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탈·화마 고초 ‘조선의 마지막 궁궐’

김진형 2026. 3. 24.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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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가 22일 현 도청사 활용방안을 발표한 가운데 고종이 국난을 대비해 건립했던 춘천 유수부 관아, 일명 '춘천 이궁'의 재현을 발표해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편 춘천 이궁 복원은 시민과 학계의 숙원사업으로 꼽혀왔다.

강원도는 2019년 이궁 복원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으며 김진태 도지사는 지난 2023년 강원역사문화연구원을 방문, 춘천 이궁 복원 가능성에 대해 질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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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현 추진 ‘춘천 이궁’ 어떤 곳]
강원도, 현 청사 재편 계획 발표
고증 한계 넘어 시민 활용 확대
수부도시 정체성 확립 등 관건
▲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이궁 ‘문소각’

강원도가 22일 현 도청사 활용방안을 발표한 가운데 고종이 국난을 대비해 건립했던 춘천 유수부 관아, 일명 ‘춘천 이궁’의 재현을 발표해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복원’ 대신 ‘재현’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고증의 한계를 극복하고 시민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보이지만 실현 가능성에는 여전히 ‘의문부호’ 가 찍힌다.

춘천의 진산인 봉의산 아래 설치된 춘천 이궁은 ‘춘천보장론’에 근거한 전략적 요충지이자, 탐관오리의 수탈과 화마의 상처, 일제의 신사 건립으로 인한 상처가 얼룩진 곳이다.

춘천 이궁은 1888년 고종의 명으로 착공돼 1890년 완공됐다. 당시 고종은 전쟁이나 변란 등 비상시에 몸을 피할 보루로 춘천을 낙점했다.

이는 춘천이 동북쪽의 요충지로서 수도를 방어하고 왕을 보호하기에 가장 적합하다는 ‘춘천보장론(春川保障論)’에 근거한 것이다.

전체 면적이 3만㎡를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춘천 이궁은 다른 행궁들과 달리 기존 춘천 관아를 증축하며 조성됐다. 기존 건물을 활용한 ‘문소각’이 정전이자 침전으로 사용됐다.

특히 1890년 유수부로 승격되고 1896년 강원도 관찰사가 파견되면서 춘천이 강원도 수부도시로서 역할을 관장하게 됐다.

실제로 고종이 머무르지 않았던 이궁의 건립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완공 주역인 제2대 춘천유수 민두호는 친일파 민영휘의 부친이자 여흥 민씨 세력의 핵심이었고, 백성들로부터 ‘민 쇠갈고리’라 불릴 만큼 탐학이 심했다.

이후 이궁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철저히 파괴됐다. 1916년 조양루와 위봉문이 외곽으로 강제 이전됐고, 1938년에는 도청 신축을 이유로 이궁의 주요 건물들이 대부분 철거됐다.

일제는 문소각을 무단 점거해 사용하는가 하면, 조양루를 우두산으로 강제 이전시키기도 했다. 강원신사 건립 등을 통해 이궁의 정통성을 말살하려 한 의도로 풀이된다. 이궁의 마지막 보루였던 문소각마저 1940년 원인 불명의 도청 화재로 전소됐다.

한편 춘천 이궁 복원은 시민과 학계의 숙원사업으로 꼽혀왔다. 강원도는 2019년 이궁 복원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으며 김진태 도지사는 지난 2023년 강원역사문화연구원을 방문, 춘천 이궁 복원 가능성에 대해 질의하기도 했다. 김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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