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향한 끝없는 탐구… ‘미술계 악동’ 문제작 한눈에
피할 수 없는 죽음 ‘물리적 표현’에 주력
실물 사체 활용 ‘상어’ 14년 만에 공개 등
초기작부터 40여년 작품 세계 총망라
개방형 전시공간 등 갖춰 亞 최초 개최
국립현대미술관서 6월28일까지 진행
여러 형태의 시신을 차례로 바라보다가 하나의 시신에 눈길을 빼앗겼다. 그것은 목이 잘려 나간 남자의 머리였다. 남자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 듯했다.
친구를 따라 영국 리즈의 한 시신 안치소를 찾았던 열여섯 살 소년 데이미언 허스트는, 몸이 잘린 남성의 머리 옆에서 포즈를 취했다. 친구는 이때 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주었는데, 사진 속의 허스트는 얼굴에 웃음을 짓고 있는 모습이었다. “속으론 공포에 질려 있었다”고, 그는 나중에 회고했다. 허스트의 마음에 죽음이 깊게 새겨진 순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국의 유명 컬렉터인 찰스 사치에게서 5만파운드의 제작비 지원과 함께 작품 의뢰를 받았다. 그는 이에 호주 어부로부터 4m의 타이거 상어를 6000파운드에 구매한 뒤 상어를 포름알데히드 수용액이 채워진 대형 유리 수조에 넣어 부패를 막고 영원히 살아 있는 듯한 모습으로 연출했다. 바로 작품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이른바 ‘상어’였다.

금방이라도 유리를 깨고 나와 관람객을 덮칠 듯 짝 벌린 입, 쏘는 듯한 날카로운 눈, 빠른 속도로 바닷속을 가르고 나가는 등지느러미와 꼬리지느러미, 영원히 박제된 죽음의 공포….
작품은 죽음의 불안과 공포를 박제해 예술적 영원성으로 창조했다며 큰 호평을 받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진짜 상어의 사체를 재료로 사용했다며 도덕적 논란이 일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서 포름알데히드 용액이 변색되고 상어가 부패해 새 상어로 교체하는 과정에선 ‘예술작품의 원본성은 무엇인가’라는 논쟁이 일기도 했다.
문제작 ‘상어’를 비롯해 죽음과 욕망을 강렬하게 비틀며 오랫동안 상찬과 논란의 중심에 서 왔던 영국 작가 데이미언 허스트(61)의 개인전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가 20일부터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3·4·5 전시실과 개방형 전시공간 등에서 이뤄지는 이번 전시는 아시아에서 열리는 허스트의 첫 대규모 개인전으로, 10대 시절 완성한 작품부터 현대미술 시장에 이름을 아로새긴 작품, 최근에 발표한 ‘벚꽃’ 연작까지 40여년에 걸친 그의 작품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작품 50여점이 전시된다.
전시의 첫 섹션 ‘모든 질문에는 의심이 따른다’에는 허스트가 기획자이자 작가로 주목받은 초기작이 주로 소개된다.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 자신에게 맞는 조형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시도한 콜라주 작품들과, 첫 개인전에 출품된 10대 시절의 사진작품, 대표적 연작인 ‘스팟 페인팅’의 초기 버전이 소개된다.
두 번째 섹션 ‘우리는 시간 속에 산다’에선 이른바 ‘상어’를 비롯해 유리 진열장을 사용한 거대 설치작품들이 관람객을 맞는다. 오랫동안 주목을 받은 작품 ‘상어’는 2012년 영국 테이트 모던에서 전시한 이후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된다. 미국의 한 수집가가 소장한 작품으로, 오랜 준비를 거쳐 전시장에 나왔다. 이사빈 학예연구관은 “상어와 수조를 따로 운송해 와서 설치했는데, 물리적으로도 만만치 않았다”며 “이번 전시가 아니면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귀띔했다.
잘린 소의 머리와 파리 유충, 살충기 등을 통해 삶과 죽음의 순환을 날것 그대로 시각화한 1990년 작품 ‘천년’도 전시돼 있다.

아울러 수천 마리의 나비 날개를 사용해 제작한 삼면화 ‘신의 무한한 권능과 영광을 묵상하며’(2008)와, 그가 1998년 런던에 오픈해 6년간 운영한 ‘약국’이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을 전시장 안에 일부 재현해 놓기도 했다.

이와 관련,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작업실 공개는 처음”이라며 “‘이렇게 유명한 작가도 기초에서 시작하고, 중간에 실수하네. 이런 사람도 그렇다면 나도 할 수 있겠다’ 하는 긍정적인 가능성의 메시지와 영감을 한국 관람객에게 던져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지난 18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동시대 현대미술의 흐름을 이끌어온 국제적인 작가 허스트의 혁신적 실험과 작품들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려 했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현대 사회의 가치와 존재에 대한 깊은 사유의 장을 마련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소개했다.
데이미언 허스트는 현대 미술계의 ‘스타’ 혹은 ‘악동’으로 평가돼 왔다. 1965년 영국 브리스톨에서 태어나 리즈에서 성장한 그는 골드스미스대 재학 시절인 1988년 동문들이 참여한 그룹전 ‘프리즈(Freeze)’를 기획해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1995년 영국 최고 권위의 현대 미술상인 ‘터너상’을 받았다.
그는 삶과 죽음, 아름다움과 종교, 과학 사이의 관계를 끊임없이 탐구해 왔다. 특히 죽음 자체보다, 죽음을 둘러싼 인간의 태도에 관심을 쏟았다. 젊은 시절에는 대규모 설치작품을 통해 생과 사를 보여줬다면, 최근에는 회화로 방향을 선회해 삶과 죽음의 순환을 보여주고 있다.
전시는 6월 28일까지.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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