 존 F 케네디 행정부에서 독립 부처로 설립된 USAID는 60년 넘게 미국의 해외 개발·인도주의 정책을 이끌었다. 냉전 시기 소련을 견제하는 전략적 도구로, 이후에는 전 세계 개발도상국 지원과 질병 퇴치, 식량 안보 강화 등을 통해 미국의 대외적 영향력을 확산하는 역할을 했다. 한국에서도 1960년대 1·2차 경제개발계획은 물론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한국개발연구원(KDI) 설립 등에 USAID 차관이 투입됐다.
그러나 트럼프 2기 출범과 함께 ‘청산 대상 1호’로 지목됐다. 트럼프는 지난해 1월 취임 직후 미국의 모든 해외 원조를 90일간 동결하고 미국의 가치에 부합하는지 재검토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했고, 후속 조치는 USAID 조직 해체와 직원 해고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USAID는 같은 해 7월 공식 폐쇄되고 대외 원조 부문은 국무부 산하로 통폐합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향후 미국의 대외 원조 체계가 국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재편될 것임을 시사했고, USAID의 대체 조직의 이름으로 ‘아메리카 퍼스트’가 거론되기까지 했다.
조직 이름으로 명명되지는 않았지만 ‘아메리카 퍼스트’는 향후 미국 대외 원조의 핵심 기조가 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는 지난 1월 유엔 산하 국제기구 31곳을 포함해 총 66곳의 국제기구에서 미국을 탈퇴시키는 대통령 각서에 서명하는 등 글로벌 협력 체제와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여왔다. 과거 USAID 시절처럼 분쟁 지역과 개발도상국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지원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미국의 외교·안보·경제적 이해와 연관된 사안에 선별적으로 개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트럼프가 ‘레짐 체인지’를 공언한 이란과 쿠바 반(反)체제 세력 및 빈곤층에 대한 전략적 지원이 이뤄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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