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99.965% 흡수한 무대… 심연 깊을수록 더 빛나는 생명의 힘

하늘하늘 휘날리는 흰 옷을 입은 무용수들이 검은 바다를 닮은 무대 위를 떠다닌다. 해류를 따라 이리저리 떠다니는 심해 생물 같다.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그 깊은 어둠 속에 빛이 가닿는 순간, 인간의 살아 있는 몸은 초현실적 생동감으로 빛난다.

27~28일 서울 역삼동 GS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는 ‘웨인 맥그리거 무용단’의 ‘딥스타리아(Deepstaria)’는 영국 로열발레단 최초의 현대무용가 출신 상주 안무가 웨인 맥그리거(56)의 작품. 그는 첨단 기술과 무용의 경계를 허물며 21세기 무용의 최전선에 서 있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안무가다. 영국 공연계 최고 권위의 로런스 올리비에상을 세 번째로 받던 지난 20일, 화상 인터뷰로 그를 만났다.
그는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을 춤에 자유자재로 접목해온 혁신가. 하지만 “AI와 로봇이 무용수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걱정은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다”고 했다. “인간의 신체는 서로 연결돼 있고 상호 의존적인, 놀라운 지능형 감각 시스템입니다. 기술은 인간의 몸이 가진 특권적 지위를 강화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예요. AI는 인간이 작업 과정에 개입할 때만 의미를 갖죠. 인간의 몸이 만들어내는 생동감(liveness)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가장 검은 심연 속 가장 빛나는 인간

‘딥스타리아’는 인간의 몸이 갖는 생동하는 아름다움을 가장 강렬하게 보여줄 작품이다. 원래는 희귀한 심해 해파리의 이름. 맥그리거는 무용수들에게 해류라는 물리력에 의해 형태가 무너지고 접히는 부드러운 신체 언어를 ‘액체 종이접기(origami)’ 하듯 표현하라고 주문했다. 고전 발레의 선형적인 움직임에서 벗어난 무정형적 신체 언어다.
무대는 우주정거장 코팅 도료로 개발한 ‘밴타블랙(Vantablack)’으로 칠해진다. 빛의 99.965%를 흡수하는 현존하는 가장 완벽한 검정색 중 하나다. 맥그리거는 “끝을 알 수 없는 구멍처럼 느껴지는 무대 위 칠흑 같은 공허에 살아 숨 쉬는 무용수들을 대비시키고 싶었다”고 했다. 가장 깊은 심해의 어둠 속에서 빛나는 해파리처럼, 쇠락하도록 운명지어진 인간의 유한한 육체는 깊은 공허 위에서 살아있음의 경이로운 특권으로 빛난다.

인공지능 오디오 엔진 ‘브론즈 AI(Bronze AI)’가 실시간으로 재구성하는 전자음악이 배경에 흐른다. 무용수들은 서로의 호흡을 느끼며 즉흥적으로 합을 맞추지만, 마치 노래의 1절, 2절이 그런 것처럼 정확한 시간과 리듬에 맞춰 움직인다. “봄날 정원의 꽃들을 보세요. 일제히 피어나지만 그 찰나가 저마다 미세하게 다르죠. 이 불일치 속의 조화가 관객에게 강렬한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AI는 협력자… 핵심은 흉내낼 수 없어
그는 구글과 협업해 AI 안무 도구 ‘에이아이소마(AISOMA)’도 개발했다. 맥그리거가 35년간 만든 작품 속 50만개의 움직임을 안무 데이터로 학습한 AI다. 그는 “AI는 춤의 본질을 위협하는 기계가 아니라 강력한 협력자”라며 “인간이 항상 창작 과정에 판단과 결정을 내리는 주체로 개입하는 것이 대원칙”이라고 했다. “AI가 동작의 형태를 모방할 순 있지만 무용수의 긴장과 집중은 복제할 수 없어요. 무용수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시선과 동작의 전환 같은 찰나의 호흡입니다.”
맥그리거는 팝그룹 ‘아바(ABBA)’의 디지털 아바타 콘서트를 안무하기도 했다. 그는 “실제 ‘아바’ 멤버들도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복제된 자신들을 봤기 때문이 아니라 아름다웠던 한 시절의 추억을 다시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라이브 공연은 우리 몸이 환경과 타인에게 실시간으로 반응하며 순간순간 펼쳐지는(unfolding) 대화입니다. 완벽하게 똑같이 반복되는 디지털 아바타와 달리, 인간의 몸이 타인과 환경에 실시간으로 반응하며 전개되는 춤엔 예측할 수 없는 미지의 순간이 이어지죠. 거기에 춤이 가진 인간다움의 본질이 있어요.”
◇로비 전시로 확장되는 무대
오는 24일부터 4월 5일까지 GS아트센터 로비에는 맥그리거가 현대음악 작곡가 막스 리히터 등과 협업해 만든 체험형 설치 작품 ‘미래의 자아(Future Self)’ 전시도 진행된다. 관객은 수천 개의 LED와 카메라를 통해 물리적 신체를 벗어나 3차원의 빛 조각으로 데이터화된 자신과 만날 수 있다. 대중을 위해 단순화된 버전의 AISOMA를 현장에서 직접 조작하며 AI가 자신의 움직임을 어떻게 새로운 춤으로 변형하는지 체험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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